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연관 갤러리
미스터리 갤러리 타 갤러리(0)
이 갤러리가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타 갤러리 미스터리 갤러리(0)
이 갤러리를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개념글 리스트
1/3
- 진짜 광기라는 반응 나왔던 그알 pd ㅇㅇ
- 관리실에서 우리 집 부엌 불 켜놓으래 ㅇㅇ
- 젤렌스키 “평화 협상 준비되었다.” 화난송은이
- 제갈량 무덤 실제 모습 타이
- 교권 침해해놓고 비난 받자 누가 피해자고 가해자인지 모르겠다 말한 학부모 감돌
- 싱글벙글 일일 커피.manhwa 타원형플라톤
- 호떡의 '호'자가 궁금해서 챗gpt로 찾아본 존박 ㅇㅇ
- 지하철 2호선에서 민폐 끼친 20대 한녀 ㅇㅇ
- 쯔카마키(柄巻)에 대해 알아보자 멘헤라♥사무라
- 토트넘은 비지니스적으로 가장 완벽한 구단 ㅇㅇ
- 봉준호가 나오미 애키 캐스팅한 비화 슈파두파
- DR이 작아도 괜찮아 시간이너무빨라
- 한남과 결혼한 24살 일본여자의 일상..jpg ㅇㅇ
- 싱글벙글 올리버 쌤이 알려주는 미국의 쌩까는 문화 ㅇㅇ
- 2026년 바빠질 헐리웃 여배우 GOAT ㅇㅇ
불효자의 간사이 가족여행기 (2)
[시리즈] 불효자의 간사이 가족여행기 · 불효자의 간사이 가족여행기 (1) 필력 구린 가족여행기 2/8, 2/9, 2/10 이어서 써본다. 이번 오사카에서 맞이하는 세번째아침이다. 불효자의 여행코스때문에 부모님이 힘드신 거 같아서 어젯밤 부랴부랴 대실온천을 찾아봤다. 운좋게 빈 곳이 있어서 예약하고 거기로 가기위해 쓰루하시로 가보자. 쓰루하시 반갑다. 노베하노유라는 온천에 왔다. 탕이 매우 작은 관계로 번갈아가며 들어갔다. 두시간 조져줬다. 온천을 나와 어디가볼까 찾아봤는데 주변에 코리아타운이 있다길래 코리아타운으로 향해본다. 코리아타운 반갑다. 대구탕 냉면 엄마의맛이라는 식당이었다. 재일교포분이 운영하시는 곳이었다. 순두부찌개, 대구탕, 냉면을 시켰는데 대구탕이 ㄹㅇ개맛있었다. 아버지 메뉴였는데 내가 코박죽하고 먹어버렸다.. 난 불효자가 맞나보다. 코리아타운 풍경. 한국분들이 많을줄알았는데 거의 대부분이 일본분들이었다. 길거리는 핫도그, 김치 파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핫도그 먹어주고 코리아타운을 나왔다. 덴노지로 가기위해 모모타니역에 왔다. 덴노지역 반갑다. 역 앞에있는 킨테츠백화점 구경하고 카페에서 잠시 쉬었다. 아베노하루카스쪽 가려했지만 모두지쳐 숙소로 복귀했다. 숙소에서 잠시 쉬고 밖에나와 간단히 라멘을 먹었다. 음... 내입맛에는 맞지않았다.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날아침이 밝았다. 교토로 가보자 교토역 반갑다. 오사카는 눈 없었는데 교토로 오니 눈도 있고 좀 쌀쌀했다 버스타고 기요미즈데라 가보려 했는데 기다리는 줄 길이가 예사롭지 않아 택시를 타고 갔다. 기요미즈데라 앞에 내려서 기요미즈데라로 올라가보자 유명 포톤존이다. 3, 4월 벛꽃시즌일 때 진짜 예쁠 것 같았다. 하지만 앙상한 가지로 이뤄진풍경도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산책해주고 산책해주고 옆에 있는 산넨자카인가 니넨자카에서 간식도 먹어주고 걸어다니며 구경을 했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ㅜ 점심찾는중 점심찾는중 길옆에있는 소바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제 후시미이나리신사로 가볼것이다. 후시미이나리신사에 왔다. 천본토리이도 맞지만 천본아타마가 맞는것같았다. 아침일찍 오는게 좋다고 하던데 기회가 된다면 일찍 와보고 싶다. 길거리상점에서 오징어 쿰척쿰척 흘리며 먹어주고 후시미이나리신사를 빠져나가기위해 기차역으로 왔다. 다시 오사카로 가자 오사카역 근처에 있는 호루몬나베식당에 왔다... 이것저것나오는 코스로 먹었다. 맛은 무난했다. 