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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 겨울의 습원호 탑승기
새벽의 눈내리는 삿포로 거리를 걸어 삿포로역으로 향함 주변 편의점에서 대충 먹을 걸 사고 쿠시로역으로 가는 특급 오오조라를 탐 삿포로 인근은 거세게 눈이 내렸지만 조금 더 나아가니 다행히 눈은 좀 그침 그리고 바다가 빵 트여보이는 구간도 달려서 너무 좋았음 특급 오오조라의 틸팅 큐슈의 소닉처럼 어어 이거 틸팅하는구나 하고 알아챌정도로 기울지는 않지만 카메라를 꺼내들고 수평 기능을 쓰고 있으면 미세하게 흔들거리는 걸 카메라를 통해서 알 수 있음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일단 무지막지하게 편하게 썼음 그린샤가 따로 없지 무사히 지연 없이 도착했지만 내리고 환승 여유시간이 한 10분밖에 없었는데 도시락을 뭘 먹을지 고르다가 시간이 얼마 안 남음 황급하게 이미 들어와있는 겨울의 습원호에 탑승 여기가 내자리였는데 앰창 씨발 주변 3명 다 짱깨에 이 호차 한 80%가 짱깨 에키넷 내국인 사이트에서만 예매 가능해서 나도 좀 버벅거렸던걸 대체 어떻게 이렇게 많이 타고 오는건지...뭐 여행사가 딸린건지 누가 틱톡에 예매하는법을 설명해놓은건지 씨발 하여간 중국인 존~~~나 많음 하여튼 이 3명이 하염없이 말을 해대는 바람에 솔직히 상행 열차는 제대로 즐기지 못함 그래서 일단 밥부터 먹음 만화 에키벤에도 나온적 있는 정어리 초밥 에키벤 정어리초밥 위에 쌈무가 올라가 있어서 의외로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맛임 정어리 절임회는 마치 고등어구이같은 맛이 나서 신기했음 호차 뒤에는 석탄 스토브가 있었으나 상행에선 딱히 아무도 사용하진 않음 쿠시로 습원을 지나가면서 이날씨에 낚시하는 대단한 일본인 에조사슴이 기차 밖을 정말 많이 지나감 기차랑 나란히 달리는 애들도 있고 가만히 쳐다보는 애들도 있고 하여튼 많음 단쵸? 라고 부르던데 두루미 종류인가? 멈추지 말라고... 밖에 보이는 애들을 기반으로 디자인한건지 사슴과 단쵸가 그려진 시트 "나카마" 들도 잔뜩 볼 수 있었음 드넓은 쿠시로 습원을 감상하며 사색 좀 하고싶은데 짱깨새끼들이 너무 시끄럽게 떠들어서 도저히 그럴수 없었다... 하여튼 시베차역에 도착하고 아까 황급하게 타느라 제대로 못봤던 습원호의 자태를 감상함 증기기관차에는 남자의 가슴을 불타게 하는 요소가 있다... 여기서 존나 놀란게 그래도 정차시간이 2시간인가 되는데 중국인들은 역에서 떠나지 않고 그냥 죽치고 앉아있음;; 아니씨발ㅋㅋ 니들 관광하러 온 거 아니야??? 본인은 아이젠 장착하고 구글지도에서 미리 찾아놓은 당일치기 온천까지 30분동안 걸어감 삿포로랑 다르게 깡촌인 시베챠는 제설이 그냥 안 되어있음 아이젠 필수 무사히 도착한 당일치기 온천 Hotel Terreno Kisen テレーノ 시베차에 있는 온천 중 겨울의습원호가 멈추는 시간동안 입욕할 수 있는 곳이 여기밖에 없었음 중국인들은 여기까지 안 와서 현지 할배들만 입욕하는 곳인데 의외로 물이 엄청나게 좋고(유황냄새 팍팍, 미끌미끌) 노천탕도 있는데다가 가격도 쌈 이번 여행에 조잔케이도 다녀왔지만 거기 온천보다 더 좋았음 좋은 점수를 주고 싶은 온천임 입욕 후 포병 PTSD를 일으키는 봉을 지나서 제설이 덜 된 길을 따라 시베챠역으로 돌아감 전차대도 없고 뒤에 DL도 안달고 왔길래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했는데 심플하게 화차만 맨 꽁무늬에 붙여서 되돌아가는 방식이었음 음~ 멋있어 중국인들이 귀신같이 육교 위 꿀 포지션을 잡고있어서 이렇게밖에 못 찍음 하행에서는 스토브 옆자리 역에 있던 안테나샵에서 이것저것 사고 타자마자 카페객차에 줄 서서 스티커, 엽서, 맥주, 사이다도 삼 안테나샵에서 팔고있던 에조 사슴 뿔ㅋㅋ 뭐에 써먹냐 싶긴 한데 고작 1000엔이라 일단 사고 봄ㅋㅋ 하행선에서는 사람들이 스토브를 본격적으로 사용함 카페객차에서 무려 1200엔인가에 오징어 파는데 그거 사서 구워먹기도 하고 내 옆자리 누나는 무려 마시멜로 데워서 스모어를 해먹더라 참신했음 하행에서도 보이는 단쵸 하행은 다행히 3사람 모두 일본인 당첨이라 조용~~ 하게 잘 타고 바깥구경도 하면서 만족하며 내려옴 상행이랑은 비교가 안되는 쾌적한 경험이었음 앞자리 일본인 노인이 해상자7위대 모자 쓰고있길래 "자8위대 출신이시군요!! 