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의 두발 규정은 여전히 계급과 성별에 따라 차등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병사에게는 앞머리 5cm, 윗머리 3cm 이내의 스포츠형 머리가 강제되지만, 간부에게는 가르마를 탈 수 있을 정도로 긴 머리도 허용된다. 여군의 경우도 병사와는 다른 기준이 적용되어 묶음머리가 허용된다. 동일한 조직, 동일한 상황임에도 신분과 성별에 따라 규정이 다르게 적용되는 이 구조는 과연 정당한가.

 국방부는 이에 대해  "기강 유지" 와 "조직 운영 효율"을 명분으로 제시한다. 특히 병사 수가 많아 통일된 외형이 필요하고, 복무 기간이 짧아 강한 규율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반복해왔다. 하지만 이것은 외형을 통제함으로써 기강을 세우겠다는 발상이며, 결국 머리카락 길이로 위계를 각인시키고, 복종을 외형으로 강요하겠다는 의도에 불과하다. 기강은 두발 규제가 아니라, 명확하고 합리적인 지휘체계와 소통 속에서 형성되어야 한다. 전투력은 머리카락 길이로 생기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위계 강화를 위해 병사만을 대상으로 한 일방적인 규제가 신뢰를 해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병사 수가 많기 때문에 외형의 일괄 관리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인권보다 행정 편의를 우선시하는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머리 길이가 약간 다르다고 해서 부대 운영에 실질적인 차질이 생기지는 않으며, 특히 짧은 기간 복무하고 사회로 복귀하는 청년들에게는 납득 가능한 수준의 기준이 필요하다. 군은 이제 단순히 명령에 따르게 하기보다, 합리적인 규정과 존중을 통해 자발적인 신뢰와 책임감을 이끌어내는 조직으로 변화해야 한다.

  '전시 대비’를 이유로 제시하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방독면이나 헬멧 착용을 위해 머리카락을 짧게 유지해야 한다는 설명은, 병사만이 아니라 간부 역시 똑같이 전시 장비를 착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주장이다. 실제로 방독면 착용의 효율을 강조하면서 남성 병사만을 대상으로 규제를 강화하는 건, 전시 대비라는 명분이 아니라, 복종 훈련을 위한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미 이러한 구조를 지적하며, 성별과 신분에 따른 두발 규정의 차등 적용은 헌법 제11조의 평등권에 어긋난다고 결론지은 바 있다. 그러나 국방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명문화된 규정보다 전통적 조직문화와 관행을 우선시하며, 기강 약화에 대한 막연한 우려를 이유로 변화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변화가 어렵다는 주장은 일면 타당할 수 있다. 그러나 변화가 어렵다고 해서 그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헌법이 정한 평등의 원칙은, 변화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무시될 수 있는 기준이 아니다. 누구든 법 앞에 평등하며,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이 원칙은 병역의무를 수행하는 병사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

 군대는 국민을 보호하는 조직이며, 구성원 또한 국민이다. 머리카락 길이로 존엄을 재단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 병사든 간부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전시에 필요한 기준이라면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마땅하다. 국방부는 더 이상 병사만을 대상으로 한 과도한 규제를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방치하지 말고, 성별과 신분에 상관없는 일관된 두발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복장 지침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 질서에 기반한 인권 존중과 신뢰받는 군 조직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