식당 ㅂㅇ 숙소로 돌아와서 과자 먹어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날 아침이다. 12시 비행기라 이날은 아무것도 못하고 바로 공항으로 가야했다. 하루카를 타고 공항으로 가자공항에서 간식을 먹어주며 오사카와 작별하며 여행을 마쳤다 군대에서 공부한 일본어로 간지나게 부모님에게 일본가이드를 해주고 싶었지만 음식주문도 제대로 못하고 힘들게만 한 것 같았다... 아... 다음에 가게된다면 준비를 완벽하게 하고 부모님 여행성향을 알았으니 이에맞춰 여행해드려야겠다. 2/5~2/10 여행기 끝 - dc official App
작성자 : 석찐고정닉
미드웨이 해전의 VT-8 어벤져 분견대 (5) 마지막화
[시리즈] 미드웨이 VT-8 어벤져 · 미드웨이 해전의 VT-8 어벤져 분견대 (1) · 미드웨이 해전의 VT-8 어벤져 분견대 (2) · 미드웨이 해전의 VT-8 어벤져 분견대 (3) · 미드웨이 해전의 VT-8 어벤져 분견대 (4) VT-8 미드웨이 분견대의 영웅들 (좌측 항공기 번호)8-T-16 : LT Langdon K. Fieberling, ENS Jack Wilke, RM2c A. R. Osborn8-T-19 : ENS Charles E. Brannon, AMM3c W. C. Lawe, AOM3c C. E. Fair8-T-1 : ENS Albert K. Earnest, ARM3c HH Ferrier, AMM3c JD Manning8-T-12 : ENS Victor A. Lewis, AMM3c NL Carr, EM3c JW Mehltretter8-T-4 : ENS Oswald J. Gaynier, ENS Joseph M. Hissem, SEA1c HW Pitt8-T-5 : NAP Darrell D. Woodside, PTR2c AT Meuer, AOM3c LJ OrgeronVT-8 분견대 조종사 - Fieberling, Brannon, Lewis, Gaynier, Woodside는 모두 사후에 해군 십자장(Navy Cross)을 수여 받았다. VP-24의 항법장교 Wilke와 Hissem도 사후에 해군 십자장을 수여 받았다.생존한 Albert K. Earnest 소위는 어뢰 공격에 대한 첫 번째 해군 십자장과 신형 기체를 무사히 귀환 시킨 공로로 두 번째 해군 십자장을 받았다.VT-8 분견대 항공 승무원 Osborn, Lawe, Fair, Manning, Carr, Mehltretter, Pitt, Meuer VP-44의 Orgeron는 사후에 비행 십자장(DFC)을 수여 받았다.1942년 6월 4일 두 번의 VT-8 임무에서 항공 승무원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VT-8의 무전수 Harry H. Ferrier도 비행 십자장을 수여 받았다.다음 함선들은 VT-8 미드웨이 분견대에서 전사한 장교들의 이름을 따서 명명 되었다.버클리 급 호위 구축함 USS Fieberling (DE-640)은 1944년 4월에 취역하여 오키나와에서 배틀 스타 1개를 받았고, 가미카제 공격으로 피해를 입었다. 1948년 3월에 퇴역했다.존 C. 버틀러 급 호위 구축함 USS Charles E. Brannon (DE-446)은 1944년 11월에 취역하여 보르네오 전역에서 배틀스타 1개를 받았다. 1946년 5월에 퇴역했다.존 C. 버틀러 급 호위 구축함 USS Lewis (DE-535)는 1943년 12월에 취역하여 3개의 전투별을 받았다. 1946년 5월에 퇴역했다. 1952년 3월에 재취역하여 한국 전쟁에서 배틀스타 1개를 받았고, 1960년 1월 마리아나 해구를 탐사한 심해 잠수정 트리에스테를 지원했다. 1960년 5월에 퇴역했다.캐논 급 호위 구축함 USS Gaynier (DE-751)는 1944년 9월 건조 중 취소되어 해체되었다.캐논 급 호위 구축함 USS Jack W. Wilke (DE-800)는 1944년 3월에 취역하여 대서양 호송 및 ASW 작전을 수행했다. 1960년 5월에 퇴역했다.에드샬 급 호위 구축함 USS Hissem (DE-400)은 1944년 1월에 취역하여 지중해 호송대에 대한 독일 공습에서 배틀 스타 1개를 받았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고 1970년 5월에 퇴역했다.