저도 군에 오래있었답니다" 하고 말 걸었는데 "어;; 나 자9위대 출신 아니야 그냥 응원하려고 쓰는거야..." 라고 좀 멋쩍어하시길래 서로 무안해짐 증기를 뿜으며 달리는 겨울의 습원호 습원을 통과하는 겨울의 습원호 하여튼 쿠시로 역으로 귀환 뒷태도 제법 미인이라서 별로 위화감은 없음 그래도 역시 정면이 최고지~ 레슬링과 가면라이더를 굉장히 사랑하시는 듯한 쿠시로역 역내 매장 쿠시로에서 삿포로까지 또다시 특급 오오조라를 타고 갔는데 뒷자리에 이런 처리가 된 좌석이 있었음...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두렵다... 눈이 내리는 삿포로역으로 무사히 돌아와 라면 야마오카야를 먹고 이날은 Finish
작성자 : 기신고래(진)고정닉
음모와 배신, 의심과 의혹, 협잡과 암투
USS 컨스텔레이션 함장, 제2항모전단 지휘관 경력을 이어 1972년 8월 미 해군 참모차장으로 임명된 윌리엄 하우저 중장은 미 해군의 최선임 조종사로서 해군 항공대의 대표격이었다. 그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켄트 리 중장은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 전투기 한 대를 격추하였으며 제46공격비행대대 지휘관과 제6항모비행단 지휘관, 그리고 USS 엔터프라이즈 함장직을 역임하였다.1960년대 후반 USS 엔터프라이즈의 함장이었던 리는 정비병들이 12시간 교대근무로도 업무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함재기가 1시간 비행하면 40~50시간을 정비에 할애해야 하는 상황에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대령이었던 리는 소장으로 진급하여 항모전단 지휘관이 되는 대신 해군항공체계사령부(NAVAIR) 지휘관이 되어 해군이 운용할 항공기와 거기에 탑재될 무기체계를 설계하고 제작하는 진로를 택했다.원래 하우저와 리의 관계는 원활했지만, F-14에 대한 견해 차이로 두 제독은 서로 대립하게 되었다. 당시 해군 장관이었던 존 채피는 톰캣의 비용과 기술적인 문제에 대한 보고를 받고 나서 걱정되는 마음에 리와 민간 관계자들에게 조사를 요청했다. 채피에게 돌아온 대답은 문제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으로, 엔진은 추력이 모자라고 비행 중에 폭발하기도 했으며 도그파이팅 중 실속해버릴 위험도 있었다. 별로 중요한 내용은 아니지만, 리는 이 보고서를 빌미로 사무실로 쳐들어온 토마스 코놀리 제독에게 폭풍갈굼을 먹은 적이 있었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F-14가 "톰"캣으로 명명된 이유가 코놀리(그리고 토마스 무어)를 기리기 위해서였고, 코놀리 그 자신도 F-14의 열렬한 지지자였음을 유추할 수 있었을 것이다.초창기 F-14 프로그램에 참여했었고 톰캣이야말로 해군에 필요한 전투기라고 굳게 믿었던 하우저조차도 이런 문제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F-14를 버리거나 더 저렴하고 가벼운 전투기로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해결해서 써야만 한다고 여겼다.이 두 제독간 대립의 핵심은 항공모함을 위협하는 소련 전략폭격기인 Tu-22 백파이어를 둘러싼 의견 차이였다. 