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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넘치다 못해 지루한 일!!도전하십시오!!~~~~

(58.238) 2008.06.27 15:3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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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3 class=posttitle>이제는 말한다. 21세기형 유망직종 백수</H3>

1. 잡소리 한 사발 먼저

아, 정말 글쓰기 어렵다. 백수의 생활을 글로 풀어내라는 것 자체가 쑥스럽기 그지없는 일인데 게다가 자본주의가 어떻고 하는 부제가 붙어버리니 정말 대책이 안 선다. 아무리 세기말 막가는 세상이라고 해도 백수에게 백수생활을 적어달라는 청탁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우선 몇 가지 조건을 달아야 한다. 아직 생존해 계신 내 친척분들께서 이 글의 존재 자체를 모르셔야 한다. 이건 울 아버님 어머님을 포함한 얘기다. 또 하나, 나를 먹여 살리는 많은 독지가 여러분들이 분노하지 않도록 여기저기 연락을 해둬야 한다. "저 고대문화에 글 안 썼어요."

지금부터 꺼내는 이야기는 \'백수이야기\'다. 그러나 IMF 이후 예정보다 빨리 일선에서 은퇴한 분들, 보금자리를 잃거나 버리신 분들, 재취업의 기회를 갖지 못해 괴로움에 시달리는 분들의 얘기가 아니다. 전백련을 결성해 백수들의 권리를 찾겠다고 나서는 분들의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가 배운 말대로 표현하자면, 오늘날의 기준으로 백수의 삶을 구가하고 있지만 취업 중도 취업준비 중도 아닌 제3인력 군(?)으로서 자리하는 분들의 이야기다. 아주 자본스럽게 얘기한다면 자라나고 있는 \'틈새시장\'을 개척하는 분들일까?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 왔지만 변화하는 사회 일각에서 점차 목소리를 높이는, 필자의 주관을 담뿍 쳐서 마구 확대 해석하자면 그 변화를 명백히 주도하는 인간군상들의 예기이며, 울 어무니 아부지께서 뼈빠지게 벌어 되라고 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고 삐딱선을 탄 사람들의 예기다.

그러나 돈 잘 벌고, 남자는 순종적인 여자 만나고, 여자는 잘나가는 남자 만나고, 낳아도 아들만 떡 하니 낳고, 집안에 뭔 일 있을 때 힘깨나 쓸 수 있고, 경조사에 화환 줄 서고, 명패에 의해 사회적 존경(?)받는 그런 사람이 되느니 차라리 백수로 살겠다고 나선 사람들의 얘기다. 아니, 직장을 다님에도 불구하고 "난 백수예요"를 외칠 수 있는 이들. "밥은 먹어야죠. 이건 아르바이트예요. 난, 언제나 내 길을 갈 거예요." IMF 와 무관하게 평생직장의 신화를 달갑게 바라보지 않는 이들. 인류 역사에 고작 몇 백 년 되지 않는 산업구조에 목매고 살기를 비웃는 자들. 그래서 이들은 스스로를 백수라 부르기 주저 않는다. 직업란에 당당히 \'백수\'를 기입하는 이들. 그들의 이야기이기도 할 터이다. 조금 더 풀어서 이야기해보자.

가을학기 시작한 며칠 후 어느 저녁.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독일에서 막 귀국한 진중권씨를 \'저자와의 대화\'형식으로 초청했다. (진중권씨가 이 글을 안 보실 거라 강력히 믿고 여러 질문과 답변을 발취해 구성해 본다.)

"질문 있슴다. 요즘은 흔히 문화평론가, 미디어평론가, 예전에는 프리랜서라 부르는 직업이 있지요. 이를 거칠게 번역하면 백수라고들 하던데요. 이제 진중권님은 뭐라 부를까요?"
"백수죠, 뭐."
"질문임다. (중략) 이제 어떻게 먹고 사실 계획......"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글쎄요. (이하 생략)"

대한민국은 양반들이 사는 나라다. 옛적 양반사회에서는 각기 다른 호를 지어 불렀다는데, 요즘 양반들은 명함이란 것을 찍어 돌리며 자기 정체성을 찾고 산다. 그러나 호와는 달리 이 명함이란 녀석은 도통 낭만을 부여할 길이 없다. 대표이사, 과장, 대리, 이사 따위 하드코어로부터 XX켄터키치킨, OOO보일러, XO슈퍼 슈퍼맨 등등 온갖 직함 속에 자기를 담아낸다. 이 명함 권하는 사회에서 뭔가 내밀 것 없는 어른을 우린 백수라 부른다.

