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은빈이 의사가운을 입었다. 메디컬 드라마 출연 소식이 들려올 때부터 박은빈표 의사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한 시청자가 많을 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나 <무인도의 디바> 같은 우리가 익히 보아온 밝고 쾌활하고 씩씩한 비타민 같은 캐릭터를 혹시라도 예상했다면, 크게 충격받을 수 있다.

오리지널 창작 시리즈인 <하이퍼나이프>는 과거 촉망받던 천재 의사였던 ‘정세옥’(박은빈)이 자신의 의사 면허를 박탈한 스승 ‘최덕희’(설경구)와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치열한 대립을 그린 메디컬 스릴러. ‘하이퍼나이프’란 일반적인 칼이 아닌 극도로 정밀한 메스를 의미한다.

박은빈이 분한 ‘정세옥’은 한마디로 수술에 미친 의사다. 의학적 윤리도 생명에 대한 존중도 찾아볼 수 없는 인물, 게다가 분노조절장애에 ‘자기 것’을 빼앗기는 것을 죽을 듯이 증오하는 문제적 캐릭터다. 설경구가 분한 ‘최덕희’는 세계 최고의 신경외과 의사이자, 정세옥의 스승으로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인물인데 가만히 보면 정세옥과 최덕희는 닮은 점이 많은 데칼코마니 같은 캐릭터라 하겠다.

정세옥과 설경구의 재회부터 시작해서, 중간중간 플래시백으로 과거 서사를 보여주는 전개 방식을 취했는데, 1~2화까지는 감질나게 밀당을 잘한 편으로, 그들의 관계성에 호기심을 부추긴다. 이 시리즈의 첫 번째 관람포인트는 극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박은빈의 변신일 것이다. 연기 경력 30년에 육박하는 박은빈이 최초로 맡은 악역인데, 그 정도가 꽤나 긍정적인 의미로 심각하다.

맑눈광(맑은 눈의 광인)이라는 귀여운 표현으로는 박은빈의 새로운 면모를 표현할 수 없다. 뭐랄까. 먹이를 눈앞에 둔 굶주린 사자 인양 수술대 앞에서 번뜩이는 눈, 맨발로 수술실에 들어가서 피를 뚝뚝 묻히는 기이한 행동, 그리고 자신에게 방해되는 사람이라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제거해 버리는데 그 순간의 기괴한 웃음은 섬뜩함 이상으로, 찐 광기를 보여준다.

제자를 쫓아냈던 스승이 다시 제자를 찾아온 까닭은 바로 뇌종양에 걸린 자신의 수술을 의뢰하기 위해서다. 의사면허를 박탈당하고 불법 수술을 행하는 정세옥에게 의사 면허 복권과 교수자리를 제안하는 최덕희다. 하지만, 정세옥은 눈앞에서 스승을 향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안하무인의 인물이다. 두 사제의 불꽃 튀는 대결이 이 시리즈의 두 번째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