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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머히어로x점붕소설2-2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4.20 18:4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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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가다듬은 A가 상대를 불렀다.


“B 씨, 저예요.”


동시에 TV 소리가 뚝 멈췄다.


나름 조용했던 안쪽은 곧 소란스럽게 변했다. 문에서 한 걸음 떨어진 A는 얌전히 상대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짓눌렸던 소파가 풀썩 돌아오는 소리, 옷깃이 모피에 쓱쓱 스치는 소리, 묵직하고 재빠른 쿵쿵 발걸음 소리. 문고리를 붙잡고 홱 돌리는 소리.


“뭐, 뭐야.”


끼익, 음산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덩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시간에.”


B였다.


엉거주춤 문을 연 자세 그대로, 늑대가 A를 멀뚱멀뚱 내려다 봤다. 답지 않게 동그랗게 뜬 눈동자에서 그가 적잖이 당황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보통 수요일을 제외한 주중에는 만나는 일이 거의 없다 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왜 왔어.”


짐짓 퉁명스레 꿍얼거려도 몸은 반가움을 숨기질 못했다. 겨울을 맞이해 한결 도톰해진 꼬리가 마치 날갯짓처럼, 늑대의 허리 양옆을 쉴 새 없이 파닥거린 것이다. 닫힌 주둥이 사이로는 분홍빛 혀가 빠끔 나왔다가, 말았다가 했다. 다소 긴장한 모양새였다.


예상보다 훨씬 격한 환영이 좋기도 했고, 착잡하기도 했다. 다음부터는 피로로 기절하는 한이 있어도 자주 와야겠다고 다짐한 A가 부스스 웃으며 볼을 긁적였다. 머릿속으로는 지금 처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골머리를 싸매는 와중이었다.


그렇게 몇 초가 지나고.


“어…….”


이제 막 운을 좀 떼어보려던 A가, 별안간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세요?”


늑대가 지은 표정 때문이었다.


붕붕 흔들리는 꼬리가 무색하게도, B는 인상을 슬며시 찡그리고 있었다. 가늘게 뜨인 눈과 찌그러진 콧잔등, 한 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고 벌름거리는 까만색 코. 슬쩍 벌어진 잇새에선 나지막한 으르렁거림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분노보다는 불쾌감에 가까울 듯싶었다. B에게 책잡힐 일을 만들지도 않았던 A는 당혹스럽다는 듯 눈만 껌뻑였다. 하물며 영문을 모르기로는 당사자마저도 매한가지인 모양이었다. 허리를 이쪽으로 구부정히 기울이고 연신 킁킁대는 늑대.


어딘지 익숙한 모양새.


“아니, 그게.”


한참이나 냄새를 맡아대던 B가 떠듬댔다. 시종일관 으르렁거리는 것치고는 제법 유순한 어조.


“냄새가 이상해서…….”

“역시.”

 

그러나 말을 제대로 끝마치지는 못했다.


“예상했던 그대로네요.”


웅얼거리던 목소리는 금세 잦아들었다. 귀를 쫑긋 세운 B가 내리깔았던 시선을 빠르게 들어 올렸다. A의 어깨 너머로 펼쳐진 넓은 공터. 물기 하나 없이 바싹 말라붙은 흙바닥을 터벅터벅 걸어오는 남자가 검붉은 눈동자에 들어왔다.


“……너.”


만면에 미소를 띤 남자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B가, 입을 열었다.


“뭐야.”


거기까지였다.


인상을 홱 우그러뜨린 B가 팔을 내뻗었다. 쏜살같은 손아귀는 그대로 A의 어깨를 붙들고 그대로 제 뒤쪽으로 거칠게 잡아당겼다. 순식간에 널따란 등에 숨은 꼴이 된 A는 입술이나 뻐끔거렸다. 휘둥그레 변한 시선은 위쪽으로 슬금슬금 올라갔다.


B는 A가 여태껏 보지 못했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뒤로 접힌 귀와 부릅뜬 눈, 쭈글쭈글하게 찌그러진 콧잔등. 그에 따라 딸려 올라간 주둥이 사이론 날카롭고 억센 이빨이 드러났다. 쉭쉭 새는 천둥 같은 으르렁거림은 상대를 향한 명백한 위협이었다.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아셨구나.


A는 내심 놀라고 말았다. 대략 한 달 전, K와 대치했을 때에도 이런 반응은 보이지 않았던 늑대가 아니던가. 거기다 상대는 겉으로 보기엔 그냥 생면부지의 평범한 인간인데도 말이다. 늑대인간은커녕 이계 출신이라는 사실까지 언뜻 봐서는 모를 정도로.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B는 남자를 발견하자마자 격한 반응을 보였다. 저 완벽한 의태 아래에 숨겨진 진짜 정체를 첫눈에 간파라도 했다는 듯이 말이다. 본능적으로 어떠한 위협을 감지한 것인지, 아니면 동족끼리만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인지.


궁금해 죽겠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계승자님.”


괘씸한 호기심을 또 무럭무럭 키워가던 A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사나운 위협에도 남자는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외레 태연자약하게 웃으며 불쑥 말을 꺼내기나 할 따름이었다. 그러든 말든 대답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기는 했지만 말이다. 괜스레 경계심만 돋운 듯, 털까지 완전히 곤두세운 B가 한층 세게 으르렁댔다.


“너무 경계하시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호의적인 반응은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머쓱하게 웃은 남자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볼을 긁적이며 A 쪽을 눈짓하는 와중에도 웃음기는 시들해지는 일이 없었다. 주눅이 들었다기보다는 본론을 꺼내지 못해 상당히 난처하다는 표정이다.


“이런 상태로는 대화가 안 될 것 같은데, 대신 말씀 좀 잘 전해 주시겠어요?”


