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 레붕이들. 이번 126번째 시간에는 이전에 예고했던 대로, 당대 미 육군의 최정예이자, <레드 데드 리뎀션> 시리즈에 등장하는 가장 악명높은 무법자 중 한 명인 '빌 윌리엄슨'이 소싯적에 몸담았던 그 유명한 '미 육군 기병대'(United States Cavalry, U.S. Cavalry)에 대해서 똥글을 갈겨볼까 해.


시작하기에 앞서, 다들 알고 있겠지만 이번 편을 위해 준비한 하단의 BGM 역시 다른 편들과 마찬가지로 재생시간이 본문에 비해 다소 짧은 관계로, 정독 도중 흐름이 끊기는 걸 방지하고 몰입감을 유지하기 위해 이왕이면 연속 재생으로 설정하고 감상하길 권장할게. 그럼 오늘도 신나게 가보자고!
BGM: 캐리비안의 해적 - 낮선 조류 OST 'Spanish Arrive' (Dark Version)




먼저 미 육군 기병대(이하 '미 기병대')는 전투의 선봉에 서서 적군을 향해 거침없이 돌진하는 특유의 박력과 저돌적인 용맹성으로 미칠듯한 간지폭풍을 발산하여 위용을 널리 떨친 바 있으며, 우렁찬 나팔소리와 함께 지축을 뒤흔드는 말발굽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우르르 내달려와, 적병을 순식간에 쓸어버리면서 수세에 몰린 아군을 극적으로 구출해 내는 그 영웅적인 모습은, 일찍이 고전주의 서부극에서부터 현대 오락영화에 이르기까지 단골 클리셰로 자리잡았고, 지금도 시대와 장르를 막론하고 전쟁 영화나 액션 블록버스터, 밀리터리 게임 등등 여러 창작물 속에서 계속 변주되면서 쓰이고 있음.


대표적으로 '존 포드' 감독의 1939년작 고전 서부극 <역마차>(Stagecoach)가 있으며,(위 움짤 속 장면.) 이러한 영향인지 오늘날 미국에서는 "기병대를 기다린다."(Waiting for the cavalry. = 빽 믿고 존버 중.), "기병대가 도착했다!"(The cavalry has arrived! = 우린 이제 살았다!), "기병대는 오지 않는다."(The cavalry isn’t coming. = 우린 이제 좆됐다.) 라는 식의 관용구들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등장하는) '구세군'이나 '최후의 희망', '해결사', '구원투수', '데우스 엑스 마키나' 등의 의미를 내포하는 유명한 사전적 표현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음.




가령 영화 <어벤저스>의 파생작인 <에이전트 오브 쉴드>(Agents of S.H.I.E.L.D.)의 등장인물 '멜린다 메이'(위 사진 속 여성 캐릭터)의 이명이 바로 'The Cavalry'(더 캐벌리, 기병대)인데, 설명을 하자면 그녀는 초인적인 무력을 지닌 인물로서, 해당 이명은 적군으로부터 위기에 처한 동료 요원들의 목숨을 극적으로 구해준 것을 계기로 얻게 된 것이며, 이는 곧 상기한 미 기병대의 관용적인 의미를 적용한 현대 창작물 속의 사례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음.


이러한 미 기병대는 미국 독립전쟁 시기부터 건국 초까지 활약했던(1775~1833년) '용기병'(龍騎兵, 드라군, Dragoon)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 본래 용기병이란 16~17세기 유럽에서 첫등장한 병과인데, 용기병이라고 하니까 "뭐야, 얘네 용 타고 다니는 애들임?" 하는 생각이 들면서 뭔가 있어 보이겠지만, 이는 사실 위 사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당대의 구닥다리 화승총(머스킷)을 '드라곤'(드래곤, Dragon)이라고 불렀던 데에서 유래된 것일 뿐으로, 총구에서 총탄이 발사되는 모습이 꼭 용이 화염을 내뿜는 것처럼 보였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는데, 이걸 주무장으로 들고 싸운다고 해서 병사들도 덩달아 드라군이 된 것임.
이렇듯 당시 용기병은 이름만 그럴싸하지, 우리가 기병 하면 딱 떠오르는 일사불란하게 기동전 벌이는 날렵한 경기병(輕騎兵)도 아니고, 그렇다고 떡장갑 두르고 개돌하는 육중한 중기병(重騎兵)도 아닌, 도대체 뭐 하는 새끼들인지 그 정체성이 존나 애매한 병과였음. 이를 노골적으로 말해서, 사실상 '빠르게 움직이는 보병' 쯤에 불과했다고 보면 되겠음.

