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갑자기, 여자가 돼버린 거 같아."
나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나는 전화를 걸었다.
***
아무런 전조도 없었다. 평소와 똑같은 하루를 보냈을 뿐이었다. 밥을 먹고, 게임을 하고,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고 낄낄거리다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일어나 거울을 봤다.
낯선 여자가 서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낯선 여자 아이가 서있었다.
"……뭐야?"
나였다.
내가 눈을 굴리니 거울 속 여자 아이도 눈을 굴렸고, 손을 뻗으니 손을 뻗었다. 내가 놀라 소리를 지르니 여리고 고운 미성이 방 안에 울려퍼졌다.
분명 나였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처해 머리가 멍해졌다. 뭘까, 꿈일까? 이게? 꿈이 아니면 말이 안 돼. 그런데, 그런데 이렇게나 실감이 가득한데? 이 모든 감각과 인식이 꿈이라고?
현실이다. 이건 현실이야.
부정할 수 없는, 본능적인 확신이 들었다.
"핸드폰, 핸드폰, 핸드폰, 핸드폰...!"
내 손이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으로 향했다. 그리고 연락처를 열었다. 도움이 필요하다. 이 패닉에서 날 꺼내줄 사람이 필요해.
……누구한테 전화를 해야할까. 분주하던 손이 잠깐 멈췄다. 하지만 정말 잠깐이었다. 떠오르는 사람은 하나뿐이었다.
가장 친한 친구. 언제나 나를 믿어주는 친구. 가족보다도 가까운 그 녀석.
내 손은 움직였고, 그 녀석이 전화를 받았다. 늘 듣던 그 목소리, 그 말투였다. 바보 같이 그런 당연한 사실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어, 무슨 일이야?"
……뭐라고 말해야 할까? 이 상황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뭐라 말해야 내 친구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나 갑자기, 여자가 돼버린 거 같아."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밖에 없었다.
***
사실 그 뒤로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간 건지 잘 모르겠다. 농담하지 말라고, 이 여자 목소리는 누구 목소리라고 묻던 친구는 내 계속된 주장에 결국 우리집까지 찾아왔고, 경악했다.
흐트러진 집의 광경, 내가 설명한 정황, 그리고 서로만이 알고 있던 비밀 얘기……. 과정은 정신 없었지만 그다지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친구는 내가 여자가 됐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 날 이후 친구는 내 인생 속에 더 깊게 다가왔다. 다 큰 성인 남성이 갑자기 여자 아이가 되었다. 일상의 불편함도 만만치 않았지만, 사회적인 불편함이 훨씬 컸다.
국가에 등록된 나라는 인간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네가 지금 나없이 어떡하겠냐."
친구는 그런 나를 성심성의껏 도와줬다. 직장 생활에 바빠 자기 여가 시간도 제대로 못 가지던 녀석이었지만, 나를 위해서라며 최대한 시간을 만들었다.
"미안해 할 거 없어. 나중에 너도 갚겠지. 설마 떼먹고 도망칠 생각이었냐?"
친구는 그렇게 말하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나는 조금 울었다. 여자가 돼서 그런가, 웃음보다 눈물이 더 먼저 나왔다. 친구는 당황했다.
하지만 친구의 도움이 있어도 삶은 쉽지 않았다. 남자의 정신과 여자 아이의 몸. 나는 그저 가만히 숨쉬는 것만으로도 고통이었다. 이 몸으로 사회에 나가 다시 적응한다는 건 정말 너무나도 힘들었다.
솔직히 우울할 지경이었다. 죽을 만큼.
"일단 한 잔 받아. 마시고 힘내. 그래도 처음보다는 많이 적응했잖아. ……근데 너 술 마셔도 되지?"
그렇지만 친구는 이런 나를 변함없이 응원해주었다. 만약 친구조차도 내 옆에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하기도 싫었다.
비록 친구도 나를 사회에 적응시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친구 덕에 나는 죽지 않을 수 있었다.
