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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이정후.webpLA 에인절스 vs 3번타자 중견수상대선발 라떼는 잘했던 투수구종비율 체인지업 40%아름다운 스탯과 NL 랭킹이정후 상대 수비시프트어제 기습번트 당하고 3루수 외양간 고침첫타석 체인지업 타격 땅볼 주자는 진루두번째타석 입갤 늦게했다고 피치클락 억까 당하고카운트 0-1부터 시작 후이번에도 체인지업 타격했지만 공략 실패세번째타석 초구 파울 치고 날라가는 헬맷원정 응원 온 후린이 위해 안타 쳐줘그러나 5구째 다시 좌플마지막타석 결국 킹짱후는 오늘도 안타를 칩니다!좌완 95마일을 깔끔하게 밀어치는 안타 ㅅㅅㅅ5경기 연속 안타수비장면1수비장면2 9회말 2아웃 경기를 끝내며스코어 3 : 2 팀은 정후내일은 새벽5시 vs기쿠치 유세이 한일전 많관부- 이정후 번트 안타 이후 덕아웃 반응.gif타격코치가 웃는다ㅋ - dc official App
작성자 : 겆승호고정닉
스압스압 조선이 해방되자...쫓겨난 일본인들....JPG
https://youtu.be/Cza090_MV_g'히키아게샤'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에서 살거나, 아예 조선에서 태어난 일본인들을 뜻함 대충 직역하자면 '물에 빠져서 건져낸 사람'이라는 뜻해방되니까 강제로 본국에 돌아가게 됨...1946년 쫓겨나는 모습을 담은 뉴스"코리안 클리어-아웃" ㄷㄷㄷ나가기 전에 소독약 좀 쳐준다 기다리는 애엄마...다들 짐이 별로 없음..보따리 몇개 싸들고 바리바리 튀는중...애기들도 보인다...얘들은 왜 지들이 '고향' 떠나는지도 모름..배타고 튀는 중...이런 일본인들이 한국에만 약 70만명이 있었다고 함...1945년 당시 3%의 인구로 조선 재산의 83%를 먹고 있었다고 ㄷㄷ 물론 좋은 시절 다 끝나니까 조선인한테 린치당하고 재산 다 뺏김....ㅠㅠ특히 일본과 가까웠던 경상도에서 보복이 심했다고 함...당시 일본인들은 일본인끼리 도시 중심지에서 번화가를 이루고,조선인은 눈에 보이지도 않게 변두리로 쫓아내버렸는데 하루아침에 쫓겨나자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고 함...하지만 나중에 진실을 알고 마음이 복잡해졌다고...이렇게 자기들끼리 모여살던 '히키아게샤'들은 해방 당시 조선인의 반응에 어마어마한 공포와 당혹감을 느꼈다고 함... 그 이유는..."당시 일본인들이 느꼈던 공포심은 평소 조선과 조선인들에 대한 총체적인 무관심에서 비롯됐다. 사실 조선에 살던 일본인들은 조선인의 존재를 거의 의식하지 않고 살았다. 이런 경향은 식민 지배 초기에 수많은 조선인의 저항을 경험한 1세대와 달리, 문화통치 시기(1920년대)에 이주해 왔거나 조선에서 태어난 2세의 경우에 더욱 강하게 나타났다. 이들은 조선을 타지로 인식하기보다는 일본 본토의 일부로 생각하고 있었다."- 호즈미 신로쿠로...즉, .3.1 운동을 겪어보지 않은 1920년대 이후 일본인들, 그리고 아예 조선에서 태어난 일본인들이조선인들과 부대끼며 살지도 않았고, 정말 한반도를 일본 본토라고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임..."....여기 일본 아니었습니까?"“한 번도 조선인 친구와 놀아본 기억이 없다”“내가 기억하는 조선인은 가끔씩 머리에 광주리를 이고 다니며 물건을 팔던 아줌마가 전부”“원산에 그렇게 많은 조선인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은 패전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원산부립소학교 2학년 마쓰나가 아쿠오“패전했기로서니 꼭 내지(일본)로 돌아가야 합니까?” 하고 물었더니, 부모님들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저 돌아가야 한다"고만 대답했다. 나는 왜 내가 고향인 충청도 강경 땅을 떠나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패전 직후 조선인들이 왜 거리를 쏟아져 나와 만세를 외치는지도 이해 못 했다.- 나카무라 기미 (당시 23세). 