하우저는 F-14야말로 백파이어가 미사일을 쏘기도 전에 격추할 수 있는 유일한 전투기라고 주장했지만 리는 여러 대의 F/A-18로도 같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그렇지만 이 두 사람이 모든 면에서 대립한 건 아니었다. 1966년 하우저가 USS 컨스텔레이션의 함장이었을 때 항공모함에는 서로 역할이 다른 9종류의 함재기가 있었고, 이들은 각자 다른 예비 부품 및 정비 인력을 필요로 했다. 하우저는 이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가급적 적은 숫자의 항공기로 최대한 많은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리는 앞서 말한 것처럼 다목적 전투기의 열렬한 신봉자였다. 이 두 사람은 미래의 해군기들에 무엇이 필요할지에 대해서 대체로 동의하였고 동시에 F-14를 보완하거나 대체할 초소형 싸구려 전투기(예: F-5) 같은 건 안 된다는 점에서도 의견이 일치했다.F-14의 대안으로 제안된 것 중 하나는 1972년 첫 비행에 성공한 F-15 이글의 함재기형인 F-15N이었다. F-15는 F-14보다 비행성능이 월등하다는 점에서 주목받았지만 이미 크고 복잡하고 비싼데다가 공군기였기 때문에 항공모함에서 운용할 수 있게 개조할 필요가 있었고, 추가로 피닉스 운용능력을 부여하는 과정에서 무게가 상당히 늘어나서 톰캣보다 이점이 없을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그 외에 피닉스 운용 능력을 제거한 염가형인 F-14X도 고려되었지만 국방부 차관 윌리엄 클레멘츠는 그래봐야 F-14라는 이유로 거부했고, 리 제독의 요청에 따라 경전투기로도 경공격기로도 운용할 수 있는 다목적기인 VFAX(Naval Fighter Attack Experimental)를 도입하여 항모비행단에 배치되는 전술기들의 종류를 줄여보기 위한 연구도 진행하였다.1974년 5월, F-14X는 폐기되고 VFAX 개념안이 의회에 제출되었다. 의회에서는 VFAX 프로그램으로 새로운 항공기를 개발하는 방안은 거절하였고, 대신 미 공군 ACF(Air Combat Fighter) 프로그램에 제출된 경전투기인 YF-16과 YF-17 중 하나를 함재기로 만드는 NACF 프로그램에 대한 예산 지출을 승인하였다. YF-16을 개발한 제너럴 다이내믹스와 YF-17을 개발한 노스롭 모두 함재 전투기를 개발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두 회사는 각각 함재기 분야에 잔뼈가 굵은 링-템코-보우트(LTV), 맥도넬 더글러스와 손을 잡고 두 시제기를 기반으로 함재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ACF 프로그램에서는 각각 제너럴 다이내믹스와 노스롭, NACF 프로그램에서는 LTV와 맥도넬 더글러스가 주 계약 업체가 되는 구도였다.ACF 프로그램의 승자는 YF-16이었지만, YF-16의 함재형인 보우트 V-1600/1601/1602는 함재기로서 결격사유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1975년 해군은 맥도넬 더글러스의 손을 들어줬다. A-7 콜세어 II 이래로 군용기 분야에서 이렇다할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었던 LTV에게 NACF 프로그램은 회사의 사활이 걸린 문제와도 다름없었기에, 해군이 맥도넬 더글러스를 승자로 선언한 지 겨우 일주일 뒤에 즉시 미 회계감사원(GAO)에 항의서를 제출했다. 이 말도 안되는 땡깡에 직면한 NAVAIR의 법률 고문인 하비 J. 윌콕스와 F/A-18 프로그램의 담당 변호사인 찰스 J. 맥마누스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다행스럽게도 이들에게는 해군 조종사 출신 변호사인 존 셰퍼드가 있었다. 당시 셰퍼드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윌콕스의 사무실을 방문했다가 즉석에서 고용되어 변호사들과 조종사 및 기술자들간의 연결고리 역할을 맡게 되었고, 그 덕분에 윌콕스는 함재기에 대해서 웬만한 항공 기술자들을 능가하는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합법적인) 로비를 통해 클레멘츠가 해군의 선택을 지지했던 것도 도움이 되었다.