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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갤문학] 잔혹한 천사 앱에서 작성

야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3.14 12:4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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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는 어떻게 지하로 떨어졌을까?

차라는 분명히 다른 인간들과 뭔가 달랐던 사람인 것 같음. 학대설도 있던데, 사실 생각해보면 왜 그런 산속으로 혼자 도망쳤을까? 아마도 지상에서 겪은 것들이 더 무서웠을 테니까. 결국 차라는 죽으러 간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듦.

–––

나는 감정을 제어할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감정이라는 것이 내게 존재하기는 했을까? 분노인지, 냉소인지, 아니면 그조차도 아닌 무언가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내 속에서 끓어올랐다. 열기를 흘려보낼 틈조차 없이, 물결처럼 일렁이는 분노의 기미가 곧 밀물처럼 들이닥칠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단순한 파도였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외면하는 법을 몰랐다. 조그만 불씨가 들불로 번지듯, 내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잔혹한 천사.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불렀다. 과연 맞는 표현일까? 그 양면성을 따지는 것조차 우스운 일이었다. 나는 천사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 속에는 악마가 깃들어 있었다. 누구보다 착했던 내가 변해가는 모습을 그들은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어쩌면, 내 안에 천사의 행색을 본뜬 악마가 깃든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악마가 나를 타락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들이 나에게 행하는 학대를 정의라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수몰해가는 사랑을 등에 업고, 나를 짓밟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습기로 가득 찬 꿉꿉한 방 안으로 들어섰다. 내 허리는 골프채로 맞아 곪은 상처로 가득했고, 나는 습관적으로 되도 않은 관능과 아양을 떨며 몽매에 시달렸다. 오늘은 학대가 이루어진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나는 기겁하며 어깻죽지를 후들거렸다. 식탁보 위에 깔린 빨그스름한 사과. 한입을 남긴 반쪽을 움켜쥐고, 내게 다가오는 악마를 향해 던졌다. 손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지. 두툼한 서적 한 무리, 칠흑의 심이 베어든 연필깎이, 티슈 케이스, 빗, 로션, 소형 핸드백을 휘날렸다.

마침내 부엌의 자그마한 의자 앞. 그곳에서 세 뼘쯤 왔을 때, 나는 부엌 칸막이 뒤편으로 질주했다. 한 구획을 두고 대치하는 상황 속에서 옆 서랍을 열고 식칼을 집었다. 더 이상 접근한다면 책임은 당신에게 있다며 애절한 감정을 표출해봤지만, 돌아오는 건 사과가 아닌 욕망에 예속된 냉소적인 시선뿐이었다. 엄마라는 호칭 뒤에 감춰진 악마는 살며시 발걸음을 내딛고, 아연실색하는 내 눈높이에 맞춰 몸을 낮췄다. 그리고 낮게 속삭였다.

"이곳을 도망치고 싶다면 말리진 않을게. 다만, 이해해주길 바래. 내가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나도 네 아버지가 떠난 후 숨쉬는 것조차 고통이란다."

차가운 눈물이 엄마의 주름진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뚝, 뚝. 소금기 띤 물방울은 잠시 굴곡진 뺨에 머물다 턱을 따라 무릎 위로 떨어졌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떨리는 눈빛으로 애원하는 엄마의 모습에, 나는 흉벽을 뚫고 나오려는 심장을 붙잡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숨이 턱 막혔다.

그 순간, 몸이 먼저 반응했다. 다리가 저절로 일어나 현관을 향해 달렸다. 뒤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흐느낌은 점점 작아졌지만, 귓가에는 여전히 울려 퍼졌다. 나는 문고리를 움켜쥐고 격렬하게 문을 열었다가 쾅 닫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는 마치 한 시절이 끝나는 종지부처럼 공허하게 울렸다. 멀어지는 발걸음마다 생각했다. 이제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회색과 단홍색이 뒤섞인 보도블록을 거침없이 짓밟았다. 새빨간 신호등이 앞길을 가로막아도, 아랑곳없이 내달리는 차량들을 향해 그저 손을 들어 멈추라는 신호를 보낼 뿐이었다. 가로등 불빛이 내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길목 사이를 비집고 나아가는 내 그림자는 길게 늘어졌고, 곳곳을 헤집으며 흔들렸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복잡한 일상 속에서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이런 부질없는 짓뿐이라니. 신호등은 어디를, 무엇을 비추는가. 몸은 왜 점점 축축 늘어져 가는가. 실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걷고, 또 걸었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어린 시절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던 한 이웃의 집 앞이었다. 문 앞에서 한순간 머뭇거렸지만, 손은 이미 초인종을 눌러버렸다.

