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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사고 애들 학원 보내면 끝…여윳돈도 없어지는 중산층.jpg
안녕하세요. 우리나라 중산층 가구의 여윳돈이 70만 원이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고요. 이거 얼마나 줄어든 겁니까?중산층으로 분류되는 소득 상위 40~60%의 여윳돈이 65만 8천 원으로 나타났는데요, 1년 전보다 8만 8천 원 내려갔습니다.이 중산층의 여윳돈, 다시 말해 흑자액이라고도 하는데요.흑자액이 뭐냐면, 소득에서 이자나 세금 같은 비소비 지출과 의식주 비용 같은 소비 지출을 뺀 금액을 뜻합니다.이 중산층의 흑자액 여윳돈이 지금은 70만 원이 안 되는 65만 8천 원으로, 2019년 4분기 이후 5년 만에 가장 적은 수준입니다.4년 전만 하더라도 이렇지 않았습니다. 90만 원이 넘었거든요.하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엄청난 속도로 줄고 있습니다.2022년 3분기 후에 2개 분기를 제외한 8개 분기 모두 감소했고요.특히, 작년 2분기부터는 3분기 연속으로 줄었고, 감소 폭도 더 커졌습니다.하지만 모든 계층에서 다 힘드냐, 그건 아닙니다.중산층과 최빈층을 빼고는 회복 중입니다.전체 가구의 평균 흑자액은 최근 2개 분기 연속 늘고 있습니다.유독 중산층이 어렵다, 왠지 기시감이 있으시죠.지난주에 친절한 경제에서 중산층만 지갑을 닫는다는 얘기 해드렸는데, 그것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결국 여윳돈이 없으니까 지갑을 닫고 이게 좀 연관된 거 아닌가 싶기는 한데, 결국에 여윳돈이 줄어드는 원인은 뭔가요?아까 흑자액의 정의를 보면 알 수가 있는데요, 통계 보시면 소득은 늘어난 걸로 나타납니다.그렇다면 결국 마이너스가 되는 소비 지출과 비소비 지출에서 증가했다는 뜻이 되겠죠.보건, 교통, 교육비 쪽 소비 지출과 이자 취등록세 등 비소비 지출이 늘어난 영향이 컸는데요.비소비 지출은 77만 7천 원으로 1년 전보다 12.8% 늘었습니다.2019년 이후 가장 많았고, 증가 폭도 최대였습니다.이 중에 이자 비용은 1.2% 늘어난 10만 8천 원이었는데요, 4분기 만에 증가하면서 다시 10만 원을 넘었습니다.또, 부동산 구입에 따른 취등록세가 늘면서 비경상 조세, 그러니까 정기적으로 내는 세금이 아닌 일시적인 세금으로 나가는 돈이 5배 가까이 늘어난 점도 여윳돈을 줄이는 요인이 됐습니다.교육비 지출은 13.2% 늘어난 14만 5천 원으로 집계됐습니다.전체 가구의 평균 교육비 증가 폭이 0.4%인 점을 감안하면 중산층에서 유독 큰 폭으로 늘어났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종합해 보면 최근 부동산 시장 과열 양상과 사교육비 부담으로 집 사고 애들 교육시키느라 여윳돈이 줄어들었다는 뜻이 되겠습니다.여윳돈이 줄어들면 당연히 소비 심리가 위축됩니다.제가 이렇게 중산층 힘들다는 얘기를 지속적으로 하는 이유는 중산층 가구의 살림살이가 빠듯해져서 우리 경제 허리가 약해지게 되면, 앞으로 내수는 물론이고 경제 기반을 흔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친절한 경제에서 특히 올해 들어서는 우리 경제가 힘들다는 얘기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은퇴 연령 인구의 상대적 빈곤율도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요?우리나라의 은퇴 연령 인구인 66세 이상 고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이 39.8%로, 4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일단 상대적 빈곤율이 뭔지 설명을 드리면요, 소득이 중위소득의 50% 미만인 계층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뜻합니다.예를 들어 한국 인구 전체를 연간 소득 순으로 한 줄로 딱 세웠을 때 중간에 있는 사람의 소득이 4천만 원이라고 하면 그 절반인 2천만 원 미만인 사람의 비율을 뜻합니다.즉, 상대적 빈곤율은 소득이 중위소득의 절반도 안 되는 빈곤층이 전체 인구에서 얼마나 되냐는 건데요, 이게 비율이 높다는 건 그만큼 가난한 국민이 많다는 거겠죠.2023년을 기준으로 전체 상대적 빈곤율은 14.9%로 2011년 18.5%부터 계속 하락하다가 현재 정체 상태입니다.앞서 말한 66세 이상은 이것보다 2배가 더 많은 39.8%로 나와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작성자 : 빌애크먼고정닉
ㅈㄹㅈㄹ..당시 동남아와 조선이 교류가 어려웠던 이유...
