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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갤문학] 널 품고 살아갈게앱에서 작성

야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3.16 22:41:38
조회 97 추천 2 댓글 1


차라 & 아스리엘 소설임

–––

황금빛 껍데기로 치장된 왕좌, 호박색의 무게가 가라앉은 자리. 그 위에서 너는 무심한 듯 시선을 깎아내리며 앉아 있었다. 기억 속에 박제된 너의 얼굴, 그 눈길을 나는 지울 수 없었다. 뒤섞인 풀꽃들은 바람에 떠밀려 나부끼고, 너는 그 사이에서 유독 눅눅한 꽃술 하나를 손끝으로 다독였다. 천천히, 섬세하게, 마치 그 순간만큼은 무언가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나는 그 손짓을, 그 친밀함을 놓칠 수 없었다.



낱낱이 쪼개진 버터컵 잎사귀들이 겹겹이 쌓여, 무심히도 케이크를 장식했다. 그 위에는 혀끝만 스쳐도 사탕물처럼 녹아내릴 생크림이 산을 이루었고, 그 정점엔 톡 쏘는 레몬즙이 빗물처럼 흩뿌려졌다. 노란빛이 선명하게 살아 있는, 눈부신 조각이었다. 그날은 바로 아버지의 서른아홉 번째 탄신일이었다. 털로 뒤덮인 위엄 있는 얼굴이 그 케이크를 향해 기울었고, 날카로운 치아가 부드러운 단면을 베어 물었다. 그러곤 환히 웃으셨는데, 그 웃음이 한순간 얼어붙었다. 버터컵, 그 이름 아래 숨겨진 비밀이 뒤늦게 밝혀졌다. 꽃잎 속에 깃든 독이, 아버지의 몸을 휘감으며 열을 끌어올렸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수건이 이마 위에 얹혔고, 흐린 시선 너머에서 따스한 손길이 우릴 안심시키려 했다. "괜찮다" 그분은 중얼거리셨지만, 우리는 알았다. 그 말 속에 깃든 무게를.

그리고 너는, 의미를 가늠할 수 없는 소리를 흘렸다. 마치 심장의 가장 깊은 곳에서 퍼올린 것처럼. "내가 이 꽃을 삼키고 죽는다면, 내 영혼으로 결계를 부숴줘." 이상한 말이었다. 엉뚱하고 터무니없었다. 네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너도 알잖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에게는, 너 하나뿐이니까.



푸릇한 초록색 덩어리가 몽글몽글 휘몰아친 탕 속에 고요히 가라앉았다. 손끝이 숟가락을 움켜쥐었다. 미묘한 저항감을 품은 야채 찌꺼기들이 혀끝을 스치며 씹히는 감각. 흐물거리는 육질의 조각들이 무너져내리며, 입속을 떠돌다 결국 불가항력적으로 목구멍 너머로 빨려 들어갔다. 아버지께선 그것이 기가 막히다 하셨지. 그러나 그 감탄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숨결은 점차 엷어졌고, 온기가 빠져나가듯 손끝마저 서서히 식어갔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늘 괜찮다고 말씀하셨다. 마른 수건이 이마를 식혀줄 리 없고, 떨리는 손이 국을 떠먹일 수 있을 리 없으며, 숨을 몰아쉬는 사이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것도 당연한 이치였다. 하지만 그는 끊임없이 괜찮다 하셨고, 우리는 그 말을 끝내 부정하지 못했다.

그 무거운 공기가 왕궁을 짓누를 때, 우리는 숨을 삼키며 버텼다. 하지만 너는 그날, 그 말은 하면 안 됐다. 기억을 곱씹을수록 가슴 언저리가 서늘하게 굳어갔다. 그리고 네 웃음, 그 웃음이 너무도 이상했다. 네가 웃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입꼬리 끝자락이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이전과 같을 수 없다는 걸, 나만이 아는 듯했다. 그리고 몇 달 후, 너 또한 앓아눕기 시작했다.

"요즘 밥을 잘 먹지 않더군요."

그제야 깨달았다. 네가 식사를 거르고 있었다는 것을. 숟가락을 들고 국을 휘젓기만 했고, 입에 넣고도 제대로 씹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음식을 남겼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새벽마다 너는 홀로 왕좌에 앉아 있었다. 창백한 손끝으로 턱을 괴고, 금빛이 어린 방 안을 내려다보면서. 멍하니. 고요한 밤공기 속에서.

"차라,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여긴, 너무 조용해."

그 말이 혀끝에서 미끄러졌다. 말이란 것은 원래 그렇듯, 허공을 스치며 사라진다. 그날을 기점으로, 너는 잠을 잊었다. 하루. 다시 하루. 그리고 또 하루. 흰자에 서린 핏빛은 엷어지다 못해 퇴색한 토마토처럼 바랬고, 입술은 푸르스름한 허공의 끝자락에서 떨렸다. 너의 남은 미열을 움켜쥐겠다며 손을 맞잡았으나, 손바닥 아래서 전해지는 것은 싸늘한 겨울밤의 기척뿐. 뜨겁던 눈물이 그 위를 적시고, 점점 빛을 잃어 갔다. 마치 얼어붙은 틈새에서 마지막 숨결을 끌어올리듯, 너는 겨우 입을 열었다.

"내 고향에서 황금꽃을 보고 싶어."



마지막 그 소원을 이루어주고픈 맘이었다. 드러누운 네 차가운 주검 한 짐. 두 손으로 높이 받들고 숨죽여 앞 오솔길로 발걸음 떼어놓는다. 뒤돌아설 용기는 가슴에 피어나지 못했다. 그리할 수 없었다. 오히려, 널 위해 오늘만은 울보가 아닌, 가족으로서 자그마한 바람 하나라도 이뤄주는 자가 되리라.



이 길 끝까지 널 지켜줄게. 하늘이 먹물처럼 짙어지고 별빛이 스며드는 그때까지. 꼭 네가 편히 쉴 수 있는 곳을 찾아줄게. 바람을 타고 네 목소리가 들려와. 가슴이 내려앉지만, 꾹 참고 한 걸음 더 내딛어. 숲길을 지나 따스한 햇살이 내리는 들판에 도착하면, 네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그곳에 널 내려놓을 거야. 이게 끝은 아니야. 잠시 멀어지는 것뿐.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널 품고 살아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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