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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핀오프 옥경혜랑 드라마 후의 이야기_25_25.문옥경

정갤러(221.145) 2025.02.07 09:23:20
조회 641 추천 16 댓글 11

25. 문옥경


밤이 깊어지니 날이 더욱 차다.

그녀는 내게 

-호텔로 일단 돌아가요. 날이 차요. 모셔다 드릴게요.

하고 말한다. 


승강기에서 나는 다리에 조금 힘이 풀려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몸이 기울어진다.

그녀에게는 좋은 냄새가 난다. 저번에 내게 준 향수에서 나는 것과 같은 향.

-괜찮아요? 

그녀는 자신에게 기울어진 내 몸 쪽의 팔을 가볍게 붙들어 주며 말한다.


-완전 멀쩡해요. 우리 조금만 더 마셔요. 조금만 더.

그러면서도 나는 혀도 약간 풀리고, 여전히 똑바로 서지도 못한다.


그녀는 창가 앞에 서고, 나는 소파에 털썩 구겨져 앉는다.

-이건 위스키라고 하는 술이예요.


-좀 독할텐데.

그녀는 룸서비스로 부탁한 얼음에 위스키를 따르며, 내게 건넨다. 얼음을 시키면 얼음이 오다니. 그것도 신기한 일이다. 


조선의 술에서는 한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 독특한 향. 내게는 매력적인 향이다. 

역시 그녀의 말처럼 향과 함께 목이 타는 듯한 느낌에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몇 초가 지나지 않아, 술기운이 오르며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아편에 불을 붙이는 그녀를 보며 내가 말했다. 


-아편을 하면, 고통이 사라지나요?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런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죠. 하지만 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녀가 말한다.

-다만 언젠가는 사라지긴 하겠죠. 당신이 죽게 될 테니까.이건 악마같은 거예요.


내가 관심을 보이지 않던 아편에 대해 묻자, 그녀는 조금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왜요, 고통스럽나요?

-아마도...

-그렇지만 지금 이미 당신은 아편이 필요없을 만큼 취했어요.


그건 사실이었다. 

나는 너무 취해서 사실 몸을 가누는 것 조차 힘들었다.

나는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있고, 창밖에 달이 환하다.

그녀는 창가의 테이블 앞에 서서

고요히 나를 바라보고 있다.

문득 불을 붙인 아편을 그녀가 그저 테이블 위에 두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가 연기를 빨아들이지 않자 절로 사그라드는 불꽃.


-아까 왜 운건지 물어봐도 되요?


술에 취해서인지 나는 저항없이 말한다.

-내일 친구가 혼인을 하거든요.


-친구가 결혼을 하는게 그렇게 슬플 일인가요?


그러다 문득 그녀는, 

-아, 정인이 혼인을 하나요? 내일?

하고 되물었다.


-정인?

나는 그 단어가 나와 혜랑이 사이에 어울리는 단어일까 고민하면서 말이 없었다.


그녀는 조금 놀랐다는 듯이,

-정인이 있었군요…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너무 작은 소리라 잘 들리지는 않았다.


-우리 사이가 그런 건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 아이가 떠난다는 생각을 하면…

나는 목소리가 떨려와 잠시 말을 멈춘다.

-마음이 아파요.


그녀가 말했다.

-마음이 아픈 건, 당신이 당신 마음에 대해 무책임해서 그런거예요.


무슨 말인지 나는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그저 무책임하다는 말만, 

내 머릿속에 맴돌면서 내가 무엇에 무책임한지 생각하고 있었다.

약간 서운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그녀가 내게 물었다.

-당신이 정말 바라는게 뭐죠?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사람이 행복하길 바라나요?


-모르겠어요. 아마도요. 그 사람이 불행하면 슬플 것 같아요.


-그럼 그 사람이 행복하면 당신도 행복하나요?


-모르겠어요.


그는 유리잔을 흔들어 얼음을 녹인다. 얼음이 유리잔과 부드럽게 부딪히며 소리를 낸다. 하지만 마시지는 않는다.


-당신은 모르지 않아요. 당신은 뭘 바라죠? 당신이 원하는 걸 말해 봐요.


나는 잠시 침묵한다.

술 기운에 정신이 몽롱하다.

문옥경, 네가 정말 바라는 게 뭐야.

그 순간, 마치 번개가 치고 세상이 번쩍이는 순간처럼

내 마음에서 어떤 분명한 소리가 들렸다.