미육군항공대 B-26 폭격기 4대의 승무원 전원이 해군 십자장과 동등한 육군 훈장인 수훈근무십자장(DSC)을 수여 받았다.VT-8은 진주만에 남아있던 TBF 기체들과 승무원들을 보충하여 미드웨이 해전 이후 재편성되었고, Swede Larson 중위가 지휘를 맡았다. VT-8은 USS 사라토가를 거쳐 USS 호넷에 다시 배치되어 1942년 10월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호넷이 침몰할 때까지 과달카날 주변에서 작전을 수행 했다.호넷 침몰 후 잔존한 기체와 승무원들은 과달카날 헨더슨 비행장에서 혹독한 조건하에 작전을 수행했다. 두 번째 VT-8 뇌격비행대에서 조종사와 항공 승무원 7명이 전사하고 8명이 부상당했다.Albert K. Earnest는 1942년 9월과 10월에 과달카날 주변에서 일본해군과 싸우며 세 번째 해군 십자장을 받았다.Earnest는 미드웨이와 과달카날에서 총 5번의 어뢰 공격 및 항공폭탄으로 지상지원을 했으며, 동부 솔로몬 해전에서 일본 경항공모함 류조의 격침에 일조하였다. 임무 중 부상으로 인해 Earnest는 미국으로 후송되었다. 1942년 11월 13일, 비행대의 과달카날에서의 마지막 활동 중 Swede Larson 중위는 11월 12/13일 밤 전투로 표류하는 일본 전함 히에이에 어뢰를 발사하여 침몰을 앞 당겼다. 1942년 후반 그간의 전투 피로와 열대 질병들로 피폐해진 조종사와 항공 승무원들은 미국으로 귀국했고, VT-8은 해체되었다. 1941년에서 1942년까지 VT-8의 조종사 35명이 39개의 해군 십자장을 받았다. 항공 승무원들은 용맹에 대한 50개 이상의 메달을 받았다. 이 비행대는 2차 세계 대전 중 두 개의 대통령 부대 훈장을 받은 유일한 부대였는데, 하나는 미드웨이 해전, 다른 하나는 과달카날 전역의 공로로 수여 받았다.Fieberling 중위와 Earnest소위의 훈장 수여 인용문미국 대통령은 1942년 6월 4일 적 일본군과의 "미드웨이 해전" 동안 미드웨이 비행기지에서 출격한 뇌격기 조종사이자 VT-8 분견대의 지휘관으로 작전에서 뛰어난 영웅적 행위를 한 미국 해군 예비군 Langdon K. Fieberling 중위에게 해군 십자장(사후 수여)을 수여하게 되어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일본 침공 함대의 적 항공모함에 대한 첫 번째 공격에서 Fieberling 중위는 적 일본 전투기와 대공포의 맹렬한 포화에 맞서 편대를 이끌었습니다. 미드웨이 해전과 관련된 사건으로 볼 때 그가 조국을 위해 용감하게 목숨을 바쳤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의 용기와 자신의 개인적 안전에 대한 전적인 무시는 미국 해군의 가장 높은 전통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조국을 위해 용감하게 목숨을 바쳤습니다.***미국 대통령은 1942년 6월 4일 적 일본군과의 "미드웨이 해전" 동안 미드웨이 비행기지에서 출격한 뇌격기 조종사이자 VT-8 분견대의 지휘관으로 작전에서 뛰어난 영웅적 행위를 한 미국 해군 예비군인 Albert K. Earnest 소위에게 해군 십자장을 수여하게 되어 기쁩니다. 일본 침공 함대의 적 항공모함에 대한 첫 번째 공격에서, 어니스트 소위는 적 일본 전투기와 대공포의 맹렬한 포화에 맞서 공격을 계속했습니다. 그의 충성스러운 의무에 대한 헌신과 수적으로 우월한 적군을 공격하는 데 있어서 자신의 개인적 안전에 대한 전적인 무시는 미국 해군의 가장 높은 전통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미국 대통령은 1942년 6월 4일 적 일본군과의 "미드웨이 공중전" 동안 해군 비행장 미드웨이에서 출발한 VT-8(어뢰 전대 8)의 항공모함 기반 해군 어뢰 비행기 조종사로 복무하면서 적에 대한 작전에서 탁월한 영웅적 행위를 한 미국 해군 예비군 Albert K. Earnest 소위에게 해군 십자장 2차 수여 대신 금성장 (GOLD STAR)을 수여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엄청난 적 전투기와 대공포의 저항에 직면한 상태에서 전투기 엄호 없이 어뢰 공격을 완료한 Earnest 소위는 부상을 입고, 사수는 전사한 상태에서 기관총 총알과 기관포탄에 휩싸인 비행기로 귀환 비행을 했습니다. 