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타임스=김우선 기자] 영화가
지루해질 중반 무렵, 빨간 선글라스를 쓴 군인(군복을 뒤집어쓴 폭도일 뿐)이 워싱턴 DC로
향하는 기자들을 붙잡고 총부리를 겨눈 채 물어본다. "너는 어떤 종류의 미국인이냐?(What kind of American are you?)"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로이터 통신 소속의 미국 기자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플로리다”라고 말해 살아나고 다른 동료 기자는 “홍콩”이라고 답했다가 가차없이 죽임을 당한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영화
《시빌 워:분열의 시대》의 한 장면이다. 미국에서 위헌적인 3연임을 하려는 대통령 탓에 내전이 벌어졌고, 정부군에 맞서 캘리포니아·텍사스를 축으로 한 반군이 맞서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다.

12월 3일 국회로 진입한 군인들을 연상케 하는 장면
미국에서
내전이 벌어지다니…그야말로 파격적인 설정이다. 영화는 중반까지
왜 미국인들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지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중반까지의
흐름은 지루하다. 영화를 처음 볼 땐 지루함을 참지 못 하고 졸던 끝에 아예 들어가서 잤다. 하지만 중반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된다.
영화는
아무런 힌트도, 나레이션을 통한 스포도 없다. 세 명의 사진기자의
눈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스토리는 종군기자를 꿈꾸는 어린 여자아이를 포함해 현직
기자 2명, 이 세 사람이 이동하는 경로 그대로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그래서 재미가 없다. 그냥 흑백 사진 속 다큐 같고
취재수첩에 적은 무미건조한 텍스트 같다.

현실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공포다.
세상은 흑과 백, 이분법에 의해 구분될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어쩌면 흑도, 백도 아닌 회색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세상을 둘로 나눈다면 나는 어느 편에 서야 할 것인가? 이
영화가 던져주는 물음이다.
사회 질서가 붕괴된 영화 속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대통령도 군인도 아닌,
무법지대에서 폭주하고 있는 일반인들이다. 빨간 안경을 쓴 군인도 아니면서 군인 행세를 하는
그들이 가장 무서운 존재들이다. 절도를 한 이웃을 매달아 죽을 때까지 패고, 어디선가 나를 향해 총을 쏴대는 저격수가 있고, 넌 어떤 종류의
미국인이지? 라고 물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을 죽인다.

당신은 어느쪽 미국인인가?
이 영화는 총이나 탱크, 헬기와 비행기 같은 무기로 인한 전쟁의 무서움을
말하지 않는다. 국가가 국민을 하나로 묶는 집단적 통일성과 시민으로서의 동일성이 상실되면 언제라도 피아식별을
하면서 서로를 죽이는 세계가 올 수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거의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던 대한민국 해방 이후 시국에 군인도, 어떤
기관의 소속도 아니면서 사람들을 편 갈라 죽임을 일삼던 서북청년단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 우리나라 상황은 어떤가. 헌법재판소 앞에서부터 경복궁까지, 광화문 광장에서 시청까지 둘로 갈라져 서로를 향해 으름장을 놓는다. 이를
중재하는 중간자적인 존재는 없다. 영화에서처럼 대통령은 오히려 싸움을 부추겨 일촉즉발의 상황을 즐기는
듯하다.

기자의 눈으로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영화다.
어느 사회, 어떤 시대에도 극단주의는 존재했다. 하지만 봉합 불가능할 정도의 균열을 만드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12월 3일 계엄령 선포는 내란의 첫 시발점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 극심한
내란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우리의 승리가 목전에 있다”고 비상계엄 선포하듯 야비한 웃음을 흘리던 미국 대통령은 영화의 마지막에 결국 진압군에게 잡힌다. 집무실 책상 밑에 숨어있다가 질질 끌려 나온 대통령을 사살하려는 순간 기자가 묻는다.
기자 : 한 말씀 하시죠.
대통령 : 살...살려주세요.
기자 : 좋아요. 그거면
됐습니다.
옆에 서있던 군인이 대통령을 총으로 사살한다.
도대체 기자가 뭐길래, 한 나라의 대통령이란 자가 왜 이렇게까지 시민들을
분열시키고 피 흘리게 하는지 인터뷰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수천 킬로미터를 달려왔는지 모든 의문이 풀렸다. 대통령
같잖은 대통령의 저 말 한 마디를 역사 속에 기록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달려온 것이다. 우리의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ansonny@review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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