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과 석박을 나온 내 친구들은 수학을 최고의 언어라 생각하며, 그 외의 것을 거부한다. 수학과 전공자보다 수학을 정성스럽게 찬양하는 것으로 보인다. 오랜만에 만나면 '물리학에서 쓰는 수학은 사파 아니냐'고 발작 버튼을 누르는 일이 인사이자 재밌는 농담이다.

그 친구 중 하나는 양자역학을 부정한다. 그게 계산이 맞긴 한데, 권위로 세운 허구라는 입장이다. 그래서 가끔 술을 먹으면 그 얘기를 하는데, 얘기를 듣다 보면 결국 자신이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어서 그렇다는 거 같다.

친구들과 나는 다르다. 친구들끼리도 서로 다르다. 당연한 얘기다.

오히려 나는 수학으로 이해하는 방식이 어렵다. 나에게는 귀찮을 뿐 아니라, 직관적이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수학을 몰라서 그렇지만.

원래도 수포자에 학습장애가 있지만, 친한 친구들이 성인이 되고 흥분해서 한 짓을 생각하면 당연히 수학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빼곡한 수학 공식을 보여주며 이게 상대성이론이라고, 시간과 공간은 사실 동일한 시공간이라고, 신기하지 않느냐며 초롱초롱한 눈을 반짝이는 친구들을 보며, 나는 매번 '이해할 수 없다'고 고백해야 했으니까.

그 숫자나 공식을 내가 하나도 모르는데 어떻게 친구들이 느낀 것을 구성하고 이해할 수 있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매번 술자리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추측하며 '이런 개념으로 보이는데 맞냐?'라고 맞장구 칠 뿐이다. 이 과정은 친밀하고 즐겁다. 매 순간 친구들은 나라는 뉴비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혹은 기묘한 개드립으로 넘어갈지 기대했고, 나 또한 혼신의 힘을 다 해 진지하게 드립치는 상황이 재밌으니까.

"야 잘 봐라, 지구와 태양은 공간으로 따지면 1AU(약 1억 5천만km) 떨어짐. 맞지?"

"그리고 정보 전달의 한계는 광속이니 지구와 태양이 서로 보는 모습은 약 8분 20초 전 과거 모습임. 맞음?"

"근데 지구에서 보면 태양이 8분 전 과거고, 태양 입장에서는 지구가 8분 전 과거임. 근데 둘 다 자기 관성계에서 보면 각자 사실임. 이게 상대성 ㅇㅈ?"

"지구-태양 뿐 아니라 다른 거리에 있는 물체도 거리가 멀어지는 경우 시간도 비례해서 멀어짐. 여기까지 맞지?"

"서로 떨어진 공간만큼 시간도 동일하게 멀어지니 시간=공간, 시공간임. 솔직히 개쩔었다 씨볼련앜ㅋㅋㅋ"

정색하기 좋아하는 너드 친구들이지만, 나를 좋아하니 여기서 더 엄격한 해석을 요구하며 몰아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궤변론자가 되어 몰아치는 편이었다. 특히 수학과 상대성이론은 인정하면서 양자역학을 격렬하게 거부하는 친구를 보면 장난기가 발동한다.

"야 시발 봐라, 지구에서 보면 태양이 8분 전 과거고, 태양에서 보면 지구가 8분 전 과거임 ㅇㅈ? 님 상대성이론 안 믿음? 이거 수학적으로 명확히 나옴. 믿지? ㅇㅋ"

"이건 서로 다른 관성계가 동시에 참인 상황임. 여러 경우가 동시에 중첩되어 존재하고, 그게 각자 참임. 님 근데 왜 같은 논리인 양자역학은 무시함? 병신임? 이거도 수학적으로 명확히 나옴ㅋㅋㅋㅋㅋ"

이러면 그 친구는 정색을 하면서 '그건 아니지, 야 봐라'하고 열정적인 술자리 강의를 시작한다. 그건 참 즐거운 일이다.

나와 친구, 친구와 친구는 서로 다르다. 하지만 각자의 관점에서 참을 경험한다. 그건 실제로 각자 참이다. 틀린 게 아니라 다름이다. 물론 나는 디씨인이라 내가 맞고 친구가 틀렸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