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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당 패망사 - 회광반조
[시리즈] 민정당 패망 · 민정당 패망사 - 기원과 배경 · 민정당 패망사 - 만악의 근원, 대한민국의 수치 '이명박' · 민정당 패망사 - 박근혜, 선거의 여왕, 보수 파멸의 씨앗 · 민정당 패망사 - 배신의 정치 · 민정당 패망사 - 1차 멸망 총선이 끝난 다음 민정당계는 충격에 빠졌다. 무소속의원들이 모두 복당한다고 해도 110석이 안됐다. 안철수의 국민의당은 저때까진 민정당계라고 보기엔 좀 애매했다. 민주당은 높은 지지율을 가진 대통령과 압도적인 국회의석을 가지게 됐다. 법대로 한다면 개헌을 빼면 무슨 일이든 다 가능해졌다.시민들은 기대했다. 문정부 전반기 동안 민주당은 과반을 확보하지 못했다. 민평당과 정의당의 도움을 받아야만 겨우 과반을 넘겼고선진화법 무력화 패스트트렉에 올리려면 바른미래당의 협조까지 필요했다. 법사위를 가지고 있던 자유한국당은 임기 4년내내 누워서 모든 주요법안을 반대했다.국민들은 그런거 보기 싫어서 절대권력을 쥐어줬다. 자 한번 제대로 쓸어보자. 지금까지 막혀서 못한거 마음껏 해보라고 압도적인 의석을 몰아줬다하지만 국회의장으로 선출된 박병석이 분탕질을 치기 시작했다.모든 사안에 협치를 운운하며 시간을 끌거나 부결시켜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협치킹'이라는 멸칭이 붙었을 정도였다.겨우 가져왔던 법사위를 후반기엔 국힘에게 넘기라고 주장했던게 바로 박병석이었고소위 '검수완박'법 제정때도 의장이 직접 알맹이를 다 빼는 중제안을 내는 분탕질을 하면서 이 양반 원래 정당이 어디였는지 까먹었나? 싶을 정도였다박병석을 뛰어넘는 빌런도 있었다. 다들 싫어할 이낙연이다. 너무 짜증나서 자체 모자이크처리했다.사실 저때까지 이낙연은 민주당계 정권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대권후보였다. 엄청난 인기를 자랑했던 정권의 총리로서 호평을 받았었고당으로 돌아와 180석 압승을 이끈 사람으로 모두가 어차피 대통령은 이낙연이 되겠지? 라고 생각했다.그래서 당대표 선거에 나왔을 때, 어차피 1년뒤 사퇴해야할 신분이었지만 그래도 이낙연이니.. 라는 생각에 많은 표를 받고 당선됐고총리를 하던 경험이 있으니 개혁 정책을 잘 입법할거라 생각했었다.실제로 총선 이후 실시됐던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1강을 형성했다. MB정권시기 박근혜와 비견될 정도였다.하지만 이낙연의 민주당은 믿을수 없을 만큼 우왕좌왕했다. 추미애 이해찬 지도부 시기와 너무나도 비교됐었다.박병석의 분탕질이 있었다고 해도 국민들은 그 의석을 가지고 민정당계를 밀어버리라는 염원으로 표를 줬었다. 그러나 이낙연 지도부의 민주당은 그것보다 훨씬 사이즈가 작았던 20대 국회때 보다도 무력했다.민주당 지지층들은 무력한 이낙연에 지쳐 추진력이 강점인 이재명지사에게 슬슬 넘어가기 시작했다.결국 연말쯤 됐을땐 이미 민주당계 대권주자의 선두자리를 경기도지사 이재명에게 내줬다. 그러자 급해진 이낙연은 이명박근혜 사면이라는 급발진발언을 했다이낙연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은 문재인 정부의 국무총리였었다는 것이다. 전남도지사출신, 호남출신 이런건 곁가지였다그런데 이명박과 박근혜의 사면을 언급했다. 특히 이명박은 민주당, 친노-친문 지지자들의 불구대천의 원수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걸 자기입으로 언급했다이는 민주당 지지층의 역린을 건드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후 이낙연은 끝없는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반면 총선에서 대패한 민정당계는 김종인을 모셔왔다. 나름 한국정치계의 책사로 통해왔던 인물답게 일베와 틀튜브 정당이라는 시선을 떨쳐내고자광주 5.18 묘소를 찾아가 무릎을 꿇었다. 이낙연 지도부가 자멸하고 있을동안 세력을 재정비해갔다20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던 중요한 요소중 하나는 코로나 방역 성공이었다. 전세계가 한국의 코로나 방역을 칭찬했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가 길어져갔다. 사람들은 지쳐갔다. 자영업자들은 피폐해져갔다. 아무리 세계 기준에 비해 매우 선방하고 있다고 말해도 어쩔수 없었다.