\'또 다른 백수를 만나실 때는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세기가 바뀌고 밀레니엄에는 버그가 산다는 소식이 들린다. 때맞춰 신종 변형 백수들이 등장하고 있으니, 이들이 \'문화백수\'를 필두로 한 \'바쁜 백수\'들이다. 이들은 대개 먹물 깨나 먹은 경우가 많다. 그리하여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겁니다\' 라고 당당히 주장한다. 응? 뭘? 뭘 안 하는 거냐고?

거창하게 말해볼까? 그들은 산업사회로의, 온갖 짜부라진 기존 질서로의 편입을 거부한다. 물론 정말 실력을 갖추고 굶지 않고 살아가면서 Free! 를 선언하는 능력자들도 있지만, 필자와 같이 일단 싫은 것은 싫다고 \'거부\'부터 하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 거부의 대상에는 직업, 결혼, 육아, 군대 등 에서부터 애국심, 신자유주의, 가부장제 등등 첨부설명 듣기 전엔 뭔 소린지도 모를 온갖 것이 있다. 공통점이 있다면 \'똑같아 지는 것\'에서부터 \'귀찮은 것\'까지, 하여간 \'싫은 것\' 전부라 할 수 있다.

우선 타겟은 열 받는 직장생활. 부속품처럼 살도록 짜여있는 생활이 싫다. 나 갈구는 인간을 살찌워주기 위해 목숨 바쳐 일한다니? 애들 분유 값 번다고 나 역시 딴 사람 갈구기까지? 무너지는 평생직장, IMF를 맞이하여 대오각성이 일어난다. 힘이 더 들더라도 인간적인 대우를 바라는 이들, 그들은 직장종속의 패러다임에서 자의 반 타의 반 깨어나는 것이다.

밥 벌어먹기부터 삐딱한 이들, 어디까지 \'멋대로\' 살 수 있을까? 결혼은 옵션이다. 결혼식은 어차피 효도관광이다. 출산은 쥐약이다. 남녀 불문하고 - 특히 여성들은 \'내 인생은 여기까지\'를 선언해야 감행할 수 있는 지고지순의 가치다. 남자는 대학 물 1년 먹은 겨울이나 2년 먹은 겨울, 입대 하고 + 제대 후 교양필수나 다름없는 어학연수 한 학기 뛰고 + 돌아와서 그 동안 까먹었던 학점을 보충하고 + 열 맞춰 취업하는 공식은, 교복입고 단발머리하고 \'앞으로 나란히\' 하는 거랑 진배없다. 박찬호 선수가 돈 많이 받는 것을 \'우리의 승리\'로 열광하고, 박세리 선수 \'난 루키에요\'라고 인터뷰할 때 삼성 마크 보고 한국기업이라 좋아하는 \'덩어리즘\'은 유머와 풍자거리로도 진부하다. 내 밥 굶어 이제까지 누구 좋은 일 했는가 한 번도 따져보지 않은 사람은 갈 수 없는 길. 그것이 \'자발적 백수\'들이 걸어가는 전도 양양한 샛길이다.

나는 백수다. 이게 내 명함이다. 부업으로 몇 개의 직함도 있다. 지하철 표 끊을 때 \'학생\' 한다. 밤이면 PC통신 동호회 몇 군데 시삽이다. 웹으로 가면 창간을 준비하고 있는 어떤 웹진 편집위원이다. 하지만 난 아직 내 직업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백수 + 예비백수(?) + 예비노동자(?) + 예비자본가(!) 다. 휴학하고 돈벌이 다닐 때는 다들 백수 취급하더니, 복학하고 나니 갑자기 학생이라고 신분차별을 한다. 요즘 학생, 그게 어디 옛적 낭만 어린 \'모던\'한 \'학상\'들과 같은 값인가? 물론 술자리 파할 땐 신분으로 써먹지만.