"띵동."

한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안에 사람이 없는 걸까? 아니면 내가 찾아왔다는 걸 알고도 나오지 않는 걸까. 문 안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주저하는 듯한 움직임, 그리고 살짝 흔들리는 커튼. 분명 누군가는 안에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벨을 눌렀다. 잠시 후,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문틈 사이로 얼굴을 내민 것은, 예전과 다름없는 미소를 띠고 있던 이웃 아주머니였다.

"어머, 이게 누구야… 오랜만이네."
"…저, 죄송해요. 조금만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아주머니의 얼굴에 잠깐 난처한 기색이 스쳤다. 나는 부어오른 손목을 감추려 했지만, 이미 그녀의 시선이 닿고 말았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아주머니라면 나를 도와줄 거라고, 아직 세상은 버릴 게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애써 시선을 피하며 조용히 문을 더 닫았다.

"미안해, 얘야. 나는… 나는 이런 일에 관여할 수 없어."
"아주머니…"
"다들 힘들잖니. 나도, 우리 가족도. 네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아무 일 없을 거야. 그러니까, 네가 잘 해결해야 해."

그녀는 결국 문을 닫았다. 찰칵. 잠금장치가 내려앉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나는 한 걸음 물러서서 굳어버린 채 문을 바라보았다. 따뜻했던 기억들이 산산이 부서졌다. 내가 가장 마지막까지 믿고 싶었던 이웃조차 나를 외면했다. 가로등 불빛 아래, 바닥에 희미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발길을 돌렸다. 이젠 어디로 가야 할까. 아니, 어디로 가든 상관없었다.

***

​어릴 적 읽었던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그 책에는 에봇산에 관한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에봇산은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이들을 집어삼켰다. 그곳에 발을 들인 자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황금빛 꽃들이 피어 있는 절벽 아래, 깊고 어두운 구덩이가 존재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세상이 잊어버린 비밀이 숨어 있다고 했다.​

***

돌아오지 못한다는 건, 완전히 사라진다는 의미일까? 흔적도 없이, 누구의 기억에서도 지워진 채. 얼마나 깊을까? 떨어지면 고통스러울까? 아니면, 그저 한순간일까?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사람들은 흔히 죽음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살아 있는 한, 끝없이 상처받고, 끝없이 아파해야 하니까.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숨이 막히고, 도망쳐도 끝이 없고, 아무리 소리쳐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세계에서,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해야 하지?

내가 잘못된 걸까? 아니면 세상이 잘못된 걸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이제 상처받을 일도, 버려질 일도, 외면당할 일도 없을 거라는 것.

샛노란 들꽃을 빼닮은 꽃의 가느다란 줄기들이 발목을 감돌았다. 수없이 맺힌 꽃술의 달큰한 내음이 살갗에 스미어 퍼졌다. 마치 아스라한 꿈결처럼,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형상으로든, 손에 닿지 않는 형태로 번져 나갔다. 산을 따라 올랐다. 텃새처럼 뒤얽힌 굽잇길을 지나 곧추 걸음을 내디뎠을 때, 그곳이 드러났다. 나는 어찌하여 이 텅 빈 터를 알아볼 수 있었을까. 어찌하여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은어처럼 거침없이 나아갔을까.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속이 텅 비어 휑한 구렁텅이, 메마른 땅 위로 들린 흙바닥. 그 틈새에서 다시금 피어난 금빛 꽃을 망연히 바라보며 나는 그 자리에 멎었다. 허연 숨이 바람과 어우러져 아롱지게 번져갔다. 툭. 발을 헛디딘 듯 힘없이 아래로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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