이게 무슨 말이냐면, 당시 용기병은 기병이랍시고 일단 말을 타고 이동하긴 하는데, 정작 싸울 땐 일반 보병처럼 싸우는 '반쪽짜리 기병', 이른바 '승마보병'(乘馬步兵) 또는 '기동보병'(機動步兵)이었다는 뜻으로, "아니, 기병이 말에서 내려서 싸운다고? 그럴 거면 그냥 처음부터 보병을 하지, 왜 거추장스럽게 말 타고 다니면서 병신같이 똥폼 잡음?" 싶을 텐데, 다들 알다시피 기병은 육성 난이도가 보병 따위와는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어렵고 오래 걸리는 데다가, 돈도 존나게 많이 들어가서 전통적으로 동서를 막론하고 귀족적인 특성의 소수정예 병과였음. 그래서 '보병은 싫고, 기병을 육성하고는 싶은데' 돈은 없고, 노하우도 딸리고, 그렇다고 경기병처럼 굴리기도 애매해서, 그 타협안으로 나온 게 바로 보병과 기병을 절충한 용기병이 되겠음.

이러한 어중간한 특성에도 불구하고, 용기병은 육성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또 대체로 좁고 평탄한 전장에서 일렬횡대로 나란히 줄지어 서서 일제사격 갈기는, 위 움짤의 전열보병 중심 밀집전투를 벌였던 유럽에선 보병을 빠르게 지원해 주거나, 정찰이나 순찰, 경비, 후방 교란 용도로도 그럭저럭 써먹을 만해서, 큰 쓸모는 없지만 없으면 아쉬운 '약방의 감초' 격의 포지션을 담당했음. 따라서 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은 미국도 초기엔 이러한 유럽식 용기병을 그대로 모방해 굴렸는데, 그러다가 1800년대 중반에 접어들며 미국이 서부 진출, 개척이라는 이름의 침략을 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용기병의 한계를 통감하면서, 미국은 기존의 용기병을 갖다버리고 1833년경에 정식으로 미 육군 기병대를 창설하게 됨.

여기서 왜 미국이 기존의 용기병 대신 기병을 창설하게 되었는지 그 내막을 설명하자면, 미국은 서부를 땅따먹기 하는 과정 속에서, 미국의 침략에 맞서 자신들의 터전을 지키려는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들과 무력 충돌이 잦아지게 되는데, 이때 인디언 부족과의 전투에서 선봉에 섰던 게 바로 용기병이었음. 유럽의 전장 환경에 맞춰진, 기존의 유럽식 용기병 운용은 유럽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미 서부에서는 하등 쓸모없고 비효율의 극치를 달리는, 시대착오적 구식 전술에 지나지 않게 되어버렸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음.

다들 알다시피, 미 서부의 대부분은 끝없이 펼쳐진 무지막지하게 광활한 대평원과 척박한 사막, 험준한 협곡 등이 공존하는 지형으로, 유럽과는 그 전투 환경 자체가 완전히 달랐음. 다시 말해, 이런 데에서 용기병 시절에 하던 대로 말에서 내려서, 병신같이 발발발 뛰어다니며 무지성으로 싸웠다간, 떼몰살당하기 딱 좋았음.


더구나 아메리카 원주민(이하 '인디언')들은 태생부터가 기마민족으로서, 기습적이고, 신속하면서도, 유연한 집단 기동전술(機動戰術), 속칭 게릴라전에 도가 튼 달인들이었음. 당시 인디언 기마전사들은 동시기 유럽의 그 어떤 정통 기병보다도 뛰어난 기동력을 자랑했는데, 그래서 서부 침략 초기에 느리고 머저리 같은 전술을 답습하던 미 육군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출귀몰한 인디언 기마전사들에게 그야말로 맥도 못 추고 속수무책으로 당했음. 이를 쉽게 말해서, 과거 유럽 정규군을 기동력으로 압도해 일방적으로 학살하고 다니던 몽골 기마병을 떠올리면 될 듯함.

이때 영혼까지 털린 경험을 통해 미 육군이 저 괴물들과 맞붙어 살아남으려면, 그런 인디언 기마전사보다도 더 빠르고, 더 강력한 기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고, 그래서 정식으로 미 기병대가 창설된 것이며, 기존의 말을 타고 '이동하는' 기동보병이 아니라, 말을 타고 '싸우는' 기병의 형태로 본격적이고 비약적으로 강화되게 된 것임. 말인즉 단순히 '말 타고 싸우는 병사' 정도가 아니라, 당시 미 서부의 개막장 난전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도로 특화시켜 양성한 살육 병기들인 셈이라 할 수 있겠음.





시간이 더 흘러, 미국이 북부와 남부로 분열되어 지들끼리 박터지게 싸우는 내전, 즉 '미국 남북전쟁'(1861~1865) 때에 이르면, 이렇게 고도로 강화된 미 기병대가 북군(연방군), 남군(연합군) 가리지 않고 마상 돌격은 기본이고, 백병전, 습격전, 유격전 등등 다방면으로, 그것도 군단 단위(Cavalry Corps)로 진짜 미친듯이 굴려지면서 경험치를 어마어마하게 쌓게 되었고, 그렇게 전쟁 말기쯤 되자 이들은 문자 그대로 전장의 꽃이자 궁극의 살육병기로 거듭나기에 이름. 얘네가 '미 육군 최정예'라는 수식어를 비롯하여, 상기한 '구세군', '구원투수' 등의 관용적 표현들을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한 시기도 바로 이때쯤임.

