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먼트뉴스 이혜원 인턴기자] 영화 '시'는 2010년 개봉 한 이창동 감독이 연출한 5번째 장편 영화이다. '시'는 크게 두 개의 플롯을 기본 뼈대로 하고 있다. 주인공 '미자'의 시에 대한 열정과 손자의 집단 성폭행 사건이다. 미자는 '미'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의복을 화려하게 갖춰 입고 다니고 손자에게 늘 몸을 깨끗이 하라고 당부한다.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고 그것을 표현해내고 싶어 시 쓰기 수업을 듣는다. 그러나 시가 어디 그리 쉽게 쓰일만한 것인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미자는 시를 쓰기 위해 수첩에 자신의 짧은 감상을 끊임없이 기록하는 모습을 보인다.
가장 행복했던 기억
영화
미자가 시 쓰기 수업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에 대해 발표하는 장면이 있다. 여러 등장인물이 한 명씩 자신의 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행복한 장면을 발표하는 모습이 영화 중간중간 삽입되어 나온다. 어린 시절 할머니 손에 자란 손녀가 노래를 좋아하는 할머니에게 노래를 가르쳤다는 이야기, 자녀를 낳을 때 마치 태양처럼 뜨거운 어떤 강렬한 존재를 내가 창조해 낸 것 같았던 경험, 아무리 떠올려봐도 행복했던 기억이 없다며 멋쩍어하며 평생 반지하에서 이십 년을 살다가 얼마 전 보증금 천만 원에 월세 8만 원 임대 아파트로 이사 간 것이 가장 아름다웠던 기억이라고 말하는 남성, 성당에 핀 나뭇잎이 너무 예뻐 그것을 볼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여성,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있어 괴롭지만 그 괴로움마저 아름답다고 말하는 한 여성, 서너 살쯤 일곱 살 차이 나는 언니가 자신을 무척이나 예뻐해줬던 기억이 아름다웠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는 주인공 미자까지. 우리는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아가지만 어쩌면 조각난 기억만을 움켜쥔 채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행복했던 기억, 불행했던 기억, 좌절했던 경험, 열광적이었던 경험. 우리는 이렇게 조각난 기억의 파편을 주섬주섬 갈무리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를 쓰기 어려운 이유
영화
"선생님. 어떻게 하면 시를 쓸 수 있나요?" 미자가 우연히 발을 들인 시 사랑 회원들과의 식사자리에 찾아온 김용택 시인에게 미자는 묻는다. 시든 소설이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영화든, 모든 예술적 창조 행위를 수행한다는 것은 시궁창 같은 현실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는 것과 같다. 시상을 떠올린다는 것은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바라보려는 행위이며 그렇다면 다시 말해 시를 쓰려한다는 것은 아름답게 살아보고 싶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일과 같다. 시를 쓰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를 쓰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사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김용택 시인의 시 쓰기 수업 마지막 시간, 유일하게 시를 써서 제출해낸 수강생은 미자 한 사람이었다. 시를 쓰기가 너무 어렵다고 투정하는 어느 수강생의 말에 김용택 시인은 시를 쓰는 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시를 쓰겠다고 마음 먹는게 어려운 것이라 답한다. 그렇다. 아름답게 사는 사람이 대단한 이유는 아름답게 살기 때문이 아니라 온갖 유혹을 이겨내고 아름답게 살겠다는 의지를 지켜내기 때문이다. 아름답게 사는 모습은 아름답게 살기로 마음먹은 사람에 게서 자연스레 드러나는 행위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의지를 지켜내지 못한다. 좋은게 좋은 것이라는 말 때문에,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이 두려워, 먹고살기 바빠서, 우리는 아름 다운 삶을 외면하며 살다가 기어코 아름다운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잊어버리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시'는 삶을 똑바로 응시하라고 말하는 듯하다.
물소리
영화는 끝날 때까지 그 어떠한 배경 음악도 흐르지 않는다. 대신,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흘러나오는 강물의 흐르는 물소리가 선명하게 느껴진다. 어두운 색의 강 아래로 카메라가 내려가며 물소리는 점점 커진다. 마치 물 아래로 천천히 가라앉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미자의 손자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이가 이렇게 홀로 무섭고 비참하게 가라앉았겠구나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이창동 감독은 아름다움을 잊고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이렇게 가라앉고 있다는 것을, 살아있지만 죽은 것과 다름없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미자가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응시하기로 하고서야 시를 쓸 수 있었듯 진정 아름다운 삶을 살고자 한다면 예쁘고 아름다운 것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침침하고 축축해 고단한 삶의 단면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제야 우리의 삶은 아름다움을 담은 한 편의 시가 된다.
인간 '미자'
영화
영화 '시' 속에서 인간다운 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미자 뿐이다. 여중생 사망 사고를 처음 목격한 미자는 동네 사람들에게 그 사건에 대해 묻지만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 여중생이 자신이 키우는 손자 때문에 자살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미자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린다. 여중생이 불쌍하고 그 여중생을 죽음에 몰아 넣은 가해자들을 엄벌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 가해자 중 한 명이 또 미워할 수 없는 손자이다. 그리고 미자는 여러 방식으로 손자가 양심을 가졌는지를 시험해본다. 직접 다그쳐도 보지만 손자는 아무 대답이 없다. 추모 미사 자리에서 몰래 가져온 사망한 여중생 사진을 손자가 밥을 먹는 식탁 위에 두어 보기도 한다. 손자는 사진을 보고 움찔하긴 하지만 이내 별거 아니라는 듯 밥을 먹으며 TV를 본다. 다른 가해자 부모들도 양심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자기 자식들 때문에 자살한 여중생에게 어떠한 애도나 미안함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어떻게든 돈으로 해결하려는 마음 뿐이다. 그들은 결국 피해자 어머니와 합의를 해낸다. 그 자리를 빠져나오면서 미자는 묻는다. "그래서 이 일이 이렇게 끝나는 건가요?" 이 질문을 통해 미자는 합의가 되었어도 성폭행 사건이기 때문에 누군가 신고를 하면 수사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미자만이 여중생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고 손자가 저지른 잔인한 폭력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해한다. 어느 날 미자는 여중생이 몸을 던진 그 다리로 가서 아래를 내려본다. 그 여중생이 마지막으로 봤을 장면을 미자는 자신의 눈으로 직접 내려다본다. 비를 맞고 돌아오는 길에 미자는 일전에 자신과 강제로 성관계를 맺으려 시도했던 자신이 간병하던 중풍 걸린 노인을 찾아간다. 그리고는 그 중풍 걸린 노인과 원치 않는 관계를 맺는다. 원치 않는 성관계를 강제로 해야 했던 여중생이 겪은 그 고통을 자신도 조금이라도 느껴보려는 듯이.
영화 '시'는 단순한 문학 작품이 아닌 삶을 담아내는 그릇과 같다. '미자'의 시는 자신의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담기도, 손자의 범죄 사건과 같은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을 담기도 한다. 또, 자기 손자 때문에 죽은 여학생을 위해 시를 쓰기도 한다. 시 뿐만 아니라 문학 작품은 아름다운 것만 담을 수 없다. 고통과 분노, 슬픔과도 같은 불행에서부터 오기도 한다. 이창동 감독은 매우 현실적이고 일상에 가까이하고 있는 이야기를 냉랭하게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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