당신에게 묻노라. 당신은 어디 가서 \'당신은 뭡니까?\'라 물을 때 당당하게 답변할 말이 있는가? 대기업 사원? IMF 이후 사위 후보 1순위 공무원? 거품경기 휘어잡는 펀드매니저? 뭐? 그냥 2학년, 4학년, 그렇다고? 그럼 이봐, \'장래희망\'이 뭐냐?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뭐냔 말이야?

단언하건대, 우리네 사회는 12년간 공교육을 통해 어리고(?) 여린(!) 우리에게 꿈과 희망 갖기를 강요한다. 그리고 잠깐 줄서기 과정을 통해 가뿐하게 이를 앗아간다. 한 반에 몇 명, 몇 십 명 나오던 대통령, 과학자, 장군들은 다 어디 가고 오늘 우리 현실을 요약하면 너나 나나 \'직장인\', \'가족\'이란 \'돈 버는 단위\', 장래희망 \'월 수입 상승\'이다. 우리의 소개는 \'어디 다녀\'다. 명함을 주고 받고 이 인간이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 확인을 한 연후에야 \'애 몇 살이야\' 가 따라나올 수 있으니까.

틀 속으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 이제 선택하라. 순응을 택한 당신은 군대를 빨리 다녀올수록 좋다. 아니, 혹시 남성대학인이라면 신 사회인맥으로 등장하고 있는 ROTC를 권한다. 여성대학인이라면 영어와 컴퓨터를 함께 배워 외국계 회사를 다녀라. 조금 더 남들 머리를 밟고 설 수 있다면 아예 외국으로 뜨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어차피 편입될 사회라면 조금이라도 덜 치사하게 살아야 한다. 이 선택이라면 구차하게 더 뭘 쓰겠는가? 그냥 우리네 오빠언니에게 물어봐라. 직장 몇 년 차면 알아서 다 답을 준다. 단, 대답해주는 이의 연봉이 내 가치와 많이 차이 안 나는 경우가 좋을 것이다. 내 상품성에 대한 평가가 엄정하지 않으면 평균 이상으로 살면서도 죽고 싶기 십상이다.

문제는 다시, 건방지게도 \'질서에 대한 거부\'를 택한 당신이다. 사회학자가 정말 언어마술처럼 부여해준 말을 끌어다 붙이자면 \'여백의 질서\'를 택한 당신이 문제다. 남들 다 하는 취업을 안 하고 못하는 당신이 이제 잠시, 여기 먹고 살기 위해 자판을 두들기고 있는 한 백수를 훔쳐본다. 왜 자꾸 군대 연기하냐고 묻는, 병무청의 친절한 질의서를 놓고 무시할까, 말까 저울질하고 있는 이 날 백수의 삶을 통해 성공적인 당신의 비즈니스를 논해보자. 잘 생각하라. 당신의 지갑이 아닌, 당신 인생이 남는 장사를 하기 위한 발악의 샘플로 보아야 한다.

흔히 말하는 고딩시절, 학과공부보다 서클활동에 열을 올리던 이 소년은 특정 서클의 대표이사였다. 그러나 문예반이라는 이름의 그 동네 출신자라고 남들이 우러러보는 사이, 읽은 책이라고는 박정희 대통령 각하 위인전 따위 밖에 없는 이가 점차 위선과 염증을 느낀 것은 교장 선생님께옵서 교지편찬의 주제를 \'산업혁명\' 따위로 하달하신 무렵이었다. 오해 마시라. 스티븐슨의 증기기관차가 얼마나 중요한 발명인지 \'선언문\'을 말하는 것이다. 결코 도시 노동자들이 중노동을 이기려 알코올에 중독되어 갔다는 슬픈 역사가 아닌 것이다.

그리하여 난 \'Free\'를 선언했다. 건방지게도, 담당교사의 놀란 토끼 눈을 뒤로하고 \'서클사표\'를 쓰고 난 후, 후배들이 만든 \'수학 경시 반\'에 가입 원을 냈다. 졸업 시 생활기록부에는 \'바둑 반 - 아마 성실했을 것이라 기록되어 있다.