더 나아가 남북전쟁이 종식되자, 집안싸움을 수습한 미국 정부는 이전보다 더욱 공격적으로 대외 팽창을 추진하였고, 그 일환으로 서부 개척에 재차 박차를 가하면서, 그 개척에 방해되는 인디언들을 대상으로 이전보다 훨씬 더 잔혹하고 광범위한 살육전을 벌이는데, 이게 바로 '미국-인디언 전쟁'임. 자연히 남북전쟁에서 생존한 기병대 출신 베테랑 군인들이 서부 개척지로 파견가서 인디언 전쟁을 수행하게 되는데, 이때 이들이 국가의 명을 받들어 인디언을 이 땅위에서 완전히 척살, 섬멸하는, 이른바 '인종 청소부' 역할을 수행하면서, 인제 미 기병대는 단순한 최정예 전투 병력을 넘어, 아예 씨를 말려버리는 '인종 대량학살 기동대'로 악명을 떨치며,(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1890년경 제7기병연대가 주동했던 '운디드니 학살 사건',) 민중들에게 경외와 공포의 대상이 됨.


이 당시 인디언들에게 있어 미 기병대는 흡사 묵시록의 4인 기수에 등장하는 페일 라이더(Pale Rider) 그 자체였음. 아무튼 해당 전쟁에서 인디언들은 '말 타고 다니는 사신' 그 자체나 다름없는 극강의 살인기계 집단인 미 기병대에게 죄다 학살당해 부족 단위로 쓸려나가고, 오래 지나지 않아 서부는 완전히 미국의 지배하에 놓임.




여담으로 <레드 데드 리뎀션> 시리즈에 등장하는 가장 악명높은 대무법자 캐릭터 중 하나인 '빌 윌리엄슨'이 바로 이러한 미 기병대의 산증인이며, 상기한 인디언 전쟁에 참전했던 퇴역군인 출신임. 상기했듯이, 남북전쟁~인디언 전쟁을 모두 거친 미 기병대는 전장을 지배하던 당대 최강, 최흉의 인간병기들로, 빌 윌리엄슨이 전직 기병대 출신의 참전용사 겸 생존자라는 캐릭터 설정이 의미하는 바는 곧 단순히 '군대 다녀왔다' 수준이 아니라, 그 시대에서 가장 파괴적이고 치열한 전투를 치른 부대 출신이면서, 그 부대에서 가장 치명적인 살인 기술을 극한까지 연마한, "인간의 탈을 쓴 야수"라는 뜻임.

게다가 남북전쟁이 정규군 대 정규군의 대결이라면, 빌이 참전한 인디언 전쟁은 게릴라군 대 정규군의 대결로서, 해당 전쟁을 현대전으로 비유하자면 베트남 전쟁쯤 되겠음. 다시 말해, 저런 처절한 생지옥 같은 전장에서 살아남았다는 건, 그냥 잘 싸우는 군인 정도가 아니라, 피와 살육 속에서 기어나온 악마임.

말인즉 빌 윌리엄슨은 그 피로 물든 전쟁의 유산이며, 따라서 해당 캐릭터 설정을 두고 그냥 "아, 군대 갔다 왔나 보네?" 이 수준으로 넘기면 오산임. 결론적으로 빌 윌리엄슨이 미 서부 뉴 오스틴 지역을 장악한 당대 최강의 무법자 중 하나이자, 본 세계관 전체를 통틀어 열 손가락 안에 손꼽히는 거물급 무법자인 이유는 보다시피 너무나 명확함.

끝으로 본작의 배경이 되는 1899~1911년은 기병대가 사라지기 직전의 시대임. 즉 인디언들이 정복되고, 미국의 서부 개척이 사실상 끝나가는 황혼기로, 열차와 자동차로 대표되는 근대화의 시류 속에서 미국 정부는 더 이상 구시대의 유물인 기병대를 운용할 필요가 없어짐. 자연히 기병대 출신 군인들은 '불필요한 존재'가 되어버림. 그 결과, 살아남은 자들은 범죄자로 전락하게 됨. 이러한 맥락에서 국가가 만들어낸 살인기계이자, 전장의 유령 그 자체인 빌 윌리엄슨도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무법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이라 이해될 수 있겠음.

이번 시간에 내가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임. 쓰다 보니까, 본작의 주인공이자 공인된 세계관 최강자 '아서 모건'의 그늘에 가려져 팬덤에서 매번 좆밥 취급 받는 빌을 변호하기 위한 편이 되어버렸네.

사실 빌은 1편까지만 해도, 서부 제일의 무법자 황제라는 설정치고는 인게임상의 모습이 그 거창한 설정에 못 따라가는 느낌이었는데, 과거 시점을 다루는 2편에서의 행적과 전직 기병대 + 미국-인디언 전쟁 참전용사 출신이었다는 설정이 추가로 붙으면서 그 위상이 진짜 엄청나게 떡상한 경우임. 아무튼 다들 재밌게 읽었다면 글쓴 입장에서 기쁘겠음. 그럼 다음 시간애 또 재밌는 주제로 찾아오도록 할게. 또 보자 게이들아!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dr2&no=375241
<진지빨고 쓰는 레데리 시리즈>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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