태국 아유타야 왕국 국왕"야 저기 극동 지방에 조선이란 나라가 생겼다는데 한번 사신 좀 보내볼까?"조선 개국 1주년이 되던 1393년 6월, 태국의 아유타야 왕국의 사절단이 도착함장사도라는 사람을 단장으로 한 사절단이 었는데예물을 바쳤고, 조선에서도 멀리서 온 손님이라고 후하게 대접을 해주고 그래 12월에 예빈시(연회나 잔치등을 주관하는 부서)에서 일하는 소경 배후라는 사람을 회례사로 뽑아서 배웅해줌 여기에 진언상이라는 중국 화교 상인도 포함이 되어있었음그런데 이 사절단이 돌아가는 와중에 왜구들에게 털려버리면서겨우겨우 조선으로 돌아옴 이들은 조선왕에게 흑인 2명과 예물을 바치면서 배한척 달라고 부탁했고조선에선 이 부탁을 들어줌 이때 조선에서는 단장인 장사도와 화교출신 상인이었던 진언상에 벼슬을 수여하면서 위로해줌 여튼 이때 이들은 배를 얻어타서 아유타야 왕국으로 귀환하는데 성공함태국왕: "어이고 고생들 많았다 다시 조선으로 답장을 보내자.."라면서 답장을 보냈는데이때 임득장이란 사람을 단장으로 삼아서 사신을 보냄 (여기에 진언상은 포함이 안됨)"히히 우리야"이 사신단도 왜구에게 또 털리고 납치를 당함이때 사신으로 보낸 조선인들중 배후는 난리통에 죽었고이자영이란 사람만이 가까스로 조선으로 탈출함 그리고 얼마 뒤 임득장과 일부 태국 사신도 일본에서 탈출해 조선에 도착했다는 기사를 마지막으로, 섬라곡과의 외교 기록은 실록에서 사라짐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뒤, 1406년 8월에 진언상은 이번엔 조와국, 그러니까 자바섬의 사신이 되어서 조선을 방문하게 됨그런데 당시 자바섬의 지배자가 유명한 마자파힛 제국이었는데이게 마자파힛의 사신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자세하게는 모름 걍 조와국이라 실록에 적혀만 있어서여튼 121명의 인원을 데리고 오는데..."히히 또 우리야"왜구를 또 만나서 또 털림 15척의 배를 끌고 갑자기 나타나서 압도적 숫자 우위로 공격을 해대서 버틸수가 없었다함 전사자만 21, 납치된 사람이 60인이었고 40인만이 살아서 조선 땅을 밟을 수 있었고, 화물도 죄다 약탈당한 채 자기가 탄 배만 건사했다고. 조선 조정에서 옷을 구해줘야 했을 정도라 하니 상당히 처참한 상태였던 것으로 보임.이때 진언상이 정부에 2개의 글을 써서 올렸는데 첫 번째 보고: "영락 4년 5월 18일, 저희 류큐국 왕께서 '조선에 가서 특산물을 바치고 축하를 전하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이에 저희는 5월 22일에 배를 타고 출발하여 윤7월 초하루 미시에 조선의 전라도 진포 앞 군산도 근처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구 배 15척을 만나 그날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초사흘 오시에 이르러 저희는 수적으로 열세여서 결국 모든 것을 빼앗겼습니다. 류큐국 사람 21명이 목숨을 잃었고, 남녀 60명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현재 살아남아 해안에 도착한 사람은 저 언상과 남녀 40명입니다. 저희가 가져온 조선에 바칠 특산물과 그 외 모든 물건들을 왜구들이 모두 약탈해 갔습니다. 지금 조선에서 옷과 양식을 주셔서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저희 나라 사람들이 이 일을 믿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저희의 말만으로는 증명하기 어려우니, 조선에서 증거가 될 만한 답신을 내려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두 번째 보고:"영락 4년 5월 18일, 저희 류큐국 왕께서 '조선에 가서 특산물을 바치고 축하를 전하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이에 저희는 5월 22일에 새로 만든 2,200료 규모의 큰 배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윤7월 초하루, 조선 전라도 진포 앞 군산도 근처에 도착했을 때, 예기치 않게 왜구를 만나 모든 것을 빼앗기고 배만 남았습니다. 지금 돌아가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배를 다룰 뱃사람들이 왜구 때문에 대부분 죽거나 잡혀가서 배를 움직일 사람이 부족합니다. 저희 배는 너무 크고 무거워서 큰 바다에서 잘못될까 걱정입니다. 목숨이 중요하니, 저희가 가져온 큰 배를 조선에 바치고, 40척 규모의 작고 빠른 배로 바꿔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내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여튼 진짜 개털린 모양..여튼 진언상은 이런 내용의 글을 올렸고, 원하는 바를 얻었고 다음해에 돌아오기로 약속하고 떠남 하지만 진언상은 다시는 조선 땅을 밟지는 못했음 다만 6년뒤 진언상은 자신의 손자인 실숭을 포함한 사절단을 보내서 사정을 알렸는데그뒤 돌아가던 도중에 배가 침수 되어서, 일본 해안에 표류 했는데"ㅎㅇㅎㅇ"거기서 또 일본 도적떼를 만나서 다 털리고 말았다함"ㅉㅉ 내가 도와드리겠음"하지만 다행히도 일본 왕의 도움으로군함 1척과 예물을 얻어서 자바 섬으로 돌아가는데 성공하고, 그 뒤로 자바섬의 사신이 다시 한번 되어서 일본과의 외교를 담당하게 되었고본인은 오지 못했지만 사적으로나마 손자와 사절단을 보내서 예물을 바치고 나름 감사를 표한것이었음그리고 이후 한 달 뒤 진언상의 사신이 돌아가는 길에 왜구의 포악성을 설명하며 호송을 요청했지만, 조선 조정에서는 해군력의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그 요청을 기각했으며 이것이 진언상에 대한 실록의 마지막 기록임진언상은 몇 안되는 조선과의 항해도중에 종 3번의 왜구들을 만난거임 우리야 뭐 역사적으로 대충 왜구가 많았다 뭐다 이런식으로 배웠고조선도 국제 무역이나 교류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었다 치더라도 당시 진언상과 조선과의 기록을 봐도 우리 상상이상으로 얼마나 왜구들이 판을 쳤는지 알만한 상황임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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