소속은 선입견을 낳는다. 다행히도 생일을 잃어버린 나는 나이를 함께 상실했다. 액면가는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서른으로 보이고 하는 짓은 텔레토비 세대(물론, 텔레토비는 10세 이하와 20세 이상으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는 연구조사가 있다고 한다. 특히 좌우 극단에 가까워질수록 호응은 종교성을 띤다고 한다. 증빙자료 없음.) 라 할 수 있다. 학회와 소모임, 분과위주로 운영되던 학과에 입학해 아무런 소속을 갖지 않은 건, 내 무늬뿐인 대학생활의 바탕이 되었다. 단짝을 만들 수 있는 기회는 잃었을지 모르지만(?), 누구와도 적당한 거리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여유를 얻었다. 그 상태로 조용히 공부나 하고 살았으면 수도승이 되었겠지만, 좁은 세상 더 좁게 살기 싫었던 나는 밖으로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바깥으로 돌아다닌 사람들은 나 외에는 대개 특정 운동집단, 정치조직들에 소속한 사람들이었다. 소속이 없었기에, 나이가 불분명했기에(-.-;;) 단지 사람과 사람이라는 기본 전제만 가지고 만날 수 있었던 여러 사람들. 그들은 대개 명함을 지닌 백수들이었다.

소속 중 가장 강렬한 것이 무엇인가? 혈연, 지연, 학연 3대 네트워크 중에서 첫째는 역시 혈맹이다. 좋게 말하면 믿을 사람은 가족뿐이지만, 각자의 인생을 가장 피곤하게 하는 것도 가족인 경우가 많다. 혹시 \'난 아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은 언제나 좋은 기억 남기기를 바란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정말 행복만이 가득한 가정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런 것이 있다면 아마도 온 가족이 가부장제를 사랑하여 아빠에게 충성하는 것이 최고선으로 평생 믿고 따르는 경우 정도가 아닐까?

각설, 도시문화연구운동을 기업적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는 \'민들레영토\'의 지승룡 소장님의 말씀을 빌리면, \'출가는 젊은 날의 긍정적 경험\'이다. 가출과 출가의 차이는 별로 신경 쓰지 말자. 집에 불만을 품고 뛰쳐나온 것도 아니고, 방 얻어주셔서 공부에 매진하고자 학교 근처에 자리잡은 것도 아닌 \'쫓겨난\' 내 입장은 가출도 출가도 아닌 그저 \'독립\'이었을 뿐이니까.

뭔지 모를 활동을 한다며 며칠에 한 번씩 잠자러 집에 들어오는 아이에게 부모님의 요구는 간단했다. \'인간답게 살아라\', 아니면 \'나가라\'. 나의 주관으로 보면 나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택했다. 부모님 주관으로 보면 나는 \'놀러 다니는 것\'이었고, \'타이르는 것\'이었고, \'삐딱하게 뛰쳐나간 것\'이었다. 객관적으로 정리하면 쫓겨난 것이지, 물론. 집 없이 사는 소년의 스토리는 안 봐도 파노라마. 약 4~6년에 걸친 방랑 생활은 아직 종지부를 찍지 않았다. 제도권 사회편입을 원하는 20세기 인간형에게 가출은 최악의 선택이다. 부모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지원\'은 충분히 받아라. 자신에 대한 투자는 아무리 많이 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중에 이자 붙여 충분히 갚아드리면 된다. 낭비가 아닌 투자에 한한 얘기지만.

그러나 당신과 같은 백수지향에게 독립이란 꼬옥 권할 만한 일(기억해달라. \'너도 당해봐라!\' 는 심보가 전혀 들어있지 않다는 말은 한 적 없다.) 이다. 그러나 선택 가능한 삶의 방식 중에 \'빈대\'는 권하고 싶지 않다. 대개 많은 이들이 빈대 붙을 수 있는 대상은 역시 \'백수\'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백수 심정은 백수가 알아준다나 어떻다나.

내 경우, 독특한 경우겠지만, 다른 이의 가정 속에 미끄러져 들어가 살아볼 기회가 있었다. 이른바 공동가옥의 형태를 띤 적도 있었고, 정원 딸린 집에 군대간 친구 대신 아들 노릇하며 풍요로운 삶을 살아보기도 했다. (남들이 그러던데) 다양함을 보면 당연히 삶을 보는 폭이 넓어진다. 깊이 있는 성찰과 폭넓은 삶 중에 무엇을 택할 것인가? 보통 \'어른\'들은 비교적 더 파릇한 이에게 후자를, 사회편입을 앞두고 있는 삭은 이에게 전자를 권한다. 그러나 백수는 상관없다. 둘 다 추구할 수 있는 멋진 기회, 안 굶어 죽으면 평생이니까.

