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연관 갤러리
남자 연예인 갤러리 타 갤러리(0)
이 갤러리가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타 갤러리 남자 연예인 갤러리(0)
이 갤러리를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개념글 리스트
1/3
- "대통령 시간 존중" 한동훈, 최종변론 이후 등판 ㅇㅇ
- SL 겨울의 습원호 탑승기 기신고래(진)
- 19세 괴력소년의 엄청난 손아귀힘 츄모몽
- 민주당 조계원 아청법 개정 발의안 철회의 진실 ㅅㅂ ㅋㅋㅋ 시마시마
- 싱글벙글 숏컷의 종류에 대해 알아보자 lduna
- 개판났던 오헝군 야전포병 얘기 ㅇㅇ
- 싱글방글 어이없는 고양이 썅년
- 하루 한끼 먹는데 살이 안빠지는 사람.jpg ㅇㅇ
- 사슴에게 고추 먹인 한국인 해명글입니다. 제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ㅇㅇ
- 취업시장 전멸했다는 중소기업갤 묘냥이
- 싱글벙글 재미로 보는 전 세계 지도자 피지컬 순위 보추더락
- "허락없이 본 건 맞지만"...강형욱, '메신저 무단열람' 무혐의 ㅇㅇ
- 미개미개 2000년대 초반 유행해던 라후족 한국인 만들기 페키니즈
- "안나는 살고 싶어했어요" '오요안나' 모친, 144일의 눈물 Donald-Trump
- 2월 6일 시황 우졍잉
日사슴 학대 사건의 진실... 날조와 선동이 없으면 혐한을 못하는 JAP
- 관련게시물 : 사슴에게 고추 먹인 한국인 해명글입니다. 제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안싱글벙글 며칠전 일본에서 사슴 학대한 한국인관광객 - 실시간 베스트 갤러리https://x.com/sharenewsjapan1/status/1886430493677396097나라공원의 사슴한테 매운 고추를 먹인 한.국인 관광객에 비판 쏟아져...헤즈마 류 씨 “사슴이 경련을 일으키고 구토를m.dcinside.com일본 나라공원에서 한국인이 사슴에게 쓰레기와 매운 고추를 먹이는 등 학대행위를 했다며 올라온 글 하나가 화제가 됐음 먹이를 준 곳은 흙바닥 위인데 뜬금없이 고추로 추정되는 먹이 사진은 돌바닥 위에서 찍힌 것만 봐도 의심스러운 부분이 한 두 군데가 아니지만 개쪽본 본토는 말할 것도 없고 혐한 선동에 놀아난 한국 내 병신들까지 합세해서 피해자에게 온갖 개쌍욕과 조롱이 쏟아졌음 사슴에게 고추 먹인 한국인 해명글입니다. 제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 싱글벙글 지구촌 마이너 갤러리안녕하십니까 싱글벙글 갤러리 유저 여러분. 우연히 디시를 보다가 싱갤 념글에 학교 친구의 얼굴이 있는걸 보게 되었습니다한국인이 사슴한테 청양고추를 먹여 사슴이 기절했다는 내용의 글이었는데 같은 동아리 친구와 너무 똑같m.dcinside.com결국 본인과 지인들이 직접 등판해 사실이 아님을 해명까지 해야했음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듦... 모자이크도 되지 않은 사진이 첨부된 글을 한국에 퍼나르며 혐한 선동에 동조한 반고닉 ㅇㅇ(식별코드 chalk3827)는 정말 저게 사실이라고 판단했던 걸까? 개인적으로 일본 X자료를 그대로 가져다 퍼나를 정도의 인간이라면 저게 선동일 가능성을 알았을 확률이 높다고 봄 이유는 간단한데 애초에 선동글을 작성한 놈이 일본에서는 매우 유명한 병신새끼이기 때문임 활동명 헤즈마류, 본명은 하라다 쇼타(原田将大)인 이 놈은 단순 민폐를 넘어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던 막장 유튜버 출신인데 어떤 짓을 했는지 모르는 한국인들을 위해 잠깐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음 오사카 의류점에서 티셔츠 구입 후 짝퉁이라며 억지 부리며 업무 방해하기 도쿄 시부야 교차로에서 이불에 사람을 담은 채로 빙글빙글 돌면서 교통 방해하기 아이치현 오카자키시의 마트에 진열되어 있던 생선 필렛을 멋대로 포장 벗기고 씹어먹기 등등 온갖 민폐와 범죄를 저지르며 돌아니다가 결국 신고를 받고 경찰에 체포되어 재판에 넘어가기까지 함 근데 이게 끝이 아님 쟤는 코로나가 한창 유행하던 2020년 7월에 노마스크로 전국 곳곳을 돌며 저런 민폐방송을 찍다가 일반 시민들은 물론이고, 동료 방송인, 심지어 체포하러 온 경찰 6명까지 포함해 두자릿수의 사람들을 직접 감염시켜서 그야말로 전 쪽본이 분노하게 만들었던 거임 ㅋㅋㅋ 경찰관들의 아내 등 2차 감염자까지 포함하면 피해 규모가 엄청났던 사건이라고 알면 됨 이후 재판에서 집유를 확정받으며 일본에서는 모르는 인간이 없는 민폐남에 등극했는데 과연 일본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신 반고닉 ㅇㅇ(식별코드 chalk3827)이 정말 쟤의 전과를 몰랐을까? 