여느 법정 싸움들처럼 좀 치사한 꼼수도 동원되었는데, 바로 해군이 의회의 지시를 거스르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ACF 프로그램에서 선정된 F-16이 함재기로 개발되어야만 할 이유가 없었다는 프레임을 짜는 것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LTV의 항의서를 확인사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끝에, 1975년 10월 1일 GAO는 LTV의 항의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GAO가 명확하게 결론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해군의 결정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NACF 프로그램 자체가 다소 이례적인 절차로 진행된 탓에 대부분의 항공기 제조사들이 경쟁에 참여할 기회조차 없었기 때문인데, 특히 해군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던 그루먼이 이 점에 내심 불만을 품고 있었다. 물론 LTV와 다르게 공식적으로 항의하는 추태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CEO인 조셉 개빈은 1975년 9월 17일 미국 상원 국방위원회에서 F-18이 F-14보다 성능이 뒤떨어지면서도 더 비싼 체계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그는 아폴로 달 착륙선 프로그램을 주도하여 달 착륙선의 개발, 그리고 아폴로 13호의 무사귀환에 기여한 유능한 기술자였지만 결국엔 사람인 이상 소신에 따르기보다는 밥그릇을 지켜야만 하는 상황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NAVAIR 내에서도 F-18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있었다. 1973년 퇴역하기 전까지 NAVAIR 항공기 설계자들에게 가히 전설적인 존재였던 조지 스판겐버그는 공군용 경전투기를 개조해서 해군기로 만든다는 아이디어 자체를 바보짓으로 생각했고, F-18이 F-4와 A-7보다 성능이 떨어지면서도 비싸다고 평가했다.여기에서 조금 의외인 점은, F-14의 지지자였던 하우저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F/A-18이 F-14의 훌륭한 보완재가 될 것이라는 점을 담담하게 받아들여 해군의 선택을 옹호하였다는 것이다.자기들의 밥그릇이 뺏길 걸 우려해서 F/A-18에 반대하는 해군 조종사들도 많았다. 당시 해군의 주력 전투기였던 F-4와 F-14는 조종사와 레이더 관제 장교(RIO)가 탑승하는 복좌기였는데, F/A-18은 복좌형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단좌형이었기 때문에 F/A-18이 배치되면 그만큼 RIO들의 TO가 줄어드는 것은 뻔할 뻔자였다.A-6 조종사들도 F/A-18을 탐탁찮게 봤다. A-6 승무원 2명이서 할 일을 F/A-18 조종사 한 명이 할 수 있다는 것처럼 보이는 해군의 태도에 대한 불만, 그리고 A-6이 지상공격 임무보다 호넷의 연료 셔틀 역할을 더 많이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A-7 조종사들의 시선도 그다지 곱지 않았다. 이들은 한 사람이 최고의 전투기 조종사이면서 동시에 최고의 공격기 조종사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었고 또한 호넷이 과연 두 임무를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심했었다. 