노느라 바쁜 이들은 고전적 개념에서 상층백수인 한량들이다. 자본수입에 의지하여 사는 그들은 \'의지\'가 없다. 의지가 있는 실업자들 중,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자발적 실업자와 바쁜 백수는 어떻게 다른가? 바쁜 백수들은 말 그대로 바쁘다. 뭔가 배우느라 바쁘고, 뭔가 하느라 바쁘다. 자발적 실업자는 다음 취업을 위해 준비기간을 갖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바쁜 백수들은 그 자체가 직업이다. 그들이 경제활동을 위해 종사하는 곳들은 설령 그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아르바이트에 불과하다.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경제적 수단으로서의 일자리. 몸은 일할 수 있지만 정신은 종속되지 않는 것이다!

백수의 교실은 뒤풀이, 술자리, 서점 등등 다양하게 깔려있다. 보통 세미나보다 뒤풀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백수가 될 소질이 있는 사람이다. 백수에게 있어서 세미나보다 뒤풀이가 더 어울리는 이유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 보통 깊이를 더하는 공부는 세미나로 얻고, 인생의 폭을 넓히는 장으로 뒤풀이를 활용한다. 뒤풀이는 살아있는 지식을 준다. 뒤풀이는 밥을 먹여준다. 뒤풀이는 새로운 독지가를 찾게 해준다. 뒤풀이는 심지어 다양한 식 문화를 구경시켜준다. 뒤풀이는 잠자리를 제공해주는 경우가 많다. 세미나는 새 시각을 열어주기도 하지만 한 시각에 편입시키기도 한다. 세미나는 소속을 필요로 한다. 세미나는 예습이 필요하다. 세미나 커리를 보관할 내 방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세미나보다 뒤풀이에서 눈맞을 확률이 높다. ^^;

누가 그랬나.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고. 뒤풀이로 만난 이들은 내게 늘, 새로운 삶에 대한 복음을 전해 주었다. 한 계단 한 계단, 취객과 함께 바라본 세상은 갑갑하기 그지없었다. 이제 백수는, 밤에 배웠으나 낮에 일을 해야 했다. 무엇을 하나.

2. 백수, 무엇으로 살 것인가?

사회단체의 간사들은 대표적인 명함 가진 백수다. 그분들이 왜 백수냐고? 그건 우리의 아버님 어머님 세대에 여쭤볼 일이다. \'여자는 애 잘 낳고 그저 집에 쥐 죽은 듯이 있어야 한다.\'를 당신 어머님께옵서 지론으로 삼고 계시는 한, 인간미가 인간관계의 기본이지만 기왕이면 율사나 의사 집안과 사돈 맺으려는 당신 아버님이 계시는 한, 아직 전문백수들은 자기소개하기가 쉽지 않다.

집에 돈을 부치지는 못할 망정 타 쓰기 민망한 삶도 있지 않은가. 참여연대, 환경련, 인권운동사랑방 등 비교적 많이 알려진 곳들의 일하시는 분들만을 떠올리면 인식이 많이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름 잘 모르는 청년단체나 문화단체에서 상근자 반상근자로 일하는 많은 분들의 부모님은 자식을 어찌 생각하시겠나. 하고 싶은 일 한다고 돈 많이 못 버는 것까진 좋지만 대개 결혼에도 둔감한 이들에게, 보수적인 집안의 여식들은 가장 피곤한 시달림을 받는다. 이쯤 되면 출가는 효행이다.

논객들을 많이 볼 수 있는 문화백수들의 세계는 이미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다. 인문사회과학출판사는 IMF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이미 더 잃을 것이 없는 분야라 하며 웃음짓는 모 출판사 영업부장님의 말씀은 문화백수들이 살아온 오랜 세월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생각해보라. 학계와 문단에 뚜렸이 자리하지 않은 많은 필자들, 그들의 평소 삶이 어떠하겠는가? 인세 받으면 술 한 잔 풍류에 날릴 줄 아는 그분들의 세계는 시간 당 몇 푼 나오지 않는 고강도 저임금 노동판의 일종이다.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며 음악과 영화에 인생을 거는 백수들도 점차 늘고 있다. 그러나 기타에 인생을, 영화 판에 목숨을 거는 이들은 \'한 몫 잡아 잘 먹고 잘 살려고\' 이 분야를 택하지 않는다. 고상하게 말하면 동경의 대상이랄까? 그러나 우리 식으로 말해 \'좋아서\'.\'한다\'.

