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 신이 있어 첫수부터 마지막까지 최선의 수만 둔다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매수마다 하나, 많아야 2개일 겁니다.

바둑은 흑과 백이 교대로 착수하는 게임이고 상대방의 응수에 따라 최선의 응수도 변합니다. 기풍에 따라 선택을 달리 할 수는 있겠지만

분명 가장 좋은 수는 하나일 겁니다. 그렇다면 바둑의 정점에 가까워질수록 기풍이라는 건 무의미해지고 바둑은 오로지 경우의 수에 따라

예정된 수순으로 진행되는 수읽기 게임이 됩니다.

물론 지금 프로바둑이 신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건 아니지만 분명 현대바둑은 과거로부터의 수많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간의 능력 안에서는

상당한 경지에 올라 있습니다. 그 결과 과거처럼 독특하게 자신만의 기풍을 가진 기사들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같은 아마추어도 그렇습니다. 실리를 좋아해도 상대가 극단적으로 실리를 파면 세력바둑을 두게 됩니다.(이건 극단적인 예지만 상대방의

응수에 따라 최선의 수는 분명 한정되어 있습니다.) 다케미야라고 우주류만 둔 거 아니고 고바야시라고 지하철 바둑만 둔 건 아닙니다.

박정환 9단은 분명 자신의 스타일이 있습니다. 그게 과거처럼 뚜렷한 기풍으로 와 닫지는 않지만 그만의 바둑색깔은 분명하게 느껴집니다.

분명 수십년 후의 프로기사들은 박정환보다 더욱 더 무색무취의 바둑을 둘 겁니다. 실력이 늘어갈수록 이건 당연한 건데 이상하게 바둑팬들은

과거의 환상에 젖어 계시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