바둑에서 한 수의 가치는 쉽게 매기기 어렵다.

국면의 막바지로 접어들고 끝내기에 와서는 눈에 보일 정도로 정량화될 수 있지만

그 전의 수들은 쉽게 집으로 가치를 따지기 어렵다.

상호간에 돌을 번갈아 두는 일종의 턴방식을 택하는 바둑의 특성상

한 수의 가치를 마치 농구 경기의 스코어처럼 정량화하고 싶은 욕구가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아직 살아 있는 대국의 숨결을 제거하고 박제하여 관찰하는 행위.

이 욕구의 발로가 바로 형세판단으로 집의 가치를 세는 것이다.

형세판단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볼 때 우리는 47 : 54 와 같은 스코어로 대국을 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전투가 벌어지기 전까지 유효하다.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하면 그것은 계산의 영역에서 벗어나 수읽기와 맥점, 일감, 수상전과 같은 직관적인 영역으로 들어간다.

예를 들자면 이제까지 주고 받았던 몇 집, 기껏해야 열 몇 집의 사이 좋은 땅따먹기 거래에서

일종의 도박 - 그것도 끊임없이 판돈이 다음판으로 이월되며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대결이 된다.

이것은 대마사활이 걸린 승부에서 드라마틱하게 연출된다.

(단 프로바둑에서는 어느 한쪽이 벼랑으로 떨어질듯한 싸움이 진행되다가도 극적인 노사타협?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그 바둑은 다시 계산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조화를 부린다)

어쨌든 전투를 잘 하는 사람은 있으나, 전투에서 불패하는 사람은 없다. (제 아무리 이세돌이라고 해도)

전투에서 불패한다는 것은 결국 모든 경우의 수를 파악할 수 있을 때 가능하고 이는 신의 영역이다.

그렇기에 형세판단이라는 도구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사람일수록 불확실한 전투의 영역으로 들어가지 않는 경향이 크다. (전성기때의 이창호)

접바둑을 둘 때에 하수는 두 가지 선택에 맞닥뜨린다.

지키는 바둑을 둘 것인가? 싸움을 불사하는 바둑을 둘 것인가?

지키는 바둑을 두려 한다면 그 치석들은 집으로 환산될 가능성이 높고,

싸움을 불사하는 바둑을 두려 한다면 응원군으로 변할 것이다.

그리고 하수의 마음가짐에 따라 접바둑의 치수는 얼마든지 널뛰기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