네트워크의 세계는 \'정보\'라는 이름으로 당신의 직업에 대해 손짓 발짓으로 두려움을 주려 한다. 임금노동과 여가생활 이분법은 네트워크가 보편화될수록 점차 깨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그리고 이것이 21세기 정보화 사회가 과거 산업혁명과 맞먹는 정보혁명을 바탕으로 한다는 식자들 논평을 일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반영이라 생각한다. 네트워크를 통한 연대의 경험은 폭발적인 활동력을 키워준다. 경험과 활동력의 근간은 역시 정보력이다. 내 경우, 성문제에 대한 포럼을 열어 꽉 막힌 내 사고방식을 조금은 치유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환경운동을 직업으로 하고 부업으로 이런저런 직장을 다니는 분들을 처음 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전형적인 \'바쁜 백수\' 중 대표적인 사례로 환경우동의 전사들을 꼽고 싶다. 이분들 중에는 심지어 반핵운동을 직업으로 삼고 \'시의원\'을 부업으로 선택한 과천시의회 최경송 의원 같은 분도 있다. 의회가 열려야 활동비가 생겨 버스를 타고 다닌다며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드는 이 분은 24시간 걸어 다니는 아이디어 뱅크이자 365일 불덩이처럼 일하는 활동가의 표상이 아닐까 (이건 순전히 나를 비롯한 그의 주변인들의 평가이니 반론은 제기하지 마시라!).

신념에 몸을 던지는 정열은 과거 운동권들이 요구하는 \'헌신\'보다 덜하지 않으면서도, 뭔가 열심히 한 후에 심야 \'한 게임\'(가벼운 음주와 당구. 그리고 즐거운 뒷담화)으로 하루를 갈무리할 줄 아는 \'멋을 낼 줄 아는 사람\'이다. 본업을 즐긴다는 것,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밥 먹고 살고 싶다는 것은 이런 신종 백수들의 은근한 바램이다.

전망 좋은 직장으로 지역운동을 꼽고 싶다. 지금은 활동가들 온 몸으로 고생시키는 분야지만, 내 삶의 터전은 간 곳 없이 당신네 고향만 따지는 요상스런 풍토가 가라앉을 무렵이면 분명 가장 \'즐거운\' 직업이 될 것이다. 아니, 즐겁게 지역운동에 뛰어드는 사람이 많을수록 TK니 PK니 호남향우회니 하는 지연의 고리가 현 생활터전 중심으로 돌아앉을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다. 몽둥이 들고 용역깡패에 저항하는 것이 이제까지 보편화된 지역연대 활동이었다면 - 물론 지금도 \'만행\'은 계속되고 있음을 결코 망각해선 안되겠지만!!! - 조금씩 지역사회운동으로의 전환을 전업활동가와 사회복지사들의 노력 속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주로 눌러 붙어 있던 백수들의 동네는 정보(네트워크), 교육, 학술 (서점/출판사), 문화 (영화/비평) 판이다. 지금 무엇을 하는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는 묻지 마소서. 내키고 당기는, 물론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아니지만 재미는 넘치는, 여러 일감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며, 그 선택들이 반쯤은 행복하고 반쯤은 고민되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흥 백수들에 대한 얘기들을 난삽하게 뒤져봤다. 물론 이들은 고전적 실직의 의미로 사용하는 백수에 비해 \'소수\'에 불과한 계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가진 생각이, 글발 날리는 논객들만의 것이 아니라 점차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물론 IMF로 성장경제의 신화가 깨어진 것이 그 첫째 이유겠지만, 인터넷과 통신네트워크와 활발한 보급 역시 조용히, 삶에 대한 의식 자체를 저 밑바닥으로부터 바꿔놓고 있다.

