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천후 속 공룡능선]

회색 안개가 뿌옇게 능선을 감싸기 시작한 건 정오 무렵이었다. 설악산 공룡능선을 지나던 다섯 사람—20대 대학생 지훈, 30대 직장인 수연, 40대 중반의 산악회 회원 민수, 그리고 50대 부부인 영철과 미경—은 각자 다른 이유로 이 자리에 있었지만, 지금은 하나의 팀이었다.

비는 바람과 함께 수직으로 쏟아졌다. 날카로운 바위들이 미끄럽게 젖어 발을 헛디딘 지훈이 넘어졌다. 뒤따르던 민수가 재빨리 손을 뻗어 지훈을 붙잡았다.

“괜찮아? 여긴 한 발 한 발이 중요해.”

수연은 빠르게 방풍 자켓을 꺼내 지훈에게 덮어줬고, 미경은 따뜻한 물 한 모금을 건넸다.

“고맙습니다…” 지훈은 숨을 고르며 말했다.

“우린 팀이야, 끝까지 함께 가야지.” 영철이 무겁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능선 위를 조심스럽게 걸었다. 천둥이 멀리서 울리고 있었지만, 그들의 발걸음엔 포기가 없었다.

악천후는 분명 위협이었지만, 동시에 사람과 사람 사이를 더 가깝게 만들어주는 고리가 되었다. 그날 그들은 정상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더 값진 것을 얻었다.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