그리고 저 글이 선동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을까? 글쎄...? 이후에 유튜브도 밴 당하고 이런 저런 일을 겪다가 결혼하고 나서 애도 생기고 정신을 차렸다며 갱생을 주장하던 헤즈마류 나라공원의 사슴들을 지키는 활동을 하겠다며 아예 주소도 나라로 옮기고 X(트위터)에 중국인 등의 민폐 행위를 박제하며 살았지만 이번 혐한 선동을 보면 애초에 저 활동조차 진심 따위는 담겨있지 않음을 알 수 있음 제버릇 못주고 그냥 자극적인 영상이나 사건을 조작해서 관심을 끌어보려는 수작 ㅉㅉ 선량한 한국인들이 이번 사건의 진상을 알리고자 일본어로 번역한 내용을 X 등에 올리고 있지만 혐한놀이를 즐기는 쪽발이들은 저런 건 전혀 보지도 않은 채 선 넘은 비하발언을 쏟아내고 허위사실을 계속 퍼뜨리는 중임 번역기 성능이 구려서 비하단어나 욕설, 거친 말투가 제대로 번역이 안 된 부분이 많으니 감안하고 봐주기 바람 그리고 더 재미있는 걸 알려줄까? https://m.dcinside.com/board/dcbest/186357 일본근황) 나라공원 명물 사슴 학대 논란... 갈비뼈가 보일 정도 - 실시간 베스트 갤러리뼈가 드러날 정도로 앙상하게 마른 사슴들... 놀랍게도 이건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 나라공원의 사슴들임 공원의 사슴들 중 농작물을 먹거나 흉포한 개체 등 문제가 있는 사슴들은 따로 특별 울타리를 설치해서 가m.dcinside.com정작 나라 공원 사슴학대의 원조는 개쪽본임 ㅋㅋㅋ 먹이 값도 아까워서 돈벌이 하겠다고 사슴 굶겨 죽이며 학대하던 놈들이 아니므니다! 전부 외국인이 학대한 것이므니다! 쪽몬징의 민도는 높스므니다! 이지랄 하고 있으니 기가찰 노릇임 왜구 새끼들을 문명화 하기에 핵 2발은 부족했음 최소한 도시마다 핵 2발씩 떨어뜨렸어야... 일뽕들아, 니들이 선동에 낚였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선동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도 알아서 글삭&댓삭하고 피해자 명예 회복에 동참해라 괜히 오기부리면서 버티다가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ㅋ 일뽕은 정신병, 혐한은 정신병
작성자 : 난징대파티고정닉
음모와 배신, 의심과 의혹, 협잡과 암투
USS 컨스텔레이션 함장, 제2항모전단 지휘관 경력을 이어 1972년 8월 미 해군 참모차장으로 임명된 윌리엄 하우저 중장은 미 해군의 최선임 조종사로서 해군 항공대의 대표격이었다. 그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켄트 리 중장은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 전투기 한 대를 격추하였으며 제46공격비행대대 지휘관과 제6항모비행단 지휘관, 그리고 USS 엔터프라이즈 함장직을 역임하였다.1960년대 후반 USS 엔터프라이즈의 함장이었던 리는 정비병들이 12시간 교대근무로도 업무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함재기가 1시간 비행하면 40~50시간을 정비에 할애해야 하는 상황에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대령이었던 리는 소장으로 진급하여 항모전단 지휘관이 되는 대신 해군항공체계사령부(NAVAIR) 지휘관이 되어 해군이 운용할 항공기와 거기에 탑재될 무기체계를 설계하고 제작하는 진로를 택했다.원래 하우저와 리의 관계는 원활했지만, F-14에 대한 견해 차이로 두 제독은 서로 대립하게 되었다. 당시 해군 장관이었던 존 채피는 톰캣의 비용과 기술적인 문제에 대한 보고를 받고 나서 걱정되는 마음에 리와 민간 관계자들에게 조사를 요청했다. 채피에게 돌아온 대답은 문제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으로, 엔진은 추력이 모자라고 비행 중에 폭발하기도 했으며 도그파이팅 중 실속해버릴 위험도 있었다. 