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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란티노: 한국 온 이유 ..jpg
타란티노:재밌는게 아까 니가 말한 내 비디오 가게 시절 있잖아?사실 지난 세월동안 정말 오래 생각 해봤는데당시에도 언젠가 내 영화를 만들겠다고 마음이야 항상 지니고 있었지만그때의 나는 사실 반쯤 죽어 있던거였어그 가게에 발목이 잡혀 있던거였지니 같은 경우는 코미디언이 되고 싶어서이런 저런 클럽 다니면서 면접도 보고20대를 경력을 쌓기 위해 보냈을거 아니야?근데 나는 뭐랄까 그러니까 이런거임이 비디오집에서 몇년이나 일하는게 내 꿈도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일도 아니지만비록 영화 찍는건 아니여도적어도 내 꿈을 좇는 일이고하루 씨발 종일 영화 보고온종일 영화 이야기 할 수 있잖아?이만하면 내 꿈이랑 가까운거 아니야?뭐 내가 어디 피자 배달 하는것도 아니고 술집에서 서빙 하는 그런 잡일꾼도 아니잖아? (menial job)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몇년을 일했지만사실은 바로 그게 날 아무것도 못 하게 했던거야내 열정을 식게 만든거지"이만하면 됐다" (happy enough) 하게 만들어 버린거임내 속에 있던 불꽃을 그 몇년간 잃어버렸어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인생을송두리째 바꾼 경험을 하게 됐는데당시에 어울리던 지인들 중에 스티보 라는 양반이 있었어우리 보다 5살쯤 많았는데 겉보기나 사고 방식은전혀 그렇게 연상으로 보이지 않는 친구 사이 였거든근데 딱 30살이 되더니 갑자기 뭔가 확 변하는거야태도 라든가 그런게 엄청나게 변했어원래는 우리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재밌고 웃기고 쿨하고 짱짱맨 이였는데언젠가부터 점점 화가 많아 지드만이런저런것들에 불만이 많아 지고더이상 예전처럼 웃긴 사람이 아니게 된거임가게 뒤에서 같이 지내던 룸메이트 였는데어느 날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됐거든?근데 갑자기 빡쳐서는 엄청나게 쏟아 내드라학위나 기술 하나 없이 자란 애들이어떻게 되느냐에 대한 거였지멀쩡한 직업을 가질 수 없다고 말이야"니가 어디 리코리쉬 피자 같은데서 일한다고 치자무난하게 사고 안 치면 몇년쯤 거기서 일하겠지?어쩌면 부점장 이나 점장이 될 수도 있고아니면 다른 지역 체인점에 보낼수도 있을거야헌데 본사에서 뭐 마음에 안 들었는지아니면 만족을 못 했는지 니를 그냥 짤라버리면하루 사이에 니는 길바닥에 나앉는거잖아?그래도 3년쯤 레코드 집에서 일 했으니어쩌면 타워 레코드에 일자리를 얻을 수도 있을거야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는건데 이건 사실 들어가기 어렵잖아?그러니까 아차하면 길바닥에서 노점상 카세트나 팔게 될 수가 있다고 뭔 말인지 알아?이건 어디에서 일하든지 마찬가지야저 옷가게 이 슈퍼마켓 어디든 말이지그렇게 살다가 눈 깜빡 하면 어느새 니 나이는 28살이 되있고니 평생동안 직업 이랍시고 가져본건원래는 어린애들이 자동차 기름값이나 벌라고만들어 놓은 자리에서 최저 임금 받으면서카운터에 서 있던 경험 뿐인거야그 지랄로 20대를 다 보내는거라고"조 로건:현실의 쓴 맛을 보는거구만타:쓴 맛만 있는게 아니야 난 그때 그 소리 들으면서이 사람이 뭔가 삶의 진리를 말해주는거구나 싶었음"티노야 니랑 나랑 정말 좋은 친구 인거는 맞지만솔직히 말해서내가 20살때 저쪽 영화관에서 알바 하면서딱 니 같은 애들 하고 어울렸다?그러다 거기 관두고 옷집에서 일 했는데거기서도 따악 니 같은 애들 잔뜩 있었고걔들 하고도 니랑 놀듯이 온갖거 다하면서 지냈다?그 다음 피자집에서 5년을 뛰었는데거기에도 따아악 니랑 똑같은 애들이 있었고걔네들 이랑 니 처럼 지냈거든?내 인생을 니 같은 애들이랑 어울리면서 다 날렸다고!게다가 어느 순간 다 내 곁에서 사라져버리드만"그 분명히 마음 속 어딘가에서 우러나왔을진실된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확 깨달은거야당시에 내가 갓 25살 될때쯤 이였는데안 그래도 이 나이 먹도록 뭘했나 이러고 있던 마당에 5년 뒤 내 모습을 그 형 한테서 본거임 ㅋㅋㅋ내가 30살 찍으면 저 상황 되겠구나!