코로나 이후 전세계는 초 저금리 시대로 들어갔다. 세계 각국은 엄청난 자금을 시장에 풀었다. 락다운을 하고 있는 국민들을 먹여살리기 위해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그런데 시중에 푼 돈에 비해 물가가 오르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신기해 했다. 이 돈은 다 어디로 갔는가? 대부분 자산시장으로 갔다. 주가와 코인이 폭등했다 그리고 부동산 역시 폭등했다. 대한민국은 부동산 공화국이란 이름을 가지고있다. 전국민이 부동산 불패신화를 믿어왔다. 코로나로 인한 초저금리는 한국에 있는 많은 돈들을 부동산으로 빨아먹었다. 연일 상한가를 찍었다. 특히 서울의 집값이 미친듯이 올랐다.사람들은 정부를 탓했다. 대출을 풀어달라, 종부세를 폐지해달라며 더 투자를 자유롭게 해달라고 하는 한편, 집값을 잡아달라는 모순적인 요구를 했다.결국 사람들이 하고싶은말은 이거였다. 내가 살 집은 싸게 사고 싶은데 그 집은 많이 올라야한다. 그리고 이미 오른 집값은 좀 때려잡아달라이런 말도안되는 요구를 들어주는 것은 하나님이 와도 안됐을것이다. 언론들은 연일 정부를 공격했다. '벼락거지'라는 악의적인 용어를 만들어 투기 심리를 자극했다.물론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우왕좌왕했다. 그렇지만 팬데믹 초저금리 시절 왜 부동산 가격이 저렇게 오르는가?에 대한 대답은 어디에도 없었다진영논리에 빠져서 모든것을 다 정부 탓으로 돌렸다.부동산과 더불어 코로나 방역 정국도 언론은 연일 말을 바꿔가며 정부를 비판했다.초창기에는 왜 백신을 도입하지 않냐고 비판했다. 이스라엘은 벌써 맞고 있는데 우린 뭐하냐? 라고 비판했다. 이스라엘이 마루타를 자처했던 사실은 빼놓고 말이다아스트라제네카를 도입하자 이번에는 왜 미국산 화이자를 도입하지 않냐고 난리를 쳤다. 개중에는 정부가 중국산 백신을 도입하려 한다는 혐중선동까지 섞여있었다.화이자를 도입하고 주요국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접종을 완료해가자 이번엔 백신 음모론을 제기했다.양치기 소년도 저정도는 아니었다. 연일 계속되는 언론의 맹공격 속에 정부 지지율은 떨어져갔고 민정당계는 부활할 기회를 얻었다바로 민주당의 두 지자체장, 박원순과 오거돈이 성비위 문제 때문에 자리를 비우게 됐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재보궐이 찾아왔다.때마침 LH 사태가 터지고 높아진 부동산 가격 때문에 눈깔이 돌아갔던 국민들은 이번엔 민정당계, 즉 개명했던 국민의 힘에게 몰표를 던져줬다.민주당은 서울 모든 지역구에서 패배했다. 사실 40대에서 조차 반반밖에 못갔다. 부산은 더 볼것도 없었다크게 나타난 것은 20대 남자가 국힘계열에게 몰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계의 든든한 지지층이었던 여성계열이 무너졌다.그와중에 20대 여성의 15%는 민주당이 아닌 여성주의 정당에게 표를 던졌다. 온라인속에서나 이야기 나왔던 젠더논란이 정치권으로 본격적으로 올라왔다조중동은 여기서 꽤를 쓴다. 20대 남자표를 완전히 끌어올만한 전략, 젊은 민정당계 당대표를 밀어줘야 겠다는 전략이 섰고모든 언론은 전당대회에 출마한 이준석을 푸시했다. 그리고 이준석은 당선됐다언론은 이준석을 노골적으로 밀어줬다. 사실 지금도 그 지랄은 여전하다. 이준석이 따릉이를 타고 국회로 출근하는 기사를 도배했는데같은날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역사상 처음으로 G7 정상회담에 참여하고 있었다. 언론들은 G7참여보단 이준석의 쇼가 더 중요한 사건이랍시고 보도했다왜 이게 쇼냐고?국회의사당역은 그냥 국회 바로 코앞에 있기 때문이다. 반납시간을 생각하면 걸어가나 따릉이 타나 별 차이도 안난다저런 사정 다 알만한 사람들이 그러는 것을 보면 참 기가 찼다.이준석은 세대포위론이라는 계책을 선거필승론으로 내놓았다.민주당 지지층이 강한 4050을 고립시키고, 6070 노년층 몰표와 2030 남성들의 몰표를 받고 승리하겠다는 전략이다.여기서 2030 여성표는 정의당 등 여성주의 정당이 표를 갈라줄 것이라 이야기했다. 때마침 민주당이 성비위로 흔들리고 있을 때라 서울시장선거땐 저런구도가 나오기도 했었고 보수커뮤에선 필승법이라 주장했다.사실 여기서 큰 문제가 하나 있다. 2030 여성들을 전략투표도 할줄 모르는 병신 아메바로 보는 것이다. 본인이 주장하는데로 갈 경우 반작용으로 여성표가 몰릴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았다.