별로 중요한 내용은 아니지만, 리는 이 보고서를 빌미로 사무실로 쳐들어온 토마스 코놀리 제독에게 폭풍갈굼을 먹은 적이 있었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F-14가 "톰"캣으로 명명된 이유가 코놀리(그리고 토마스 무어)를 기리기 위해서였고, 코놀리 그 자신도 F-14의 열렬한 지지자였음을 유추할 수 있었을 것이다.초창기 F-14 프로그램에 참여했었고 톰캣이야말로 해군에 필요한 전투기라고 굳게 믿었던 하우저조차도 이런 문제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F-14를 버리거나 더 저렴하고 가벼운 전투기로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해결해서 써야만 한다고 여겼다.이 두 제독간 대립의 핵심은 항공모함을 위협하는 소련 전략폭격기인 Tu-22 백파이어를 둘러싼 의견 차이였다. 하우저는 F-14야말로 백파이어가 미사일을 쏘기도 전에 격추할 수 있는 유일한 전투기라고 주장했지만 리는 여러 대의 F/A-18로도 같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그렇지만 이 두 사람이 모든 면에서 대립한 건 아니었다. 1966년 하우저가 USS 컨스텔레이션의 함장이었을 때 항공모함에는 서로 역할이 다른 9종류의 함재기가 있었고, 이들은 각자 다른 예비 부품 및 정비 인력을 필요로 했다. 하우저는 이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가급적 적은 숫자의 항공기로 최대한 많은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리는 앞서 말한 것처럼 다목적 전투기의 열렬한 신봉자였다. 이 두 사람은 미래의 해군기들에 무엇이 필요할지에 대해서 대체로 동의하였고 동시에 F-14를 보완하거나 대체할 초소형 싸구려 전투기(예: F-5) 같은 건 안 된다는 점에서도 의견이 일치했다.F-14의 대안으로 제안된 것 중 하나는 1972년 첫 비행에 성공한 F-15 이글의 함재기형인 F-15N이었다. F-15는 F-14보다 비행성능이 월등하다는 점에서 주목받았지만 이미 크고 복잡하고 비싼데다가 공군기였기 때문에 항공모함에서 운용할 수 있게 개조할 필요가 있었고, 추가로 피닉스 운용능력을 부여하는 과정에서 무게가 상당히 늘어나서 톰캣보다 이점이 없을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그 외에 피닉스 운용 능력을 제거한 염가형인 F-14X도 고려되었지만 국방부 차관 윌리엄 클레멘츠는 그래봐야 F-14라는 이유로 거부했고, 리 제독의 요청에 따라 경전투기로도 경공격기로도 운용할 수 있는 다목적기인 VFAX(Naval Fighter Attack Experimental)를 도입하여 항모비행단에 배치되는 전술기들의 종류를 줄여보기 위한 연구도 진행하였다.1974년 5월, F-14X는 폐기되고 VFAX 개념안이 의회에 제출되었다. 의회에서는 VFAX 프로그램으로 새로운 항공기를 개발하는 방안은 거절하였고, 대신 미 공군 ACF(Air Combat Fighter) 프로그램에 제출된 경전투기인 YF-16과 YF-17 중 하나를 함재기로 만드는 NACF 프로그램에 대한 예산 지출을 승인하였다. YF-16을 개발한 제너럴 다이내믹스와 YF-17을 개발한 노스롭 모두 함재 전투기를 개발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두 회사는 각각 함재기 분야에 잔뼈가 굵은 링-템코-보우트(LTV), 맥도넬 더글러스와 손을 잡고 두 시제기를 기반으로 함재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ACF 프로그램에서는 각각 제너럴 다이내믹스와 노스롭, NACF 프로그램에서는 LTV와 맥도넬 더글러스가 주 계약 업체가 되는 구도였다.ACF 프로그램의 승자는 YF-16이었지만, YF-16의 함재형인 보우트 V-1600/1601/1602는 함재기로서 결격사유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1975년 해군은 맥도넬 더글러스의 손을 들어줬다. A-7 콜세어 II 이래로 군용기 분야에서 이렇다할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었던 LTV에게 NACF 프로그램은 회사의 사활이 걸린 문제와도 다름없었기에, 해군이 맥도넬 더글러스를 승자로 선언한 지 겨우 일주일 뒤에 즉시 미 회계감사원(GAO)에 항의서를 제출했다. 