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타임스=김우선 기자] "후쿠시마 제1 원전 사고는 여전히 수습되지 않았으며 폐로 작업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더 데이스8화의 마지막 자막이다. 어쩌면 이 자막은 현재 오염수 방류의 어처구니 없는 현실을 설명해주는 걸지도 모른다.
더 데이스(The days)는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 이후 7일간의 이야기를 다룬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로 총 8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 6월 1일 전 세계에 공개됐다. 한국에서도 예고편이 방송됐는데 한국어 자막 작업까지 완료된 드라마가 한국에서만 현재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인터넷에는 더 데이즈와 더 데이스가 혼용되고 있으나 외래어 표기법상 ‘스’가 맞다. 넷플릭스에서도 ‘더 데이스’로 표기하고 있다.
더 데이스는 영화 '링'을 연출한 나카타 히데오가 감독했고 야쿠쇼 코지, 다케노우치 유타카, 코바야시 카오루, 엔도 켄이치 등 일본의 중견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 따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소재로 다룬 8부작 드라마로 넷플릭스 TOP10 사이트에서는 비영어권 5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플릭스패트롤에서도 드라마 부문 전체 7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넷플릭스는 글로벌 동시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어 대부분의 콘텐츠가 전 세계 190개국에 동시에 공개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더 데이스는 공개 이후 76개국에서 시청 가능하지만 20일이 넘도록 유독 한국에서만 공개가 이뤄지지 않아 일각에서는 현 정부가 넷플릭스에 압력을 넣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국도 당초 서비스 국가로 개봉 3주 전까지만 해도 넷플릭스 코리아가 공식 유튜브 채널에 <더 데이스>의 공식 예고편을 걸고 적극적으로 홍보한 바 있다. 그러나 막상 정식 공개에서 한국은 제외돼, 더 데이스는 한국 넷플릭스에서 검색조차 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미국 방문 때 넷플릭스 관계자를 만난 것을 떠올리며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특히 최근에 일본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시설 시운전을 시작한 만큼 자칫 드라마가 반일 감정을 고조시킬 수 있어 윤석열 정부가 넷플릭스를 압박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된 것이다. 하지만 당사국인 일본에서도 동시 개봉한 드라마인데 우리나라에서만 이런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최근 넷플릭스 코리아는 더 데이스를 한국에서 7월 20일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 작품 공개가 한 달 반 이상 걸린 걸까? 바로 심의 체계 때문이라는 설명이 설득력이 있다.
넷플릭스 홈페이지에 7월 20일 공개로 올라왔다.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일본 문화는 전격 수입되었는데, 모든 콘텐츠를 허용한 건 아니었다. 포르노물인 일본 AV는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올해 6월 1일부터 'OTT 자체등급분류제도'도 시행에 들어갔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는 OTT 자체등급분류 사업자로 넷플릭스, 디즈니+, 애플TV+, 왓챠, 웨이브, 쿠팡플레이, 티빙 등 7개 업체를 지정했는데 지정된 업체들은 1일부터 자사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콘텐츠의 등급을 자체적으로 분류할 수 있게 됐다.
OTT가 알아서 관람 등급을 매길 수 있음에도, 일본 대중문화 개방 정책에 따른 일본 비디오물 규제로 인해 혼선이 생긴 것이다. 등급 주무기관인 영등위는 일본 콘텐츠는 자체등급분류제도에서 제외라는 입장이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같은 이유로 공개가 연기된 작품은 ‘겐간 아슈라 시즌2’ 등 20작품 이상이다.
일단 7월 20일 국내 오픈을 할 예정인 더 데이스를 우여곡절(?) 끝에 감상했으니 영화 리뷰를 써보기로 한다.
더 데이스 8개 에피소드의 제목은 아래와 같다.
1.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수몰되다
2. 피난할 필요는 없다
3. 방출될 방사성 물질은 소량입니다.
4. 후쿠시마를 버리는 것과 같다
5. 회사도 정신이 나갔군
6. 살아서 돌아갈 수는 없다
7. 철수 기준을 결정하다
8. 일본 붕괴의 시나리오
한국에서는 예고편 3개가 한국어로 공개되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현재 볼 수가 없다. 그래서 VPN이라는 편법을 이용해서 미국인 것처럼 접속하고 이 드라마를 관람해야 했다. 한국에서 접속하는 사람들만 막아놓은 것이지 한글 자막으로 번역된 버전을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다룬 8부작 넷플릭스 시리즈 더 데이스가 관심을 끌고 있는 이유는 일본 드라마이지만 도쿄전력이나 일본 정부를 옹호하거나 국뽕이 녹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은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
후쿠시마 원전보다 몇 십 년 앞서 폭발한 체르노빌 원전은 당시 공산주의의 꽉 막힌 관료주의 때문이라고 한다면,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원전은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드라마를 보면 후쿠시마 원전은 헌신적인(어쩌면 무모한) 몇 사람의 노력으로 인해 폭발을 막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원전을 완전히 식혔다 새로 돌리려면 돈이 들어서…", "바닷물을 냉각수로 넣으면 되었지만 그러면 원전을 못쓰게 되기 때문에..."와 같은 자본의 논리로 인해 결국 폭발하고 만 것이다.
더 데이스는 우리나라 드라마처럼 스토리 전개가 빠르지 않다. 7일 동안의 이야기를 무려 8부작에 걸쳐 보여주고 있으니 우리나라 시청자라면 좀 지루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진행 속도도 느리고 대사도 많지 않다. 그렇다고 중간중간 어마어마한 CG 등으로 반전을 꾀하는 그런 장면도 없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천재이자 인재였다.
이 드라마는 총리 이하 당시 일본 높으신 분들의 총체적 무능과 무책임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원자력에 대해서 일자무식인 관리들이 ‘동경대 경제학부’ 출신 엘리트라는 이유로 참사가 터져도 아무 대책없이 꿀먹은 벙어리처럼 매뉴얼에도 나와 있지 않는 대책을 뒤적거리면서 변명을 늘어놓는 장면은 일본이나 우리나라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원자로 폭발 장면을 TV로 지켜보면서 어찌 할 줄 모르는 모습은 지금의 방사능 오염수 배출을 방치하고 있는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발전소 요시다 소장을 비롯한 현장 요원들이 본인의 역할을 끝까지 다하고, 죽을 각오로 어떻게든 수습하려는 모습은 마치 태평양 전쟁 당시 가미카제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 들게 한다.
후쿠시마는 지금도 유령의 도시다. 어쩌면 우리 지구의 바다도 그렇게 될 지 모른다.
이 드라마가 무슨 연유가 됐든 뒤늦게 7월 20일에 한국에서 개봉한다니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잖아도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배출로 전 세계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 더 데이스가 경종을 울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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