충남 강경 경찰서 근무"1945년 8월 16일...독립만세 거리에는 가는 곳마다, 일장기를 재활용해 만든 어설픈 태극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그리고 질주하는 트럭은 물론이고 전차 지붕에서도 조선인들이 외쳐대는 만세 소리가 들려왔다.""1945년 9월 5일....시간이 지나면서 조선인들의 만세 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고 일본인들도 점점 무뎌져 갔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귀환 열차가 출발한다는 헛소문이 돌아 멀쩡한 가구를 헐값에 내다 팔며 부산을 떨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불편해서 못 살겠다며 다시 세간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또 어느 정도 치안이 확보되는 낌새가 보이자 어떻게든 조선에 눌러앉아보려는 사람도 늘어갔다.""눈치 빠른 사람들은 지금 일본의 주요 도시들은 대공습으로 초토화되었고, 그나마 멀쩡한 도시도 피난민들이 몰려들면서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에 돌아간다고 한들 미래가 없을 곳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은 조선에 어떻게든 남아있으려고 했다.""1945년 가을...8월 말부터 푸줏간에는 오랫동안 구경하기 힘들었던 고기가 내걸렸고 술집에는 각종 술이 넘쳐났다. 다시 문을 연 카페에서는 전쟁의 선전가요가 아닌 대중가요가 흘러나왔다.사람들의 차림새도 칙칙한 국민복을 벗어 던지고 여성들도 볼썽사나운 몸빼바지 대신 치마를 걸치기 시작하여 거리의 풍경도 한층 밝아졌다.거리 뒤편의 상점들에서는 “배척하자 일본인”이라고 적힌 전단을 떡 하니 붙여놓고 조선인들이 일본어로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조선인들은 돈벌이를 위해 일본인에게 물건을 팔기는 했지만 가는 곳마다 왜노(倭奴) 추방이라고 써 붙인 자극적인 전단지가 계속해서 눈에 거슬렸다."1945년 겨울...11월에 들어서는 어느새 일본식 동네 이름들이 모두 조선식으로 바뀌어 길 찾기도 어려워졌다. 관청에서는 각종 서류에 ‘쇼와’, ‘메이지’ 같은 연호를 기재하면 아예 접수조차 받아주지 않았다. 그저 이름만 바뀌었을 뿐인데 경성은 어느새 낯선 공간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라디오 방송도 10월 말부터 과도적으로 한일 양국어를 사용하다가 얼마 후 뉴스를 제외하고 모두 조선어로 단일화했다..."-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교수 다나카 마사시 <조선을 떠나며> 결국 당시 히키아게샤들은 조선에 조선인이 그렇게 많이 사는줄도 몰랐고조선이 정말 자기 고향이라고 생각했으며왜 독립을 좋아하는지, 왜 린치를 당하는지도 몰랐던 것...그나마 남쪽에 살던 히키아게샤들은 빨리 도망이라도 쳤지북한 신의주에 살던 사람들은 소련군이 앞마당에 몰려올때까지도 몰랐음...고위관료, 군인들만 미리 튀어서 조선인인척 하고 살았다고 함...이는 お星さまのレール(1993)라는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짐..남한과 다르게 소련군 + 현지주민들의 린치로 수천명이 뒤졌다고 함..어쨌든 대부분의 히키아게샤들은 일본으로 돌아갔으나, 재산을 전부 놔두고 왔기 때문에 본토에서 밥버러지 취급 받음... 식민지에서 개꿀빨다가 거지꼴 됐다 + 조센 출신이라며 비웃음 받음... 본토도 전쟁으로 씹창난 마당에이 새끼들까지 먹여 살려줄 판이 되니 당연히 눈총을 받았고조선에서 살다보니 일본어, 일본문화에 서투른 면도 있어서 상당수가 하층민이 됨..그래서 임시수용소를 건설해서 모조리 처박아놨더니 다들 흑화해서 절도, 강도, 강간등등 각종 범죄와 위생문제로 인해 '히키아게샤'는 일본사회의 골칫덩이가 됨...ㅠㅠ 특히 모리사키 가즈에라는 일본 할머니는17살까지 경주와 대구를 오가며 살았으나해방이후 일본으로 돌아갔는데자신을 키워준 조선인 유모와 경주의 풍경을 평생 잊지 못하고 '실향민'이라는 마음으로 살았다고 함...