나침반과 폭탄창 문이 작동하지 않고 랜딩기어의 바퀴 하나는 고장났으며, 엘리베이터 제어 장치가 날아간 상태로 Earnest는 엘리베이터 트림 탭을 전문적으로 사용하여 약 200마일 떨어진 미드웨이에 안전하게 착륙했습니다.지금까지 입증되지 않은 신형 비행기의 전투 효율성을 확인하는 것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던 Earnest 소위는 엄청난 위험과 신체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끈기 있게 버텼습니다. 그의 위대한 용기와 불구가 된 비행기를 다루는 데 있어서의 뛰어난 기술은 미국 해군의 가장 높은 전통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Albert Kyle “Burt” Earnest (1917~2009년) 향년 92세해군 십자장 3회, 에어 메달 2회, 퍼플하트 전후 적성장비 테스트 파일럿, 허리케인 헌터, 제트기 비행 면장 취득. 1972년 퇴역 Harry Hackett Ferrier (1925~2016년) 향년 91세미드웨이 해전 당시 17세, 비행 십자장, 퍼플하트, 에어 메달 3회, 대통령 부대 훈장 4회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참전. 1970년 퇴역TBF는 기총 세례를 견뎌내었고, 6월 4일 전투에서 해군 보유기체 중 거의 전부를 상실한 TBD를 대체할 수 있는 견고하고 가치 있는 비행기임을 증명했습니다. 저는 이 전투에서 많은 것을 보고 겪은 비행기의 기체 번호를 기억하고자 항상 노력합니다. TBF-1 BuNo 00380으로, 우리 비행대에 인도된 첫 비행기였으며 측면 번호는 8-T-1이었습니다. 전투 당시 일본군 전투기들이 제가 탄 어벤저의 8-T-1 이라는 측면 번호 때문에 우리를 잡으려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종종 궁금해 하곤합니다. 어벤져는 나중에 진주만으로 반환되어 조사되었습니다. 엔지니어들은 비행기에서 기관총 총알 64발과 20mm 기관포 9발에 피격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더 많은 총알이 맞았을 수도 있지만 기관포에 맞은 부위때문에 가려졌습니다.미드웨이 분견대의 TBF 6대와 호넷 TBD 15대 중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귀환한 비행기는 우리 비행기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Earnest소위와 저는 동료 모두를 상실했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저는 Fieberling중위가 출격금지 명령을 내린 1등 항공 기관병 William Coffey와 함께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의 몇 안 되는 개인 소지품들을 정리하고 포장하는 슬픈 임무를 맡았습니다. 소중한 시집, 편지, 연인과 가족의 사진이 담긴 책이었는데, 그 모든 것이 어떻게든 사라진 주인들을 닮았더군요.- Ferrier의 전후 회고 내용 중https://www.history.navy.mil/about-us/leadership/director/directors-corner/h-grams/h-gram-072/h-072-1.html - 원문 출처
작성자 : 투하체프고정닉
차단하기
설정을 통해 게시물을 걸러서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