그래서 날을 잡고 '타란이 되돌아보기' 시간을 가졌어밤새도록 지난 25년간 내가 망친 일들 놓친 일들 안 했던 일들을그 어떤 좆같은 사소한 핑계 조차도 대지 않고전부 싹 적었어 밤 늦도록 후회 되는 일들을빠짐없이 적은 다음에 남은 시간 동안은앞으로 이걸 어떻게 바꿀것인가 그 방법을 고민 했지평생 살아왔던 방식의 정반대로 한거야그냥 자빠져 자고 일어나서 똑같은 하루를 시작 하는게 아니라내 인생을 바꿔야 겠다고 그 날 마음을 먹은거임당장 LA로 갈 계획 부터 세웠어일단 거길 가야 그쪽 업계 사람들이랑도스치고 어떻게 인연도 만들고 뭐라도 될 거 아니야?비디오 가게 일 따위는 이제 전혀 고민 하지 않았고내가 찐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돈 벌기 전까지는 아예 돈도 벌지 말아야겠다 다짐 했음물론 병신 같은 생각 이였지만 아무튼 그렇게 내가 평생 살았던 동네를 벗어나서LA로 갔는데 당연히 당장 할리우드로이사 할 수는 없었제 그 정도 돈은 없었으니까그래서 한국인들 사는 곳으로 간거야한인 타운 정도면 그래도 그나마 할리우드랑 가까운 곳이잖음그렇게 옮기고 나니까 뭐 저예산 호러 영화 찍는 사람도 만나게 되고그 사람을 통해서 저예산 호러 각본 쓰는 사람도 만나게 되고그 사람을 통해서는 또 저예산 영화 몇편 감독한 사람을 알게 되고그 사람을 통해서 영화 몇편 제작한 프로듀서 보게 되고그러니까 어느 순간 나도 나름 업계인들을 알게 된거지웃긴게 막상 임마들 만나게 되니까 드는 생각이이런 애들도 영화판에 있다고? 그럼 나도 되겠는데?그렇게 일을 시작 했더니 막 당장 내 삶이한순간에 달라졌다 이런건 아니지만할리우드 근처로 온지 1년 반 정도 지나니까그래도 작가로 먹고 살만해 지드라고천만원 받고 대본 고쳐주거나500만원 받고 각본 수정 해주거나1500만원 받고 새로 써주거나 이런식으로 ㅇㅇ내가 씹거 그전까지는 1년에 1500만원벌면 많이 벌던 비디오 가게 알바 였는데지금은 글 쓰는걸로 2천만원씩 벌어?좆되는거지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타란티노:요즘 다들 "요새는 TV 드라마 수준도 높아~" 이러는데나도 꽤 괜찮다고 생각은 하지만나한테는 여전히 그냥 딱 드라마는 드라마정도야영화를 따라 올 수는 없요즘 드라마들 그러니까 그나마 보고 싶게 만드는몇 안 되는 잘 만든 작품들은영화의 모양새를 얼추 취하고 있어영화판에서 쓰는 방법들로 찍고 있지구체적인 작품을 예로 들어 보면엘로우스톤 같은거 1시즌 보면서 와 개좆된다 감탄을 했다고이거 꼭 영화 같네 이러면서3시즌 까지 보고 외전 1883 까지 봤거든?근데 희한한게 보는 동안은 꽤나푹 빠져서 봤지만 딱 끝나고 나니까역시 그냥 드라마 일 뿐이였어매력적이지만 그저 드라마 인거임조 로건:그거랑 영화의 차이는?타:한 5년쯤 뒤에는 그 드라마에 대한걸아무것도 기억 못 한다는거지그저 보고 있는 그 순간에만 잠시 혹 하는거야아주 훌륭한 영화를 봤다?죽을때 까지 기억에 남아특정 장면 특정 인물 특정 이야기그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적 빌드업과절정에서 오는 만족감이 있는데드라마는 그런게 없어물론 보는 동안에야 순간적인 재미로는 충분 하지근데 끝나고 나면 예 들어 그 드라마의악역의 서사나 감정선 같은건 전혀 머리에 안 남는다고그냥 시청 즉시 사라지고 끝난다는거야조:형식의 차이 떄문 아닐까?영화는 기본적으로 한번 앉으면거기서 몇시간 안에 모든 이야기를 끝내야 하니까타:홈랜드 시즌 1 같은거 봐봐홈랜드 시즌1은 진짜로 영화 그 자체야시즌 1의 마지막 회차를 보자고폭탄 조끼를 입고 방에 들어와있어시즌 내내 죽일려고 했었던 사람을끝낼 수 있는 순간이야이걸 보는 우리들은 저 주인공이 죽지 않길 바라면서도 동시에 터뜨렸으면 좋겠다 싶지그런데 주인공 딸래미가 전화가 오네?딸은 정확히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르지만아버지가 이상하단걸 직감으로 느껴"아빠 집에 꼭 들어 올거죠?지금 당장 말해 줘요! 오늘 밤 아빠 볼 수 있죠?"