친구를 향한 고마움과 미안함, 나의 마음은 점점 커져만 갔다.
이런 내가 갈 곳은 결국 가상 세계밖에 없었다. 여기에는 성별도 사회적 지위도 없으니까. 나는 익명 커뮤니티에 푹 빠졌다.
나는 휴대폰을 보며, 그 속에 있는 웹소설 커뮤니티를 보며 낄낄거렸다. 웹소설 역시 내가 갈 수 있는 가상 세계 중 하나였다. 나는 집에 박혀 수십, 수백 개의 작품을 읽었다. 그러니 내가 웹소설 커뮤니티에 중독된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온 일이었다.
"병신들."
그곳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다. 이 작은 몸뚱이에 담긴 어마어마 한 스트레스 만큼, 거릴 거 없이 남을 욕하고 다른 작품을 욕하며 마음껏 떠들어댔다. 짜증나는 남의 눈치 따위, 사회의 눈치 따위는 전혀 보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일탈이었다.
솔직히 즐거웠다. 삶은 절망과 불편 투성이였지만, 나에게는 친구가 있었다. 믿을 수 있는 친구가 있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이런 삶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었다. 안주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단둘이 식사를 하던 와중이었다.
"아, 진짜 회사 좆같다. 왜 이렇게 좆같은 새끼가 많냐. 진짜 퇴사 마렵네."
친구가 힘없이 웃으며 농담 반 진심 반이 담긴 푸념을 했다. 확실히 요즘 녀석의 안색이 안 좋기는 했다. 보고 있기 힘들었다.
"……그러면 소설 한 번 써보는 건 어때? 너 고등학생 때부터 글은 좀 썼잖아. 내가 홍보도 열심히 해줄게. 어때?"
나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제안하고 말았다.
멍청한 새끼.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퇴사는 하지 않았지만 친구는 정말 글을 썼다. 일단 가볍게 한 번 써보고 시장의 반응을 확인할 생각이라고 했다. 친구는 반신반의했지만, 나는 친구를 믿었다. 예상대로 제법 그럴 듯한 글이 나왔다.
당연히 나는 내가 활동하던 커뮤니티에 친구의 작품을 홍보하는 글을 미친 듯이 올렸다. 내가 생각해도 좀 과할 정도로.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적어도 내가 녀석에게 받은 만큼은 해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이게 내가 널 위해 해줄 수 있는 최선이니까.
물론, 그 와중에도 다른 작품을 향한 나의 날선 게시글들은 여전했다.
그러다가 일이 터졌다.
커뮤니티에 한 게시글이 올라왔다. 나는 자연스럽게 글을 클릭했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내 얘기였다. 그리고 친구의 얘기였다.
사람들이 나와 내 친구를 동일시하고, 친구가 부당한 방법을 통해 자기 작품을 홍보하고, 다른 동료 작가들을 비난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 멍청한 잘못을 그 녀석이 뒤집어썼다.
나 때문에, 나 때문에.
나 때문에 그 녀석의 미래가 망가진다.
내 병신 같은 호의가 이 사단을 일으켰다.
어떻게 해명을 해야하지? 난 이 사회에 제대로 존재조차 인정 받지 못하는데? 어떻게 해야하지. 방법이 없어. 어떻게 해야 여론이 진정될까. 친구를 지킬 수 있을까. 어떻게, 어떻게.
방법이 없다.
이 개같은 몸뚱이 하나 때문에.
여론은 최악으로 향했다. 전화기가 미친 듯이 울린다. 분명 그 녀석이겠지. 대체 무슨 말을 할까. 무슨 말을 들려줄까.
분명 날 향한 비난일 것이다. 전부 네 탓이다. 너의 괜한 짓이 내 작품을 망쳤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지만 그것말고는 그 무엇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모든 걸 망쳤다.
"미안해……. 미안해……."
내가 모든 걸 망쳤다.
멍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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