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레드테일레이서, 줄여서 레이서.

똥탄 포켓몬 마스터의 집에서 내 짝과 함께 지내며, 따뜻한 열과 익숙한 공기 속에서 살아왔다.

낮에는 일광욕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밤에는 짝과 조용히 숨을 고른다. 평화로운 날들의 반복.

그런 줄만 알았다.

어제, 위층에 살던 레틱이 사라졌다.

조용하고 점잖던 친구였다. 가끔 우리 틈으로 스치는 시선에 익숙해졌고,

그 존재만으로도 이 집이 얼마나 넓고 다정한 공간인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레틱이, 낯선 상자에 담겨 떠났다.

그리고 오늘 아침

거인이 의자에 앉았다. 익숙한 자세, 하지만 낯선 기운.

손엔 네모난 기계, 타닥타닥 소리가 방 안을 울린다.

그의 눈빛은 어딘가 담담했고, 가끔 멈춰선 손끝은 짧은 망설임을 담고 있었다.

나는 우리 안에서 몸을 낮췄다.

귓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레이서 한쌍 분양 보냅니다. 둘 다 건강하게 잘 지내주었고, 더 좋은 곳에서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그저 어제 레틱의 일이 나와 무관하길 바랐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다.

"나도… 떠나는 거구나."

내 짝은 조용히 나를 바라봤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 아니면 모든 걸 알고도 말하지 않는 듯.

나는 어깨를 웅크리고, 바닥을 느꼈다. 따뜻했다. 여전히.

하지만 그 온기조차도 이젠 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온몸이 서늘해졌다.

나는 그저 파충류일 뿐이다.

이 집에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

거인의 손끝이 마지막 문장을 마쳤을 때,

나는 슬쩍 눈을 감았다.

내 이름이 쓰인 그 글,

나는 조용히, 내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