고향인데도 역사적 문제로 감히 고향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고... 게다가 남동생은 일본에 적응 못 해서 결국 극단적 선택...ㅠㅠ반면 조선어에 능통하거나, 일본에 연고나 가족이 없던 사람들은그냥 조선에 눌러붙기도 했다고 함...제일 유명한 예시는 '부용회'...조선남자와 결혼했다가 사별한 일본여성들의 모임이다 과부의 몸으로 일본에 귀국했으나, 도저히 적응하지 못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그 수는 4000~5000명이였다고 함 지금은 대부분 90대라 경주시에서 돌보고 있다고 함... '마산 고등학교'의 일화도 있다...동창회를 열었는데 히키아게샤 일본인 할배들이 돌아와서한국 할배들과 서로 알아보고 눈물 흘렸다고 함..이 사람들은 조선인끼리도 친했나봄..특히 '후지이'라는 사람은 1950년도까지 춘천에 살다가6,.25때 인민군에게 끌려가서 참전하다 거제포로수용소에 감금...일본인이라고 주장했으나, 일본어를 한국인보다도 못해서 안 믿어줌... 어찌저찌 풀려나서 부산역으로 갔으나, 이번엔 국군에 끌려가서 1년간 참전함...결국 개고생만 하다 56년도에 일본인임을 인증하고 가족과 함께 오사카로 돌아감...ㅠㅠ "일본 열도에 인양되어 온 나는 거기에서 이방인이었다.방언을 모르고, 살아야 할 집도 경작해야 할 땅도 없는 우리들은 일본에 고립되어 있었다."히키아게샤의 자식"이라 불리며 조소의 대상이 될 때마다 나는 한반도를 생각했다.그러나 거기는 거부당한 땅이었다." - 이츠키 히로유키, 서울/평양 출신 "내가 조선에서 태어난 것은 나의 책임이 아니다.그러나 나는 15년 동안 조선에 일본인으로서 있었다. 식민자로서 거기에 있었다.나는 아이였다고 해보아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아마 나는 조선인들에게 무해하였을 것이다, 라는 주장 역시 아무런 변명이 되지 않는다.역사란 이를테면 이와 같은 것으로, 내가 아이였으며 무해했을지언정,나 한 사람만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역사로부터 제외될 수는 없는 것이다.역사란 이렇게 냉혹한 것이요, 그 정도로 무거운 것이다.그리고 나를 포함하여 모든 일본인은 이 역사를 몸의 가장 깊은 곳에서 짊어나가야만 한다."- 고바야시 마사루, 대구/안동 출신 내선일체고 뭐고 결국 다 지랄이였다...
작성자 : ㅇㅇ고정닉
싱글벙글 러시아를 떠나는 인재들
세르게이 브린 (러시아 -> 미국) - 구글 창립자 유대계 러시아인으로 오늘날 빅테크 기업 구글을 세운 인물이다. 소련의 유대인 박해로 자신이 6살이 되던 1979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스탠퍼드대 석사과정을 마치고 90년대 후반 실리콘밸리에서 구글을 설립했고 2019년까지 경영 1선에서 활동하였다. 현재 세계 10위권 부자. 파벨 두로프 (러시아 -> 프랑스,아랍에미리트) - 텔레그램 창립자 유대계 러시아인으로 2013년 텔레그램을 세운 인물이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의 검열과 기업규제가 너무 심하다는이유와 푸틴과의 마찰로 러시아에서 프랑스, 아랍에미리트 등으로 이주했다. 현재 등록본사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운영본사는 두바이로 이전하였고, 본인 또한 유럽과 두바이 등에 거주하고 있다. 일리야 수츠케버 (러시아 -> 캐나다) - 챗GPT 핵심개발자 러시아에서 캐나다로 이주한 유대계 컴퓨터과학 기업인으로 그 유명한 챗GPT를 개발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딥러닝 분야에 큰 공헌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러시아 -> 영국) - 노벨물리학상 수상 러시아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물리학자로, 도마뱀 테이프의 발견 및 그래핀 기술의 발견으로 안드레 가임과 함께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유럽 연구위원회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받고있으며, 그가 쓴 논문들은 세계 과학계에서 굉장히 많이 인용되고 있다. 