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명인>이라는 소설을 읽어 보면,

바둑으로 일가를 이룩한 슈사이 명인의 기풍을 논하는 장면이 있더군요.

슈사이 명인의 기풍을 입에 담는 것 자체가 명인의 이름을 훼손하는 경망스런 짓이며,

하물며 입신의 경지에 올라 일가를 이룬 기사들의 기풍에 대해

가히 평범한 사람들은 범접하기조차 힘들 고수의 경지를 몇마디로 말로 일축하는 것에 대해서

소설가는 고민하며 쓰기를 주저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것은 바둑이 갖는 냉혹한 승부의 양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서

슈사이 명인은 기타니 미노루 9단과은 은퇴 바둑에서 결국 패퇴합니다. 정선 5집 반의 패배.

흔히, 일본의 바둑은 예도의 차원에서 모양을 중시하고 미학적 완성도가 높은 바둑을 추구합니다.

한국은 실전적이며, 전투적이고, 승부에 있어 물러섬이 없으며, 모양에 구애 받지 않는 실용적인 

기풍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중국은 바둑의 기원을 간직한 나라답게 스포츠의 양상으로 대중에게 널리 보급되어 있습니다. 

동양 3국의 관전기를 살펴보더라도 

일본은 고수에 대한 깍듯한 예우와 전통에 입각한 한 수의 미학적 철학적 깊이에 대해

감탄을 표출하며, 사무라이에 대한 비유를 통해 승부의 호흡을 세밀하게 묘사합니다.

한국은 실용적인 측면에 입각해서 행마의 옳고 그름, 묘수의 실제적인 가치판단과 전투의 맥을 

상세하게 집어가며, 승부의 요처를 정확하게 전달하려 합니다.

중국의 관전기들은 그 수사나 화법에 있어 무협지나 삼국지를 읽는 것처럼 화려하고 기이하며, 

그 자체로 흥미를 불러옵니다. 기세가 요동치는 장면에서는 용과 호랑이의 싸움이 난무하고, 

승패의 갈림길에 이르러서는 비장한 멋을 뽐내며, 승자에게는 강호를 평정한 영웅의 칭호를

헌사하는 것에 관대합니다.

요즘들어, 바둑의 예와 도의 차원에서 승부사의 혈투로 그리고 스포츠의 일환으로 여겨지는 

까닭에 이기는 것에 치중하는 바둑이 범람하고 있지만, 때로는 일본 바둑의 미학적인 깊이와

한국 바둑의 승부 근성, 중국 바둑의 무수한 영웅호걸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바둑의 재미를 더해 주는 것 같습니다.

승부를 초월한 바둑 기사들의 소망은 언제나 다만, 한 가지뿐이라고 합니다.

\'천하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기보를 남기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