비행 학교를 갓 졸업한 사람들은 정밀 폭격을 위해 투자한 모든 노력이 새 전투기에 의해 수포로 돌아갈 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했고, 이러한 세대 차이는 F/A-18이 배치된 후로도 이어져서 어떤 테일후크 심포지엄에서 한 경험 많은 조종사가 호넷을 디스하자 분노한 젊은 조종사들이 그를 단상에서 끌어낸 에피소드도 있었을 정도이다.공교롭게도 F/A-18을 자신들에 대한 위협이라고 본 해군 내 파벌들이 조종한 기종들인 A-6과 F-14는 그루먼이, A-7은 LTV가 제작하는 기체들이었다. 노스롭과 맥도넬의 F/A-18을 묻어버리겠다는 일념으로 의기투합한 이들은 결과를 뒤집고 예산을 삭감하기 위해 더럽 고추 한 로비와 언론플레이를 일삼았다.그나마 노스롭은 캘리포니아에, 맥도넬 더글러스는 미주리에 공장이 있어서 텍사스에만 공장이 있는 제너럴 다이내믹스와 LTV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정치적인 이점이 있었다. 그래서 민주당원들이 일반적으로 국방비 지출을 그리 선호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표밭을 지키기 위해 공화당원들과 임시동맹을 맺고 이러한 시도를 저지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종국에는 노스롭과 맥도넬의 관계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원래 맥도넬 더글러스는 해군형 F/A-18을, 노스롭은 공군형 F-18L을 개발하여 판촉하는 것으로 합의가 되어 있었고 노스롭은 여기저기에 F-18L을 팔기 위해 열심히 뛰었다. 하지만 합동참모본부의 지원까지 받아가면서 이란에 F-18L을 판매하려는 시도는 백악관에서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1977년 2월 미 공군에 대당 380만~477만 달러라는 헐값, 그것도 고정가로 팔겠다는 제안을 하기에 이르렀지만 이미 F-15와 F-16을 가진 공군이 이에 응할 리가 없었다.F-18L이 팔리지 않는 이유는 너무나도 단순했다. 미 해군과 해병대라는 초대형 고객이 있었던 F/A-18과 다르게 F-18L은 미군에서 운용하지 않는 기종인데다가 심지어 완성된 시제기조차도 없어서 자칫 잘못하면 노스롭에 호구잡힐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몇 년 후에 등장하는 F-20보다도 불리한 조건이었으니 전투기 시장에서 자매인 F/A-18에 밀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지만, 노스롭은 맥도넬 더글러스가 해군과 결탁하여 F-18L을 희생시켜 F/A-18을 더 팔아먹으려고 한다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1979년 10월 26일, 노스롭은 맥도넬 더글러스를 상대로 사기, 경제적 강압, 불공정 경쟁, 산업 스파이, 반독점 위반 혐의에 대한 4억 달러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맥도넬 더글러스는 즉시 맞고소를 했고, 이에 따라 총 손해배상액은 23억 달러로 치솟았다. 해군 관료들이 노스롭과 맥도넬 더글러스의 CEO인 톰 존스와 샌디 맥도넬에게 합의를 종용하였지만 양측 모두 거부하여 6년간 지루한 법정 싸움이 이어졌다.마침내 1985년 4월 8일, 해군 장관 존 리먼이 두 회사에 정부에서 더 이상 소송비용을 대주지 않을 것이라고 통보하면서 극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맥도넬 더글러스는 노스롭에 5천만 달러를 지불하는 댓가로 F/A-18을 어디에서든 자유롭게 판매할 권리를 얻었다.출처: Hornet: The Inside Story of the F/A-18 (Orr Kelly 著)
작성자 : 어셈블리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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