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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숙려캠프' 출연 강지용, 22일 사망 충격
- 관련게시물 : 이혼숙려캠프 축구선수 강지용 부부https://v.daum.net/v/20250423095805621 '이혼숙려캠프' 출연 강지용, 22일 사망 충격…JTBC [마이데일리 = 김하영 기자] JTBC 예능 '이혼숙려캠프'에 출연했던 전 축구선수 강지용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35세. 복수에 관계자에 따르면 강지용은 지난 22일 세상을 떠났다. 구체적인 사망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고인의 사망 소식은 동료이자 전 축구선수 구본상을 통해 전해졌으며, 빈소는 충남 천안 동남구 순천향대학교 천안병원 장례식장에 마v.daum.net'이혼숙려캠프' 출연 강지용, 22일 사망 충격…JTBC "향후 방향 논의중"김하영 기자2025. 4. 23. 09:58번역 설정글씨크기 조절하기인쇄하기전 축구선수 강지용 / JTBC 예능 '이혼숙려캠프'- 이혼숙려캠프' 출연 전 축구선수 강지용, 22일 사망…상주는 아내·3살 이혼숙려캠프'에 출연했던 전 축구선수 강지용이 사망했다.강지용은 22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37세. 빈소는 순천향 천안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상주에는 아내 이다은 씨와 3살 딸이 이름을 올렸다.강지용은 지난 2009년 K리그 드래프트에 참가해 포항 스틸러스에 5순위로 지명받으면서 프로축구선수로 데뷔했다. 이후 부산 아이파크, 부천 FC 1995, 강원 FC, 인천 유나이티드 FC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2022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은퇴 후인 지난 2월에는 JTBC '이혼숙려캠프'에 아내와 함께 출연했다. 방송에 출연한 두 사람은 깊은 갈등의 골을 드러내 안타까움을 안긴 바 있다.한편 고인의 발인은 오는 25일 오전 6시 30분, 장지는 천안추모공원이다.- 前축구선수 강지용 사망… ‘이혼숙려캠프’ 내부 논의 중 [종합]사진|JTBC 전 축구선수 강지용이 사망했다. 복수 관계자에 따르면 강지용은 22일 세상을 떠났다. 구체적인 사망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빈소는 충남 천안 동남구 순천향대학교 천안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유족은 조문객을 맞고 있다. 발인은 25일 오전 6시 30분이다. 장지는 천안추모공원이다. 한양대학교 출신으로 1학년을 마친 후 2009년 K리그 드래프트에 참가해 포항 스틸러스에 5순위로 지명받으나 많은 기회는 없었다. 이후 2012년 1월 부산 아이파크 이적했고 다시 2014년 부천 FC 1995로 입단했다. 부천 FC 1995에서는 나름 큰 활약을 보였다. 2014년 30경기 5득점이라는 기록을 얻었다. 2015년에는 부천 주장으로 임명되어 선수단을 이끌며 34경기를 뛰었다. 주장으로 전 경기에 출전하며 경기력뿐만 아니라 선수단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다. 부천 선수 중 K리그 경기에서 뛰어난 경기력과 경기장 안팎에서의 팀 공헌도가 높은 선수에게 분기별로 수여하는 상인 ‘페어차일드 페어플레이상’의 첫 번째 수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2016년에도 주장으로 팀을 이끌며 38경기 1골 1도움을 기록했다. 특히 2016 시즌 36라운드 경남 FC와의 홈경기에서 프로통산 100경기 출전을 기록했다. 이후 2017년 강원 FC로 이적해 11라운드 대구전에서는 득점을 터트려 데뷔 8년 만에 기록한 1부 리그 득점으로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2018년으로 넘어와서 고향 구단인 인천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했다. 하지만 인천 유나이티드 FC와의 인연도 오래가지 않았다. 2019년 구단을 떠났다. 이후 K3리그를 전전하다 2022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그리고 지난 2월 JTBC 예능프로그램 ‘이혼숙려캠프’로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출연 이유는 프로그램 포맷에 맞게 아내와의 부부 갈등이다. 강지용 부부는 여러 갈등으로 이혼 위기에 있었지만,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갈등 해소 가능성이 보인 부부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강지용 부고 소식이 전해지면서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JTBC 측은 현재 ‘이혼숙려캠프’ 강지용 부부 편과 관련해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다. 또 향후 방송 방향에 대해서도 검토하고 있다. 홍세영 동아닷컴 기자 projecthong@donga.com - 이혼숙려캠프 나온 축구선수 심리상담 장면....jpgㄷㄷ... - 이혼숙려캠프 출연 축구선수...사망 ㄹㅇ...jpg축구부부 남편 사망했다고함 ㄹㅇ... 친형도 극단적인 선택으로 사망했었는데 안타깝네 ㄹㅇ...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작성자 : ㅇㅇ고정닉
