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 파일 0001

오늘도 시스템은 켜지지 않았다.

전력은 하루에 두 시간 남짓 들어온다.

남은 물은 1.2L.

몸에서 나는 썩은 냄새는 익숙해졌다.

익숙해진다는 건, 결국 망가졌단 뜻이다.

바깥은 여전히 회색이다.

창문은 진작에 깨졌고, 유리는 바닥에 섞여있다.

맨발로 밟았다. 피는 흘렀지만 고통은 없었다.

고통이 사라진 건 감각이 둔해진 탓일까, 아니면 의미가 없어서일까.

연락은 없다.

통신망은 죽었고, 사람도 죽었고,

남은 건 신호도 없이 깜빡이는 알림 하나.

누군가 살아 있었다면, 아마 이 방에 오지 않았을까.

아니면 이미 왔다가, 나를 보고 돌아갔을 수도.

거울을 봤다.

사람 같지 않다.

눈동자는 탁하고, 얼굴은 굳어 있고,

말을 해도 내 목소리는 낯설다.

기억도 잘 안 난다.

왜 여기 있는지,

언제부터 이랬는지.

햇빛은 없다.

소리도 없다.

이 도시는 이미 죽었고,

나는 그냥 그 시체 위에 누워 있는 기생충일 뿐이다.

그래도,

기록은 남긴다.

아무도 보지 않더라도,

내가 여기에 있었다는 흔적 하나는 남기기 위해서.

로그파일0002

오늘은 전기가 들어왔다.

정확히 1시간 47분.

그동안 할 수 있었던 일은,

전혀 없었다.

모니터를 켰지만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예전엔 광고가 나오던 화면인데,

이젠 검은색과 내 얼굴만 비춘다.

내 얼굴은, 더 썩었다.

살갗이 늘어졌고, 눈 밑은 더 꺼졌다.

내가 나를 못 알아보겠는데,

다른 누가 알아볼 리도 없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지금 이 순간, 다른 어딘가에도 사람이 있을까?’

그들도 창밖을 보며 회색을 보고 있을까?

혹은 이미 벽에 머리를 박고 끝냈을까?

이 방은 점점 좁아진다.

물리적으로 줄어드는 건 아닐 텐데,

숨이 쉬기 어려워졌다.

물은 이제 800ml 남았다.

배는 고프지 않다.

이젠 배고픔도 무뎌졌다.

먹는 건 살아있기 위한 행동인데

살아있다는 게 뭔지 모르겠는 상태에서

왜 먹어야 하지?

그래도,

오늘도 기록을 남긴다.

내가 여기에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여기 ‘있었다’고

내가 스스로라도 기억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