정보화의 노도는 가정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직장으로, 직장에서 다시 가족으로 60억 인구의 가장 일반적 표준에 \'내 삶\', \'나만의 삶\', \'나의 세계\'를 부여한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나이라는 여자라는 이유로 묶여왔던 온갖 가치들이 그 \'강제력\'을 조금씩 상실해 가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6일 전쟁에서 아랍을 물리친 일화를 들어가며 국가에 목숨 바치기를 강요하던 도덕시간, 북한에 살이 빨갛고 피를 마시며 머리에 뿔 난 사람들이 산다는 국민윤리시간, 혼인서약서에 도장 찍기 전에 몇 살을 먹어도 미성년자 딱지를 박는 윤리시간. 그러나 클릭하고 검색하는 밤의 세계에서 더 이상 누군가가 정해놓은 \'틀\'은 설득력이 없다.

아가들을 폭력과 선정에서 막아보려고 아등바등 대는 \'낮의 어른들\'은, 당신들이 걸어왔단 표준으로부터 이탈하는 삶이란 \'남사스럽고\', \'인간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두려움의 틀 속에는 정말 나쁜 것(?)과 애매하게 나쁜 것(!)이 뒤섞여 있다. 어느 것이든 어른이나 아이나 결국 찾게 되는 것은 \'나의 것\'이다.

내 인생은 밤에 시작된다. 하교 후에 시작되고, 퇴근 후에 시작된다. 그리고 급기야, 시간 가치가 전복되기 시작한다. 학교에 있는 시간은 통과의례고 직장에 있는 시간은 퇴근 후 나의 정체성 유지를 위한 물질적 수단이 된다. 그 무슨 일을 하건, 내 본업을, 내 정체성 자체를 획일적으로 규정할 이유가 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사회운동 활동가, 문자언어와 영상언어, 음향언어로 얘기하는 문화백수들은 이 가치체제 나아가 사회체제 전반의 종요에 조금 앞서 모범을 보일 뿐인 것이다.
오라! 백수의 세계로.

3. 대한민국에서 백수로 산다는 것은......

가족과 촌락 중심의 경제구조가 산업혁명을 계기로 크게 변화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아침에 눈뜨면 밭 갈고 젖 짠 후 선조들로부터 이어받은 가업을 하던 생활을 하지 않는다. 내 땅, 내 사업을 대규모로 갖지 못한 이들이 임노동자가 되어 도시로 쏟아져 나오고, 공장시스템의 한 켠에서 주는 품삯으로 연명하는 삶을 살게 된다. 공장의 소유자는 이제 인력의 소유자가 되어 소속 인간들의 \'삶\'을 지배하게 된다. 피 소속 인간들은 그 \'삶\'을 자신의 천직으로 - 때로는 천형으로 - 알고 반평생 이상을, 때로 그 인생 대부분을 출퇴근 도식에 맞춰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눈앞의 지배가 풀리는 시간, 그것을 \'여가\'라 부르며 감사히 활용한다. 감사한 마음은 밀린 잠을 자는 것으로, 부족한 알코올을 채우는 것으로 점철된다. 문화생활이라는 말이 등장한 것은 언제부터인지, 누구로부터인지 알 길이 없다.

19세기 말엽 유럽의 모습을 우리는 70년대 성장경제 체제하에서 맛보게 된다. 새벽종이 울리고 새 아침이 밝으면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꿨다.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가꾸면 재벌은 커가고 정치인은 금권의 장막을 쌓아 올렸다. 더 높이, 더 튼튼하게. 지금 우리세대가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가치조차 생성된 연원이 짧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신문지상에 한국은 규제의 왕국이라 기업 환경이 안 좋다는 보도가 가끔 심심찮게 나온다. 어차피 인맥, 혈맥, 지맥으로 이어지지 않은 사람은 온갖 규제의 틀에 걸려 자신의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입지가 대단히 좁은 것이 현실이다. 억울하면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원망하라. 그러나 세상 어디에도 지상 낙원은 없으리로다, 아멘.

문제는 \'돈마니즘\'이다. 일감을 얻지 못한 사람이 있는 것은 결코 아름답지 못한 풍경이다. 누구라도 생존에 필요한 최소조건을 갖출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너무 크고 아픈 이 예기는 다시, 덮어두자.

각 유형의 사람들 중 새록새록 자라나는 전문백수들의 당면과제는 무엇인가? 우선 기존 사회체계 안에는 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 \'장르\'가 없다. 상근 비를 받는 활동가가 고용보험에 가입될 것인가? 독립영화단체에서 일하는 분들은 의료보험을 누구 이름으로 내는가? 그러나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가치척도가 \'수입\' 외에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제기하고 싶은 문제다. 얼마짜리 사람이라는 공식으로 사람을 평가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상품생산자가 아닌 정보와 담론의 생산자들은 무엇으로 존재를 확인할 것인가. 기업화하지 않는 문화양식의 선구자들은 언제까지 아르바이트로 연명해야 하는 \'언더\'로 규정되어야 하는 것일까? 본인들이야 성인의 경지에 올랐다지만.