시즌1 전체가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빌드업 해온건데내가 본 모든 영화 모든 드라마 다 통틀어서이 장면 처럼 폭발성이 있는건 본 적이 없어이건 진짜 찐으로 영화 인거야드라마 같은게 아니라!폭탄 조끼 입고 방에 처박힌 그 좆같은 상황 까지 오게 된 그 빌드업이 바로 영화 라고!거기에 복잡성 까지 들어있잖아시청자들은 알지만 인물들은 모르는서로의 속사정으로 인한 상황 까지!보는 우리는 아는데주인공들은 몰라서 파국으로 가는그 씨발 그게 바로 영화 라니까!조:뭔 말 인지는 알겠는데그걸 어떻게 매주 하농?타:아니 매번 하라는게 아니고최소한 시즌 마무리 만큼은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라 영화를 원한다 말임매주 그런거 뽑아내는걸 기대 하는게 아니야시즌의 마지막 그러니까 해당 이야기의종착지에서는 사람들이 계속 보고 싶게 만들거면존나 큰거 한방은 떨어뜨려줘야지딱 마이크 드랍! 하면서 끝내야 한다고내가 보고 싶은건 '...' 같은 투 비 컨티뉴가 아니라 이야기란 말이야..
작성자 : 3dd고정닉
미드웨이 해전의 VT-8 어벤져 분견대 (5) 마지막화
[시리즈] 미드웨이 VT-8 어벤져 · 미드웨이 해전의 VT-8 어벤져 분견대 (1) · 미드웨이 해전의 VT-8 어벤져 분견대 (2) · 미드웨이 해전의 VT-8 어벤져 분견대 (3) · 미드웨이 해전의 VT-8 어벤져 분견대 (4) VT-8 미드웨이 분견대의 영웅들 (좌측 항공기 번호)8-T-16 : LT Langdon K. Fieberling, ENS Jack Wilke, RM2c A. R. Osborn8-T-19 : ENS Charles E. Brannon, AMM3c W. C. Lawe, AOM3c C. E. Fair8-T-1 : ENS Albert K. Earnest, ARM3c HH Ferrier, AMM3c JD Manning8-T-12 : ENS Victor A. Lewis, AMM3c NL Carr, EM3c JW Mehltretter8-T-4 : ENS Oswald J. Gaynier, ENS Joseph M. Hissem, SEA1c HW Pitt8-T-5 : NAP Darrell D. Woodside, PTR2c AT Meuer, AOM3c LJ OrgeronVT-8 분견대 조종사 - Fieberling, Brannon, Lewis, Gaynier, Woodside는 모두 사후에 해군 십자장(Navy Cross)을 수여 받았다. VP-24의 항법장교 Wilke와 Hissem도 사후에 해군 십자장을 수여 받았다.생존한 Albert K. Earnest 소위는 어뢰 공격에 대한 첫 번째 해군 십자장과 신형 기체를 무사히 귀환 시킨 공로로 두 번째 해군 십자장을 받았다.VT-8 분견대 항공 승무원 Osborn, Lawe, Fair, Manning, Carr, Mehltretter, Pitt, Meuer VP-44의 Orgeron는 사후에 비행 십자장(DFC)을 수여 받았다.1942년 6월 4일 두 번의 VT-8 임무에서 항공 승무원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VT-8의 무전수 Harry H. Ferrier도 비행 십자장을 수여 받았다.다음 함선들은 VT-8 미드웨이 분견대에서 전사한 장교들의 이름을 따서 명명 되었다.버클리 급 호위 구축함 USS Fieberling (DE-640)은 1944년 4월에 취역하여 오키나와에서 배틀 스타 1개를 받았고, 가미카제 공격으로 피해를 입었다. 1948년 3월에 퇴역했다.존 C. 버틀러 급 호위 구축함 USS Charles E. Brannon (DE-446)은 1944년 11월에 취역하여 보르네오 전역에서 배틀스타 1개를 받았다. 1946년 5월에 퇴역했다.존 C. 버틀러 급 호위 구축함 USS Lewis (DE-535)는 1943년 12월에 취역하여 3개의 전투별을 받았다. 1946년 5월에 퇴역했다. 1952년 3월에 재취역하여 한국 전쟁에서 배틀스타 1개를 받았고, 1960년 1월 마리아나 해구를 탐사한 심해 잠수정 트리에스테를 지원했다. 1960년 5월에 퇴역했다.캐논 급 호위 구축함 USS Gaynier (DE-751)는 1944년 9월 건조 중 취소되어 해체되었다.