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도라는 단어를 어떻게 정의할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부분은 기승전결과 주제의 일관성이다.

나는 주제가 중간에 바뀌는 작품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드래곤볼이나 헌터헌터같은 만화가 아무리 상업적으로 잘팔렸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이들은 초반부와 후반부가 같은 만화로 보기가 어렵다. 드래곤볼은 외계인들이 나온 이후로 다른 만화가 되고 헌터헌터는 넨이 나온 이후로 다른 만화가 된다. 이들은 인기를 위해 초기의 작품성을 바꾼 예시라 하겠다.

주간만화는 특히 인기에 좌우되기 쉽다. 독자들의 반응을 빠르게 캐치해서 더 흥미롭게 전개한다 말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독자의 반응에 휘둘리기 쉽다는 측면도 존재한다. 만화가 책으로 출판되고 긴 호흡으로 읽게 되면 허술한 전개와 누더기 같은 스토리에 실망하게 되는 것이다.

+큰 인기를 끈 잡지의 간판만화들은 거기 딸린 객식구가 많아 작가가 맘대로 연중을 시키지 못한다. 때문에 인기 만화들은 끝이 추한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기본 페이지 수가 많고 느린 호흡으로 진행되는 월간만화는 완결까지 기존의 주제와 초기의 스토리 계획을 그대로 유지한채로 연재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만화가들이 부업처럼 연재하는 월간만화 특성상 완결을 내지 못하고 연중되는 경우가 많지만, 장기연재 된 월간만화는 느낌이 변하는 경우가 드물다.

원래의 색을 잘 유지한 채로 완결까지 간 월간만화들이 있다. 2010년대엔 스피릿 서클이 있었고, 2020년대엔 던전밥이 있다. 나는 이런 만화들을 좋아한다. 굳이 월간만화가 아니라도 작품 시작부터 정교하게 계획되어 초반부터 완결까지 한결같은 느낌으로 전개되는 작품에 높은 레도링 점수를 부여한다.

던전밥은 백여화 가까이 되는 월간만화다. 이세계 먹방물이라는 요상한 장르를 개척한 선구자이기도 하다. 권수로는 총 14권이 된다. 초반부는 베테랑 모험가인 라이오스 파티가 컨디션 난조로 인해 드래곤에게 패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던전 안에서 죽은 사람에겐 부활 마법이 통하지만, 육체와 연결이 끊어지기 전이라는 한계가 있다. 그들은 드래곤에게 잡아먹힌 여동생 파린을 부활시키기 위해 다시 미궁 최심부로 향한다.

++이 내레이션은 반복적으로 나온다.

작품의 분위기가 바뀌는건 애니메이션 2쿨 분량에서부터이다. 라이오스 파티의 목표는 여기서부터 크게 바뀐다. 여동생을 살린다는 소극적 목표에서 작품의 세계관과 연결되는 거대한 목표로 스토리가 확장된다. 소시민처럼 보이던 주인공 라이오스가 드넓은 던전밥 세계관 안에서도 가장 핵심에 있으며, 그의 모험이 사실 세계의 명운을 짊어진 것이라는 사실이 '파린의 부활'이라는 초기의 목표에서부터 매우 설득력있고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애니메이션 1쿨은 단순한 먹방물에 가깝다. 세계관과 스토리를 시청자에게 촌스럽게 퍼먹이는 대신, 등장인물들의 매력을 보여주고 이후의 스토리 전개에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전채 부분이다. 아직 던전밥은 메인과 후식이 남아있다. 개인적으로 식후주까지 나오길 바라지만, 작가 소식은 팬사인회 뿐이다.

작품에서는 한결같이 '먹는다'라는 행위로 내용을 전개한다. 이것이 어떻게 파린을 구하고 세계를 구하는 것으로 이어지는가, 그 부분이 바로 이 작품의 스토리를 특별하게 해준다. 라이오스는 한결같이 먹는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 필요한건 좆되는 마법이나 검술이 아니다. 먹는다는 주제로 이토록 변주를 기해가며 14권짜리 장편만화 스토리를 구성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정작 작가 본인은 이걸 그리면서 먹고싶단 생각은 별로 해본적 없다고 한다.

아쉬운 것은 내용의 무게가 바뀌는만큼 애니메이션의 분위기도 바뀌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특히 오프닝을 1쿨의 후와후와한 노래에서 2쿨에서 다소 어두운 노래로 교체했다면 좋은 팬서비스가 되었을 것 같다. 진격의 거인이 좋은 예시일 것 같다. 진격의 거인은 오프닝만으로 유튜브에 리액션 비디오를 양산해내지 않았나. 던전밥은 넷플릭스 독점 애니메이션이다. 남녀노소가 함께 볼 수 있는 가족적인 방향에 집중하다보면 정작 오타쿠 팬들을 실망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파린과 마르실의 목욕씬은 또 의미불명에 가까웠다. 오타쿠들을 열광시키고 싶으면 파린과 마르실 젖보똥이나 까기 보다는, 좆되는 연출로 승부를 보면 좋겠다.

결론적으로 던전밥, 훌륭한 작품이다. 애니메이션으로 봐도 좋고 만화로 봐도 좋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