이 말도 안되는 땡깡에 직면한 NAVAIR의 법률 고문인 하비 J. 윌콕스와 F/A-18 프로그램의 담당 변호사인 찰스 J. 맥마누스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다행스럽게도 이들에게는 해군 조종사 출신 변호사인 존 셰퍼드가 있었다. 당시 셰퍼드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윌콕스의 사무실을 방문했다가 즉석에서 고용되어 변호사들과 조종사 및 기술자들간의 연결고리 역할을 맡게 되었고, 그 덕분에 윌콕스는 함재기에 대해서 웬만한 항공 기술자들을 능가하는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합법적인) 로비를 통해 클레멘츠가 해군의 선택을 지지했던 것도 도움이 되었다.여느 법정 싸움들처럼 좀 치사한 꼼수도 동원되었는데, 바로 해군이 의회의 지시를 거스르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ACF 프로그램에서 선정된 F-16이 함재기로 개발되어야만 할 이유가 없었다는 프레임을 짜는 것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LTV의 항의서를 확인사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끝에, 1975년 10월 1일 GAO는 LTV의 항의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GAO가 명확하게 결론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해군의 결정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NACF 프로그램 자체가 다소 이례적인 절차로 진행된 탓에 대부분의 항공기 제조사들이 경쟁에 참여할 기회조차 없었기 때문인데, 특히 해군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던 그루먼이 이 점에 내심 불만을 품고 있었다. 물론 LTV와 다르게 공식적으로 항의하는 추태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CEO인 조셉 개빈은 1975년 9월 17일 미국 상원 국방위원회에서 F-18이 F-14보다 성능이 뒤떨어지면서도 더 비싼 체계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그는 아폴로 달 착륙선 프로그램을 주도하여 달 착륙선의 개발, 그리고 아폴로 13호의 무사귀환에 기여한 유능한 기술자였지만 결국엔 사람인 이상 소신에 따르기보다는 밥그릇을 지켜야만 하는 상황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NAVAIR 내에서도 F-18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있었다. 1973년 퇴역하기 전까지 NAVAIR 항공기 설계자들에게 가히 전설적인 존재였던 조지 스판겐버그는 공군용 경전투기를 개조해서 해군기로 만든다는 아이디어 자체를 바보짓으로 생각했고, F-18이 F-4와 A-7보다 성능이 떨어지면서도 비싸다고 평가했다.여기에서 조금 의외인 점은, F-14의 지지자였던 하우저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F/A-18이 F-14의 훌륭한 보완재가 될 것이라는 점을 담담하게 받아들여 해군의 선택을 옹호하였다는 것이다.자기들의 밥그릇이 뺏길 걸 우려해서 F/A-18에 반대하는 해군 조종사들도 많았다. 당시 해군의 주력 전투기였던 F-4와 F-14는 조종사와 레이더 관제 장교(RIO)가 탑승하는 복좌기였는데, F/A-18은 복좌형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단좌형이었기 때문에 F/A-18이 배치되면 그만큼 RIO들의 TO가 줄어드는 것은 뻔할 뻔자였다.A-6 조종사들도 F/A-18을 탐탁찮게 봤다. A-6 승무원 2명이서 할 일을 F/A-18 조종사 한 명이 할 수 있다는 것처럼 보이는 해군의 태도에 대한 불만, 그리고 A-6이 지상공격 임무보다 호넷의 연료 셔틀 역할을 더 많이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A-7 조종사들의 시선도 그다지 곱지 않았다. 