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결국 가성비 발전의 끝이 온거다

ㅇㅇ(183.96) 2025.03.20 23:47:20

조회 47 추천 1 댓글 0

로마 아그라왈의 대중 건축 교양 서적인 '빌트, 우리가 지어 올린 모든 것의 과학'의 지반 챕터를 보면 저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소개한다.

쌓는 만큼 파내 려가야 한다고.

아니 뭐하러? 돈이랑 시간도 아까운데 그냥 마구잡이로 지어올리면 어차피 지반은 압착되어서 괜찮은게 아닌가?

답은 전혀 아니다.

만일 당신이 건물을 암반에 고정하는 앵커 파일 없이 마천루를 짓는다면 고르지 못하게 분산된 무게로 인해 압착된 토사로 건물이 부분적으로 침하될 것 이고,

결과적으로 건물이 기울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건물이 진흙 위에서 둥둥 떠 다니다가 모든 것이 엎어질 것이다.

이는 공짜로 얻은 교훈이 아니다. 관광지로 유명한 피사의 사탑에서부터 멕시코 시티에 위치한 성당 전체가 가라앉는 과달루페 성당, 그리고 와우 아파트 까지.

한국의 발전이 거쳐온 과정도 이와 유사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사상누각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한국의 모든 사회 제도는 선진국의 그것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카피해왔기에 이론상 모든 것이 완벽하다.

가령 헌법은 바이마르 공국의 그것, 민법은 일본의 민법, 경제 체제는 미국의 신자유주의, 복지는 스웨덴의 그것. 듣기만 해도 끝내주지 않는가?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사회제도를 이룩하기 위해 무슨 협의 과정을 거쳤고, 어떠한 피를 흘렸는지는 전혀 분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령 강제징용으로 지탄받는 사회복무요원 제도는 독일의 민사복무제도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이 민사복무제도는 징병검사에서 현역판정을 받은 자가 신념에 따라 군대를 거부할 권리를 인정하고 대신 복지시설에서 일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제도를 가져오면서 왜 독일이 양심의 자유를 인정하는지, 나치의 강제징용이 어떤 문제를 불러왔고 독일은 어떠한 반성을 했는지,

왜 빌리 브란트 는 바르샤바에서 무릎을 꿇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는지는 전혀 고찰하지 않았기에 징병검사 하위 5%, 사실상 신체 및 정신적 장애인에게

무급에 가까운 노동을 2년간 강제하는 기형적인 제도가 탄생한 것이다.

비단 사회복무요원이라는 톱니바퀴만 헛도는가?

성 매수자만 처벌한다는 노르딕 모델을 그대로 가져온 결과는 어떠한가? 매춘은 근절되었는가?

Gender sensitivity를 번역한 성인지 감수성이 대법원 판결문에서 언급되어 성 평등은 진보되었는가? 오히려 남성의 날갯죽지를 꺾는 식으로 퇴보하지 않았던가?

영국의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이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도입된 결과 산업재해는 감소했는가?

SAT 제도를 베낀 수능과 Early Decision을 가져온 수시 제도로 대입이 공정하게 작동하는가?

정치 공동체는 곧 기억의 공동체라던데,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일은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며 갈무리 되지 못한 악몽만 배갯맡에 넘치고

참을 수 없는 염증만 느끼면서도 단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는게 오늘날 한국의 현주소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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