4. 백수의 길을 걷고자 하는 당신께

맞선 보는 자리에는 나오는 인간은 군인과 민간인 두 종류이고, 한국영화에는 명계남이 나오는 영화와 명계남이 나오지 않는 영화가 있다. 물론 백수들의 술자리에도 계급이 있다. 돈 내는 자와, 말 없이 나가는 자.

부모님께 떳떳한, 시집장가 갈 때 길게 설명할 필요 없는 자리를 원하는 사람은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빨리 빨리 자신의 상품성을 높여라. 외국어, 컴퓨터, 운전면허, 번듯한 학위 모두 구비되었으면 도태되지 말고 숨가쁘게 평생을 내달려라. 재수없게 IMF 같은 한파가 예상되면 최대한 돈 많이 끌어 모아 은퇴하라.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비딱한 말 글에는 눈길조차 주지 마라.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살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리고 혹 자신이 택한 노선과 무관하게 조기 실업의 비운을 겪는다면, 마음 편히 \'의지를 가진 백수\'였던 척 하라. 제도에 배신당한 뒤 후회 말고 사회와 제도를 배신하라. 사회적 박탈감이라는 소리에 물 먹이고 어떻든 나는 내 삶을 살아야 할 테니.

그러나 내 삶을 내 멋대로 만들 요량이라면,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 차근 차근 준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다면 그에 맞는 경제적 준비가 있어야 하고 그러자면 사회와의 타협이 불가피할 수 있다. 출가의 때를 놓쳐 부모님을 모셔야 할 상황이면 또 나름의 비책을 세워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 삶의 목표를 만들어야 한다. 직장이 있고 없고의 유무는, 생존문제 해결이 1차 과제겠지만 사실 내 정체성의 절대 조건이 아닌 것이다. 내가 사는 이유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유연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자만이 백수 타이틀을 원만히 받아들일 수 있다.

몇 해 전 스스로를 프로백수라고 밝히는 이의 하루 일과를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본 적이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아무리 발악을 해도 취직이 안 되길래 열심히 놀아봤더니 만만한 일이 아니더란다. 그래서 직업적으로 놀기를 마음 먹었는데, 놀려니 돈이 필요하고 같이 놀 사람도 필요하고 놀 \'꺼리\'도 필요하여 준비할 것이 한 둘이 아니라고 피력했다. 그리하여 그는 파트타임으로 파출부 (그는 분명 남자다.) 일을 하여 차비를 마련하고, 웹을 통해 각종 무료 시사회, 전시회 등의 정보를 수집하여 문화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물론 만나는 친구들은 철저히 직장인 중심이었고 (직장인 친구들은 백수에게 계산을 요구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으며, 어쩌다 한번 턱을 내면 몇 배의 감동을 받는다.). 그들이 들으면 솔깃할 만한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친 화제거리를 찾기 위해 신문이나 뉴스, 각종 정보를 꼼꼼히 공부하고 있었다. 틈틈이 사회봉사활동도 하고 있었으니 어지간히도 바쁜 직업인인 셈이다. 그의 꿈은 \'백수\'가 하나의 당당한 \'직업\'으로 인지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때 추진 중이던 백권투 사무실 설립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결코 놀고 먹는 날 백수가 아니라 나름대로의 정체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활동하는 자! 그는 자신의 \'백수\'라는 직업에 충실하였으며 나름의 전망을 만들어 가고 있었으니, 이쯤 되면 그는 진정 \'프로\'인 것이다.

무엇을 하고 싶은가? 당신에겐 남들이 가지지 못한 \'시간\'이라는 막강한 무기가 있다. 당신이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당신은 문화비평가일수도 있고, 사회운동가도 될 수 있고, 프로 게이머도 될 수 있다. 자, 이제 방구들 지킴이 노릇은 그만하고 대문을 박차고 나가라. 호주머니에 버스 비 500원만 있으면 된다.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곳은 너무나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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