안드레 가임 (러시아 -> 영국) - 노벨물리학상, 이그노벨상 수상 러시아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물리학자이며 역사상 최초로 현재까지 이그노벨상과 노벨상을 모두 수상한 인물이다. 스카지테이프와 흑연을 이용하여 세계에서 가장 얇은 물질을 만드는 방법을 고안했는데 이것이 그래핀 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하여 노벨물리학상을 수상받았다. 현재 맨체스터대 교수직으로 편입되어 재직중이다. 니콜라이 스토론스키 (러시아 -> 영국) - 레볼루트 창립자 러시아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억만장자 인터넷 기업인으로, 2015년 레볼루트를 세운 인물이다. 레볼루트는 현재 페이팔을 제치고 세계 최상위권 핀테크 기업이 되었고, 그덕에 스토론스키는 억만장자가 되었다. 영국으로 이민갔지만 계속 이중국적을 유지하다 2022년 러시아 국적을 완전히 포기하였다. 드미트리 알페로비치 (러시아 -> 미국) - 크라우드스트라이크 창립자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기업인이자 자선가이다. 사이버 간첩 및 사이버 범죄로부터 기업과 정부가 지적 재산과 비밀을 보호하도록 돕는 기술회사인 크라우드스트라이크를 공동설립했다. 2021년 조 바이든 대통령 행정 명령에따라 미국 정부 위원회인 사이버 안전 검토위원회의 위원으로 임명되었고, 국방부의 특별 고문으로도 활동하고있다. 비탈릭 부테린 (러시아 -> 스위스,캐나다) - 이더리움 창시자 러시아에서 캐나다로 이민하고, 현재 스위스에 거주하는 컴퓨터과학 프로그래머이다. 세계 2위 암호화폐 이더리움을 개발하고 창시한 천재로 1위인 비트코인의 창시자가 누군지 밝혀지지않았기에 실질적으로 암호화폐 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있는 인물이다. 렌 블라바트니크 (러시아 -> 영국) - 워너 뮤직그룹 소유주 러시아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억만장자 미디어 기업인으로, 그 유명한 워너 뮤직그룹을 소유하고 운영중이다. 정확히는 자신이 설립한 회사 액세스 인더스트리를 통해 워너 뮤직을 인수한것인데, 이 기업 산하에는 에드시런, 아델 등 세계 난다긴다하는 연예인들이 속해있는 애틀랜틱 레코드, 워너 레코드, 팔로폰 레이블 등 어마어마한 레이블들이 많다. 개인재산은 50조원. 마이클 브론스타인 (러시아 -> 영국) - 딥마인드 교수진 러시아 출신의 영국 컴퓨터과학자이며, 알파고와 알파폴드를 개발한 영국 기업 딥마인드에서 적극 후원중인 인물이다. 그는 하버드, MIT등을 거쳐 2022년부터는 옥스퍼드 대학 컴퓨터과학과의 딥마인드 인공지능 교수로 편입되었다. 과거 기하학적 딥러닝, 비강체 형상 기술, 인텔의 라이센스 기술 등을 개발한 업적도 있다. 그외에도 정말 어마어마한 수의 인재들이 러시아를 빠져나가고 있다... 그 결과 현재 러시아는 자국 10대기업중 과학기술 기업은 단 1개도 없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러시아의 수출품의 무려 54%가 석유와 가스다. 석유와 가스를 포함한 천연자원 분야 전체로 넓히면 거의 국가경제의 70%를 초과할정도(...) 그에반해 미국과 유럽은 IT, 소프트웨어, 제약, 생명공학, 반도체, 금융, 화학, 식품, 헬스케어, 명품, 소비재, 항공우주 등 모두 풀무장한것을 볼수있다. 앞서말했듯이 러시아는 이공계 인재들만 빠져나가는것이 아니다. 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한 문화 전반에서 탈러시아가 이루어지고있다. 연봉 기준 유럽의 슈퍼스타들중 러시아인은 100위안에 단 한명도 없을정도.. - dc official App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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