오팔육들은 대학도 날로 쳐먹었죠
읽어보면 알겠지만 지금 학력.저하 운운하고 대학 나왔다며 꼬장부리는 좆팔육 대다수는 저런 부류라고 보면 되죠 (사실 임종석은 높은 4등급보다 소폭 높은 "낮3등급"이긴 했음. 거기서 거기다만) 특히나 성한 잡과, 중경외시, 건동홍은 지금에나 명문대지 예전 쌍팔년도땐 거의 무슨 지잡대 수준이였음. 거의 지금 4등급 대학이 받는 취급이랑 비슷하다고 보면 되죠 서강대는 그나마 좀 알아주는 대학이였음 그래봐야 지금으로 치면 3등급 난이도긴 했다만 당장 메가 창립자 손주은부터 당시 건국.대는 "어디 가서 말도 못할 정도의 대학"이라고 말할 정도임. 참고로 당시 건대, 성대 잡과 점수대는 240점대였죠 특히 중앙대같은 경우 지금은 명문대인데 당시엔 진짜 개잡대 취급받았다. 당시 홍대는 뭐 돈만 주면 간다는 말도 있었고 아예 삼국대(건국 동국 단국)란 말이 돌아다녔죠 사실 성대같은 경우 법대, 상경계열, 행정같은 경우 잡대까진 아니였고 불어과, 그리고 한양대 국문과가 개잡대 취급을 받았는데 중요한건 당시는 대학만 진학해도 엘리트 취급이라 저런데 나오고 학점 2점대로 박아도 대기업 골라갔단거죠. 아무런 스펙 없이 저렇게 꿀 쳐빤 새끼들이 디시같은데 기어 와서 학력.저하니 분탕치고 다니는거죠. 위에 표 감안해서 240~250점대(당시 건대, 성균관, 한양대, 중경외시 등)는 지금으로 치면 4등급(평백 76~60) 난이도에 대응하는데 지금 이 수준이면 한서삼, 인가경, 충북/전북같은 애매한 수도권 대학이나 지거국밖에 못감 얼마나 날로 쳐먹었는지 알겠죠? 참고로 그럼 서연고는 어땠냐 물어보면, 서연고 높았던건 사실인데 지금에 비해 들어가는 난이도보다 낮고 점수를 등급으로 변환했을때도 지금보다 낮음. 당시 연고대 상경계열, 법대가 270점대 후반인데 지금으로 환산하면 2등급 수준임. 고려대 철학과같은 명문 간판이여도 비주류과면 3등급, 농대같은 비주류 중에서도 비주류과면 4등급까지 떨어짐. 그리고 저때는 간판보다 과가 우선한 시대라 서울대 농대가 연고대 상경, 법대보다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음. 이와 별개로 다 아는 이야기지만 저때는 부산대, 경북대 주요과(주요과가 중요하다. 주요과가 서연고 아래란 거지 비주류 잡과는 그때도 낮았다.)가 서연고 다음 갔던 시기임. 그리고 지방 명문 사학이라는 동아대, 조선대, 영남대가 높게 쳐줬다고 하는데 사진 보면 알겠지만 동조영은 그때도 개지잡이였다. 지금이랑 들어가는 난이도는 별 차이 안남 참고로 당시 서울대 농대면 지금 이과 3등급 수준임 거의 250점대에 분포했음. 지금 2등급이면 최대가 중경외시임 저때가 지금보다 성적 좀 낮아도 더 높게 갔던거 맞죠. 사실 저땐 대학 간판보다 과를 더 많이 본 시기긴 한데 어쨌든 간판 먹는건 지금보다 훨씬 쉬웠던건 사실임 실제로 그때 간판 날로먹고 가짜 명문대생 되서 지식인인척 하는 틀딱들도 수두룩 한것도 사실임. 서연고는 예나 지금이나 씹 명문댄데 서울대 농대나 연고대 잡과가 입결이 ㅈㄴ 낮았음. 위에도 나와 있지만 연세대 신학과라던지. 그리고 표준점수누적도수 가져와서 지금이랑 단순 대조가 맞겠냐고 들먹이는 새끼들 있을까봐 한말인데 당시 대학 진학자 31.5% 중에서 13.8%가 전문대 진학자였고 얘네는 애초에 과목도 다른데다 만점 상한도 250점이라 4년제 진학자들(즉 전과목 다 응시한 얘들) 깔아주는 역할밖에 못했기에 얘네는 제외하고 볼 필요가 있음. 만점 상한도 다르면 사실상 다른 시험인데 포함시키면 당연히 상위퍼센트는 뻥튀기 되지 않겠음?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때 누백 계산식이 지금이랑 존나 달라서 그때 누백으로 따지는건 의미 좆도 없죠. 대략적으로 이렇게 보면 된다. 백분위가 당시 누적분포와 다르다고 지랄할 새끼 있을까봐 쓰는데 이미 위에도 말했지만 당시 누백계산식이 지금이랑 존나 달라서 그걸로 따지는건 의미없고 우측 백분위는 그냥 평백으로 보면 된다. 실제로 지금 입시 사이트에서도 백분위 자체를 점수로 간주하는데 이게 마치 당시 학력고사 시기의 과목 합산 점수와 유사한 방식임 즉 지금의 점수인 평백과 당시의 점수를 난이도에 맞게 대응한거라 보면 됨. 그러니 개거품 ㄴㄴ 그리고 손주은이 비전문가도 아니고 240점대인 건국대를 저렇게 평가하는데 왜 당대에 저런 취급을 받았겠냐 생각을 좀 해봐라 이게 4등급 취급이 아니면 뭐겠음 참고로 당시에 배치표 (1986년 12월) 보면 204점까지 나와있는데 그 이하는 지금으로 보면 전문대, 그 수준인 수준미달 대학들이라 기재조차 안한거임. 우리가 6등급(백분위로는 40%이하) 이하로는 지잡 4년제도 못가서 전문대 넣는거랑 똑같은거죠 물론 지금 위에 인설대학들 간 얘들은 진짜 공부 잘한얘들임 걔넨 ㄹㅇ 리스펙 해야함. 쌍팔년도 즉 1980년대 날로 인설대학 쳐먹고 현세대가 올린 입결에 편승해서 꼬장부리는 좆팔육틀딱새끼들이 문제란거 오해는 ㄴㄴ
작성자 : 해갤러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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