캐논 급 호위 구축함 USS Jack W. Wilke (DE-800)는 1944년 3월에 취역하여 대서양 호송 및 ASW 작전을 수행했다. 1960년 5월에 퇴역했다.에드샬 급 호위 구축함 USS Hissem (DE-400)은 1944년 1월에 취역하여 지중해 호송대에 대한 독일 공습에서 배틀 스타 1개를 받았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고 1970년 5월에 퇴역했다.미육군항공대 B-26 폭격기 4대의 승무원 전원이 해군 십자장과 동등한 육군 훈장인 수훈근무십자장(DSC)을 수여 받았다.VT-8은 진주만에 남아있던 TBF 기체들과 승무원들을 보충하여 미드웨이 해전 이후 재편성되었고, Swede Larson 중위가 지휘를 맡았다. VT-8은 USS 사라토가를 거쳐 USS 호넷에 다시 배치되어 1942년 10월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호넷이 침몰할 때까지 과달카날 주변에서 작전을 수행 했다.호넷 침몰 후 잔존한 기체와 승무원들은 과달카날 헨더슨 비행장에서 혹독한 조건하에 작전을 수행했다. 두 번째 VT-8 뇌격비행대에서 조종사와 항공 승무원 7명이 전사하고 8명이 부상당했다.Albert K. Earnest는 1942년 9월과 10월에 과달카날 주변에서 일본해군과 싸우며 세 번째 해군 십자장을 받았다.Earnest는 미드웨이와 과달카날에서 총 5번의 어뢰 공격 및 항공폭탄으로 지상지원을 했으며, 동부 솔로몬 해전에서 일본 경항공모함 류조의 격침에 일조하였다. 임무 중 부상으로 인해 Earnest는 미국으로 후송되었다. 1942년 11월 13일, 비행대의 과달카날에서의 마지막 활동 중 Swede Larson 중위는 11월 12/13일 밤 전투로 표류하는 일본 전함 히에이에 어뢰를 발사하여 침몰을 앞 당겼다. 1942년 후반 그간의 전투 피로와 열대 질병들로 피폐해진 조종사와 항공 승무원들은 미국으로 귀국했고, VT-8은 해체되었다. 1941년에서 1942년까지 VT-8의 조종사 35명이 39개의 해군 십자장을 받았다. 항공 승무원들은 용맹에 대한 50개 이상의 메달을 받았다. 이 비행대는 2차 세계 대전 중 두 개의 대통령 부대 훈장을 받은 유일한 부대였는데, 하나는 미드웨이 해전, 다른 하나는 과달카날 전역의 공로로 수여 받았다.Fieberling 중위와 Earnest소위의 훈장 수여 인용문미국 대통령은 1942년 6월 4일 적 일본군과의 "미드웨이 해전" 동안 미드웨이 비행기지에서 출격한 뇌격기 조종사이자 VT-8 분견대의 지휘관으로 작전에서 뛰어난 영웅적 행위를 한 미국 해군 예비군 Langdon K. Fieberling 중위에게 해군 십자장(사후 수여)을 수여하게 되어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일본 침공 함대의 적 항공모함에 대한 첫 번째 공격에서 Fieberling 중위는 적 일본 전투기와 대공포의 맹렬한 포화에 맞서 편대를 이끌었습니다. 미드웨이 해전과 관련된 사건으로 볼 때 그가 조국을 위해 용감하게 목숨을 바쳤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의 용기와 자신의 개인적 안전에 대한 전적인 무시는 미국 해군의 가장 높은 전통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조국을 위해 용감하게 목숨을 바쳤습니다.***미국 대통령은 1942년 6월 4일 적 일본군과의 "미드웨이 해전" 동안 미드웨이 비행기지에서 출격한 뇌격기 조종사이자 VT-8 분견대의 지휘관으로 작전에서 뛰어난 영웅적 행위를 한 미국 해군 예비군인 Albert K. Earnest 소위에게 해군 십자장을 수여하게 되어 기쁩니다. 일본 침공 함대의 적 항공모함에 대한 첫 번째 공격에서, 어니스트 소위는 적 일본 전투기와 대공포의 맹렬한 포화에 맞서 공격을 계속했습니다. 