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탄핵 ‘줄기각’에 사과해야 하는가”, “야당의 ‘줄탄핵’으로 계엄이 불가피했다는 윤석열 대통령 진술에 공감하는가”, “우리법연구회 소속 헌법재판관은 공정하게 판결할 것인가”.

지난 16일 공표된 한국여론평판연구소(KOPRA) 정치사회 현안 조사(아시아투데이 의뢰) 설문지에서 대통령·정당 지지를 물은 뒤 이어지는 문항들이다. 계엄의 정당성을 강변하며 헌법재판소를 흔들어온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시각이 짙게 반영되어 있다. 지난 14일 공표된 여론조사공정의 정당 지지도 조사(펜앤드마이크 의뢰)에서는 ‘탄핵이 내란이라는 주장에 동의하는가’, ‘국회 탄핵소추는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 등 문항이 확인된다. 역시 탄핵 소추 자체를 문제 삼는 윤 대통령 쪽 입장과 조응하는 질문들이다. 이 조사들은 편향된 문항 설계로 질문에 동의하지 않은 응답자를 걸러내어 정치적으로 치우친 결과를 의도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명태균 게이트’와 12·3 내란사태,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한국의 정치 여론조사가 오랜 기간 국제 표준에 뒤떨어진 부정확한 조사 기법에 의존해왔으며 정치인과 언론사가 이 관행을 이용하며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은 연방법을 통해 1991년부터 개인 휴대전화에 자동응답전화를 걸 수 없도록 에이알에스 조사를 금지하고 있다. 김춘석 한국리서치 여론조사부문장은 “무작위로 개인 동의 없이 에이알에스를 쏘는 행위는 개인정보 보호 문제도 있고, 조사 관점에서도 문제가 많다. 미국에서는 법으로 규제하고, 유럽에서도 전문가 집단은 에이알에스 조사는 해선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에는 국외에서도 에이알에스가 타당한 조사 방식으로 쓰인다는 주장이 있으나 김 부문장은 “여기서 말하는 에이알에스는 아이브이알(IVR)이다. 사람이 먼저 전화를 걸어 의사를 확인한 뒤에 기계음으로 질문하는 것이다. 아무한테나 다량으로 쏴 버리는 한국과는 다르다”라고 반박했다.
한국기자협회 등 5개 언론 현업단체는 2016년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해 선거 여론조사 보도준칙을 제정했다. 이 보도준칙은 “미디어는 과학적 표집 과정을 거치지 않은 에이알에스 여론조사를 기획하거나 의뢰하지 않아야 한다”(8조), “에이알에스 여론조사에 대해 미디어는 그 결과를 인용하지 않아야 한다”(14조) 등 규정을 두고 있으나,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 언론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