작성자 : Riceshower고정닉
싱글벙글 일본 천황 연호의 유래 (메이지~레이와)
일본은 19세기 말 메이지 천황 대에 들어서야 천황 1명이 1개의 연호를 쓰는 일세일원제(一世一元制)가 정립됐다 그 이전까지 시대의 예를 들면 메이지 천황의 아버지 고메이 천황 시대에는 고카, 가에이, 안세이, 만엔, 분큐, 겐지, 게이오 등 20년 동안 연호가 7개였고 서거한 천황을 부를 때는 별도의 시호로 불렀는데 일세일원제가 확립되기 이전 중국과 같았다고 보면 된다 일세일원제가 확립된 이후 천황들의 연호는 시호처럼 중국의 유교 경전 등에서 따왔다 메이지(明治, 명치, 1868~1912) 유교 경전 《주역》<설괘전> "성인은 남쪽을 향하여 앉아 천하를 듣고, 밝은 곳을 향하여 다스린다." 여기서 밝은(明)과 다스림(治)를 따옴 참고로 메이지 연호가 후보에 오른 건 무려 1428년이 처음이었으나 약 400년 간 10번을 탈락한 뒤 이때 처음 연호로 선정됐다 또한 메이지 천황은 즉위 1년 동안은 아버지 고메이 천황의 마지막 연호인 게이오(慶應, 경응)을 고치지 않았는데 게이오는 6세기 중국 양나라 소명태자가 편집한 시문집 《문선》의 구절에서 유래했다 "상서로운 구름이 응하여 밝게 빛나매, 황위가 목덕에게 하사되었다." 여기서 상서로운(慶)과 응하다(應)을 따온 것으로 위 구절에서 목덕은 한고조 유방이 세운 전한을 의미한다 다이쇼 (大正, 대정, 1912~1926) 《주역》<단전> 임괘 "바른 것으로 크게 통달하니 하늘의 도(道)구나." 《주역》<단전> 임축괘 "굳셈이 위에 있어 현명한 이를 숭상하며 강건하기만 한 것을 능히 그치게 하니 크게 바르다." 위 두 개 구절에서 대정大正을 따옴 다이쇼는 메이지보다 더 이전인 1331년에 후보에 처음 올랐고 4번 탈락한 뒤 5수 끝에 연호로 채택됐다 참고로 파시즘 정당인 대정익찬회의 대정(大政)은 한자가 다르며 이 대정은 임금의 정치라는 뜻이다 쇼와(昭和, 소화, 1926~1989) 유교 경전 《서경》<우서> 요전 "백성의 명백한 덕이 밝혀지고 모든 나라가 협동 화합한다." 밝히다(昭)와 화합(和) 자에서 따왔다 국민과 세계 평화를 천명한 연호인데 이 시기에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것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물론 일본 경제가 부활, 급성장하고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으로 떠올랐던 시기 역시 쇼와 시대니 해석하기 나름인 듯 (헤이세이 연호를 발표하는 오부치 게이조 내각관방장관.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그 오부치 총리가 맞다) 헤이세이 (平成, 평성, 1989~2019) 사마천의 역사서 《사기》<오제본기> 제순 "집안은 화목하고 밖은 안정되었다. (內平外成.)" 《서경》<대우모> "땅의 일이 평탄하면 하늘의 일이 이루어진다. (地平天成.)" 위 두 구절에서 평성平成을 따왔다 헤이세이 연호는 1865년 게이오로 연호를 바꿀 때 이미 한 번 후보에 오른 적이 있다 근데 《서경》의 해당 구절은 청나라의 학자들이 위서인 것으로 밝혀낸 적이 있어 논란이 됐는데 저 구절이 위조된 것이 기원전 전한 시기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저 구절이 유학 경전으로 인정된 사실까지 전부 부정당하진 않았으나 위서인 게 밝혀진 오늘날까지도 굳이 저 구절을 써야 하느냐는 논란이 있었던 편 아무튼 간에 헤이세이 연호는 채택되었고 30년 간 쓰인 뒤 아키히토 천황의 양위로 연호가 바뀌었다 (레이와 연호를 발표하는 스가 요시히데 내각관방장관. 잘 알듯이 훗날 총리가 된다.) 레이와 (令和, 영화, 2019~) 일본의 시문집 《만엽집(만요슈)》<매화의 노래> 32수 "초봄(初春) 영월(令月, 음력 2월을 뜻함)에 기운은 맑고 바람은 화평하다." 위 구절에서 영화令和를 따왔다 역대 최초로 중국의 고전이 아닌 일본의 고전에서 따온 연호라는 의의가 있으나, 사실 해당 구절이 중국의 고전에서 유래했다는 의혹이 있다 중국 후한의 장형이 지은 《귀전부》에는 "중춘영월(仲春令月, 중춘과 영월은 모두 2월을 뜻함)에 시절은 화평하고 기운은 맑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두 구절이 글자며 문장 구조며 너무 비슷하다는 것 귀전부가 실린 《문선》은 6세기 초, 《만엽집》은 8세기 초에 간행되었다 아무튼 간에 레이와 역시 연호로 채택되어 오늘날 일본의 연호로 쓰이고 있다
작성자 : 여우하이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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