이들은 한 사람이 최고의 전투기 조종사이면서 동시에 최고의 공격기 조종사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었고 또한 호넷이 과연 두 임무를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심했었다. 비행 학교를 갓 졸업한 사람들은 정밀 폭격을 위해 투자한 모든 노력이 새 전투기에 의해 수포로 돌아갈 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했고, 이러한 세대 차이는 F/A-18이 배치된 후로도 이어져서 어떤 테일후크 심포지엄에서 한 경험 많은 조종사가 호넷을 디스하자 분노한 젊은 조종사들이 그를 단상에서 끌어낸 에피소드도 있었을 정도이다.공교롭게도 F/A-18을 자신들에 대한 위협이라고 본 해군 내 파벌들이 조종한 기종들인 A-6과 F-14는 그루먼이, A-7은 LTV가 제작하는 기체들이었다. 노스롭과 맥도넬의 F/A-18을 묻어버리겠다는 일념으로 의기투합한 이들은 결과를 뒤집고 예산을 삭감하기 위해 더럽 고추 한 로비와 언론플레이를 일삼았다.그나마 노스롭은 캘리포니아에, 맥도넬 더글러스는 미주리에 공장이 있어서 텍사스에만 공장이 있는 제너럴 다이내믹스와 LTV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정치적인 이점이 있었다. 그래서 민주당원들이 일반적으로 국방비 지출을 그리 선호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표밭을 지키기 위해 공화당원들과 임시동맹을 맺고 이러한 시도를 저지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종국에는 노스롭과 맥도넬의 관계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원래 맥도넬 더글러스는 해군형 F/A-18을, 노스롭은 공군형 F-18L을 개발하여 판촉하는 것으로 합의가 되어 있었고 노스롭은 여기저기에 F-18L을 팔기 위해 열심히 뛰었다. 하지만 합동참모본부의 지원까지 받아가면서 이란에 F-18L을 판매하려는 시도는 백악관에서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1977년 2월 미 공군에 대당 380만~477만 달러라는 헐값, 그것도 고정가로 팔겠다는 제안을 하기에 이르렀지만 이미 F-15와 F-16을 가진 공군이 이에 응할 리가 없었다.F-18L이 팔리지 않는 이유는 너무나도 단순했다. 미 해군과 해병대라는 초대형 고객이 있었던 F/A-18과 다르게 F-18L은 미군에서 운용하지 않는 기종인데다가 심지어 완성된 시제기조차도 없어서 자칫 잘못하면 노스롭에 호구잡힐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몇 년 후에 등장하는 F-20보다도 불리한 조건이었으니 전투기 시장에서 자매인 F/A-18에 밀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지만, 노스롭은 맥도넬 더글러스가 해군과 결탁하여 F-18L을 희생시켜 F/A-18을 더 팔아먹으려고 한다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1979년 10월 26일, 노스롭은 맥도넬 더글러스를 상대로 사기, 경제적 강압, 불공정 경쟁, 산업 스파이, 반독점 위반 혐의에 대한 4억 달러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맥도넬 더글러스는 즉시 맞고소를 했고, 이에 따라 총 손해배상액은 23억 달러로 치솟았다. 해군 관료들이 노스롭과 맥도넬 더글러스의 CEO인 톰 존스와 샌디 맥도넬에게 합의를 종용하였지만 양측 모두 거부하여 6년간 지루한 법정 싸움이 이어졌다.마침내 1985년 4월 8일, 해군 장관 존 리먼이 두 회사에 정부에서 더 이상 소송비용을 대주지 않을 것이라고 통보하면서 극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맥도넬 더글러스는 노스롭에 5천만 달러를 지불하는 댓가로 F/A-18을 어디에서든 자유롭게 판매할 권리를 얻었다.출처: Hornet: The Inside Story of the F/A-18 (Orr Kelly 著)
작성자 : 어셈블리고정닉
차단하기
설정을 통해 게시물을 걸러서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