-갖고 싶어. 그 사람을 가지고 싶어요.


나는 위스키를 조금 더 마시고자 몸을 일으켰다.

넓은 유리창으로 경성의 야경이 아름답고 겨울밤의 달빛이 환하다.


그리고 문득 그녀가 창가에서 내게로 다가온다.

그녀의 등 뒤로 달이 하도 밝아서 그런지 꼭 그녀가 달에서 온 사람같다.

그런데, 가까이 온 그녀는 혜랑이다.

나는 놀라서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혜랑아…


달에서 온 그녀가 내 뺨을 어루만지며 말한다.


-나도 널 갖고싶어.


내 눈에 그녀는 분명 혜랑이었지만, 

그녀는 혜랑이 아니다.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내게 더 가까이 다가오기 전에 

나는 이미 그녀의 허리를 끌어 당긴다.



엄청난 두통에 겨우 눈을 뜨자 나는 침대에 엎드린 채 누워있었고, 

창밖으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하아…

벽에 걸린 괘종시계는 거의 열한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곧, 혜랑의 혼례식이 시작될 시간이다.


나는 엎드린 상태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침실에 나는 혼자 누워 있었고, 세상이 고요했다.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려고 했는데, 나는 여전히 그녀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내 부를 필요가 없다는 깨달았다.

방안의 공기에서 이미 그녀가 떠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제, 나는 술이 많이 취했지만, 기억을 잃지는 않았다.

분명 내가 먼저 그녀를 안았다.

-아…

나는 이마를 감싸며 일어나 침대에 앉았다.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시츠로 대충 몸을 감은 채 나는 정신이 들 때까지 침대에 한참 앉아 있었다.

-문옥경, 정말 미쳤구나.



어젯밤에 나는 그녀를 안은 채 말했다.

-내가 정말 미쳤나 봐요.

그녀가 재밌다는 듯 말했다.

-아뇨, 그게 당신이예요.


여전히 대충 시츠를 뒤집어 쓴 채, 

거실로 나가니 역시 아무런 흔적이 없고 다만,

탁자 위에 봉투가 놓여 있다.

그 안에는 편지가 한 통 들어있었다.


-어제는 당신이 내게 왔으니, 사례 대신 편지가 나을 것 같네요.

오늘 떠나기로 되어 있는 날이었지만, 잠시 망설였어요.

언젠가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요.

남은 위스키는 선물이예요.


ps호텔은 나가야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당신을 위해 하룻밤의 비용을 더 지불했으니, 

내일 10시 전까지만 언제든 이곳을 떠나시면 됩니다.-



이름 없이 끝나는 간단한 편지.


-내일 10시라…


나는 여전히 시츠를 둘둘 만채 위스키 병을 들고 컵에 따른 다음 천천히 마신다. 


-좋은 생각이네.


내일 10시라면 모든 것이 끝나있겠지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끝나버리고

나는, 

무엇이 있기는 했었냐는 듯 살게 될거야.

마치 어제와 내일 사이에 오늘이 없는 것처럼

나는 오늘을 잘라내고 어제와 내일을 이어붙여 살게 될거야.

오늘은 내 인생에 없는 날이야.


나는 소파에 앉아 천천히 위스키를 마셨다.

너만 없는 게 조금 이상하겠지만, 혜랑아.

나는 그 이유도 모르게 될거야.




-방 괜찮아?

그녀였다.

그녀를 미국에서 다시 만나다니. 정말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너무 좋은 방이네. 고마워.

-시차적응이 좀 힘들거야. 뭐 좀 먹을래?

-아냐, 일단은 좀 씻고 쉬고 싶어.

-그래….


우리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른다.

묻고 싶은 게 많기도 하고, 몰라도 그만이다 싶기도 하다.

이제껏 어차피 모르고도 살았으니.

그로부터 벌써 18년의 세월이 흘렀다.


-짧은 머리, 잘 어울리네.

-그래? 들어오기 전에 좀 잘랐어.

-멋있어. 새삼스럽게 반하겠어.

-국극단에 있을 때는 더 짧았는 걸.

-알아.


-그래서, 공주님은 잘 있어, 왕자님?

나는 잠시 숨을 멈춘 후 말한다.


-응, 잘 있겠지. 


그녀는 내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보고싶었어.


나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사실, 그렇진 않았다.나는.


-그랬어?




이게 나라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이

그녀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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