***


거실바닥에 앉은 A가 양옆을 흘끔댔다.


소박하고 아늑했던 둘만의 공간은 오늘따라 비좁아 보였다. 이유야 물론 평소와 다르게 한 사람이 더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거실 한가운데에 놓인 앉은뱅이 테이블, 거기서도 TV를 등진 자리를 떡하니 차지한 붉은 머리의 남자. 신기하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는 시선.


그 맞은편엔 B가 앉아 있었다. 팔짱을 끼고 허리를 곧게 편, 기세등등하면서도 위압적인 자세. 시선은 한눈파는 일 없이 남자에게 고정된 채였다. 아까처럼 상대를 당장이라도 물어죽일 듯 으르렁거리지는 않았지만, 검붉은 눈동자에선 여전히 뚜렷한 적의가 묻어 나왔다.


TV 소리로 시끌시끌했어도 팽팽한 긴장감만은 여전했다. 서로 대화는커녕 치고받고 주먹질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은 분위기. 기가 절로 빨렸던 A는 피로한 눈을 껌뻑였다. 퀭한 시선은 남자의 어깨 너머, 아직까지도 잠잠한 게이트를 비추는 뉴스에 머물렀다.


- 이계 측에서는 아직까지 아무런 입장도 표명하지 않는 가운데…….


이러다가는 일평생 이러고 있어야 할지도 몰랐다.


“어…….”


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A가 헛기침과 함께 슬그머니 일어났다.


“음료수라도 가지고 올까요?”


그러곤 이렇게 운을 뗐다.


“그래도 될까요? 그럼 전 콜라로 부탁드릴게요.”


먼저 대답한 쪽은 남자였다.


“목 넘김이 신기해서 마음에 들더군요. 혹시 햄버거랑 감자튀김도 있나요?”

“닥쳐.”


이어서는 B가 반응했다.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라도 왔다는 양 주문하던 남자가 입을 다물었다. 세상 공격적으로 일갈한 늑대는 여전히 상대를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나지막이 으르렁거리기까지. 눈앞의 남자가 여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얘 부탁 아니었으면 집에 들일 일도 없었으니까.”

“이것 참. 저분께 감사해야겠네요.”

“너도 얌전히 앉아 있어. 어디 갈 생각하지 말고.”

“넵.”


냉큼 고개를 끄덕인 A가 제자리에 도로 착석했다. 분노 섞인 콧김을 훅 내뿜은 늑대는 제 곁에 앉은 A를 슬쩍 끌어당겼다. 안 그래도 비좁은 등 뒤편으로 A를 꾸깃꾸깃 집어넣으려는 행동은 어디 지나가는 강아지가 봐도 보호하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너, 뭐하는 놈이야.”


물론 그러는 와중에도 상대를 향한 경계심만은 늦추지 않았다.


“보시다시피 평범한 사람이죠? 선량하고 무해한.”

“농담은 집어치우고, 당장 말해.”

“오히려 제가 되묻고 싶어지는데요. 계승자님께서는 어떤 부분에서 제게서 이질감을 느꼈을까요? 당장 겉모습만 봐서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텐데.”


벙긋 웃은 남자가 제 코를 가리켰다.


“비슷한 ‘냄새’가 나서?”


B는 주둥이를 슬쩍 벌리나 싶더니, 이내 도로 다물었다.


남자는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입가에 맺힌 미소가 한층 더 짙어지는 모습이 문득 눈에 들어왔다. 이어 방금 물음이 미안하다는 듯 가슴에 손을 올리고 꾸벅 목례하기도 했다. 어디 영화에서나 볼 법한 과장스러운 몸짓이었다.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죄송합니다. 반가워서 그만.”


사과한 남자가 흠흠, 헛기침을 했다.


“아무튼, 저는 이런 사람이랍니다.”


그러곤 바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B에게 건넸다.


빳빳한 질감을 지닌 종잇조각이었다. 고개를 모로 기울인 A는 B와 함께 종이를 물끄러미 들여다봤다. 대략 명함 정도 되는 크기의 네모난 쪽지에는 상대의 이름을 비롯한 이런저런 정보가 기입되어 있었다. 기껏해야 두세 줄 정도였지만 말이다.


[적랑]

[前 마왕군 수석 책사]


아니, 이거 진짜 명함이잖아.


“여기 사람들은 공적인 자리에서 본인을 소개할 때 이런 종이를 주더군요.”


상대가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이든 말든, 남자는 제 할 말이나 술술 떠들 뿐이었다. 대체로 상대를 향한 반가움의 표현, 그리고 본인 신변잡기뿐이었다. 설마 이런 곳에서 지낼 줄은 몰랐다느니, 명함 만들기가 세상 참 힘들었다느니 등등.


“그래서, 뭐.”


짜증스레 말을 끊은 B가 명함을 구기곤 저 멀리 집어던졌다.


“수석 책사라는 놈이 여기까진 왜 온 건데.”


그러곤 추궁이라도 하듯, 상대를 노려보며 거칠게 으르렁댔다.


“왜, 복수라도 하러 왔나?”

“복수요? 제가? 농담도.”


남자는 양손을 머리께로 들어 올리곤 손바닥을 내보였다. 항복의 제스처.


“제게 그럴 힘이 있어 보이나요?”

“…….”

“있었어도 복수할 생각은 딱히 없지만요. 화를 낼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보니.”


덧붙인 이야기는 혼잣말에 가까웠다. 씩 웃은 남자가 말을 이었다.


“그럼 정식으로 소개하도록 하죠. 제 이름은 적랑.”


방금과는 달리, 조금은 진중해진 어조.


“진정한 계승…… 그리고 차기 마왕 추대를 위해서 이렇게 당신을 찾아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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