그의 충성스러운 의무에 대한 헌신과 수적으로 우월한 적군을 공격하는 데 있어서 자신의 개인적 안전에 대한 전적인 무시는 미국 해군의 가장 높은 전통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미국 대통령은 1942년 6월 4일 적 일본군과의 "미드웨이 공중전" 동안 해군 비행장 미드웨이에서 출발한 VT-8(어뢰 전대 8)의 항공모함 기반 해군 어뢰 비행기 조종사로 복무하면서 적에 대한 작전에서 탁월한 영웅적 행위를 한 미국 해군 예비군 Albert K. Earnest 소위에게 해군 십자장 2차 수여 대신 금성장 (GOLD STAR)을 수여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엄청난 적 전투기와 대공포의 저항에 직면한 상태에서 전투기 엄호 없이 어뢰 공격을 완료한 Earnest 소위는 부상을 입고, 사수는 전사한 상태에서 기관총 총알과 기관포탄에 휩싸인 비행기로 귀환 비행을 했습니다. 나침반과 폭탄창 문이 작동하지 않고 랜딩기어의 바퀴 하나는 고장났으며, 엘리베이터 제어 장치가 날아간 상태로 Earnest는 엘리베이터 트림 탭을 전문적으로 사용하여 약 200마일 떨어진 미드웨이에 안전하게 착륙했습니다.지금까지 입증되지 않은 신형 비행기의 전투 효율성을 확인하는 것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던 Earnest 소위는 엄청난 위험과 신체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끈기 있게 버텼습니다. 그의 위대한 용기와 불구가 된 비행기를 다루는 데 있어서의 뛰어난 기술은 미국 해군의 가장 높은 전통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Albert Kyle “Burt” Earnest (1917~2009년) 향년 92세해군 십자장 3회, 에어 메달 2회, 퍼플하트 전후 적성장비 테스트 파일럿, 허리케인 헌터, 제트기 비행 면장 취득. 1972년 퇴역 Harry Hackett Ferrier (1925~2016년) 향년 91세미드웨이 해전 당시 17세, 비행 십자장, 퍼플하트, 에어 메달 3회, 대통령 부대 훈장 4회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참전. 1970년 퇴역TBF는 기총 세례를 견뎌내었고, 6월 4일 전투에서 해군 보유기체 중 거의 전부를 상실한 TBD를 대체할 수 있는 견고하고 가치 있는 비행기임을 증명했습니다. 저는 이 전투에서 많은 것을 보고 겪은 비행기의 기체 번호를 기억하고자 항상 노력합니다. TBF-1 BuNo 00380으로, 우리 비행대에 인도된 첫 비행기였으며 측면 번호는 8-T-1이었습니다. 전투 당시 일본군 전투기들이 제가 탄 어벤저의 8-T-1 이라는 측면 번호 때문에 우리를 잡으려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종종 궁금해 하곤합니다. 어벤져는 나중에 진주만으로 반환되어 조사되었습니다. 엔지니어들은 비행기에서 기관총 총알 64발과 20mm 기관포 9발에 피격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더 많은 총알이 맞았을 수도 있지만 기관포에 맞은 부위때문에 가려졌습니다.미드웨이 분견대의 TBF 6대와 호넷 TBD 15대 중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귀환한 비행기는 우리 비행기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Earnest소위와 저는 동료 모두를 상실했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저는 Fieberling중위가 출격금지 명령을 내린 1등 항공 기관병 William Coffey와 함께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의 몇 안 되는 개인 소지품들을 정리하고 포장하는 슬픈 임무를 맡았습니다. 소중한 시집, 편지, 연인과 가족의 사진이 담긴 책이었는데, 그 모든 것이 어떻게든 사라진 주인들을 닮았더군요.- Ferrier의 전후 회고 내용 중https://www.history.navy.mil/about-us/leadership/director/directors-corner/h-grams/h-gram-072/h-072-1.html - 원문 출처
작성자 : 투하체프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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