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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Wii의 로스트 미디어 (였던 것), '시동 디스크'
이번엔 스위치 2가 발표된 기념으로 Wii의 로스트 미디어중 하나였던 Wii 시동 디스크에 대해 알아볼까 함.로스트 미디어 위키에 있길래 여기에 한번 올려봄1. 출시 이전Wii 구동 디스크에 대한 이야기는 Wii가 발표된 뒤인 출시 직전 몇 주 전에 유츌 자료가 나오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감당시 박스 디자인이 유출되면서 박스에 적혀있던 구성품 목록도 유출되었는데, 그 중 8번째 구성품엔 "Wii 구동 디스크"가 있었음게다가 매장에 체험을 위해 설치된 몇몇 Wii 기기에서 이 시동 디스크를 요구하던 기기들도 몇 있었던 탓에 한 포럼에선 이 시동 디스크에 관한 토론도 진행되었음.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Wii는 출시되었고, 시동 디스크가 있어야 할 자리엔 대신 "Wii 스포츠"가 동봉되면서,그렇게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 시동 디스크에 대한건 잊혀짐2. 해커의 손에 들어가다그러나 일부 기기는 아직 저 상태를 유지했고, 4년이 지난 2010년, 이베이에 부팅을 위해 "Wii 시동 디스크"를 요구하는 Wii가 경매로 올라오게 됨ASSEMBLERgames라는 사이트 유저였던 Paul이 그 Wii를 구매해 Wii를 처음 해킹한 fail0verflow 그룹의 멤버인 Bushing(2016년 사망)에게 보냈고,마침 부싱도 예전부터 Wii 구동 디스크의 정체를 궁금해 했기 때문에, 흔쾌히 그 기기를 받았음부싱은 기기를 받자마자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데, 기기 외관이 구동 디스크때문에 못 썼을텐데 이걸로 축구라도 찼는지 너무 더러웠음게다가 시리얼 번호가 가리키는 제조 시기도 2008년이었던데다, 실제로 달려있던 DVD 드라이브도 뜯어본 결과 출시 초기 모델용은 아니었지만 시리얼 번호가 나타내는 시기와 일치하지 않음그런데 펌웨어가 들어간 NAND가 있을 보드는 또 제조 일자 확인 결과 출시 초기 보드가 맞았음. 무슨 이유에서인지 출시 초기 보드에 후기 부붐들이 엑조디아마냥 들러붙어있던 셈부싱이 기기를 부팅하자 나타난 Wii 시동 디스크 요구 화면.보다시피 Wii 시동 디스크를 요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해당 기기의 보드는 북미 유통 모델이었는지 영어/스페인어/라틴어 3개국어로 표시된 모습을 볼 수 있음저 화면에서 부싱은 어느 디스크를 삽입해도 오류 메시지와 함께 뒤로 넘어갈 수 없었음.당시 Wii를 해킹하는 방법으로 유명했던 SaveMii 모듈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음.그러다 부싱에게, 그의 동료 해커였던 crediar가 Wii의 시스템 메뉴 부팅 과정에서 ID가 "RAAE"라는 디스크를 확인하는 과정이 있단 것을 상기시켜줌해당 과정에서 ID가 RAAE라는 디스크가 확인되면 디스크의 로드를 거부하는데, 해당 디스크는 정황상 Wii용 디스크가 맞았기에 뭔가 수상한 점이 있었음crediar는 이게 시동 디스크의 ID가 아닐까 하고 의견을 냈고, 초기 Wii는 가짜 서명된 디스크도 그냥 부팅이 되던 것을 알고있던 부싱은 NAND 추출용 소프트를 담은 디스크에 RAAE로 가짜 서명을 하고 디스크를 부팅함다행히도 Wii는 그 디스크를 시동 디스크로 인식하고 화면이 넘어갔지만, 시스템 메뉴가 작동하지 않아서 위모트도 사용이 불가능했던 터라 어떻게 조작할 방법이 없었음그래도 Wii 초기 모델들은 다들 알다시피 게임큐브 컨트롤러 포트가 있었고, 부싱은 급히 해당 소프트를 뜯어 게임큐브 컨트롤러 지원을 추가하고 다시 구동함다행히도 (코드 한줄을 깜빡해서 다시 수정하긴 했었지만) 조작은 완벽하게 작동했고, 결국 부싱은 해당 기기에서 저 화면을 표시하는 일명 "시스템 메뉴 버전 0"이 담긴 NAND를 추출하는데 성공함그렇게 한 해커의 노력으로 인해 Wii 시동 디스크가 사람들에게 조금씩 알려지게 되었고,닌텐도가 실제로 출시 직전 기기에 담을 수 있을 정도로 OS가 다 완성되지 않아서 시동 디스크를 만들려 했었단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음3. 유출로 인해 세상에 공개되다부싱이 시동 디스크에 대해 약간의 비밀을 파헤친 뒤 Wii 시동 디스크에 관한 여러 증언들이 간간히 나왔음.당시 닌텐도 공장에 근무하던 사람이나 Wii 키오스크를 설치했던 매장 직원 등등 여러 사람들을 통해서 증언이 나왔지만, 이 글에선 일단 해당 증언은 다루지 않음(보고싶은 사람은 영어가 된다면 https://lostmediawiki.com/Wii_Startup_Disc_(found_Wii_software_disc;_2006) <-- 여기서 보는걸 추천)시간은 다시 거슬러 2018년, 당시 Malwarebytes의 한 직원이자 해커였던 Zammis Clark이 닌텐도 협력 회사를 해킹해 얻어낸 것으로 추정되는 닌텐도 내부 파일이 유출되는 사건이 벌어짐당시 파일은 4chan에서 공유되었는데, 파일이 엄청나게 공유된 2020년 9월 3번째 공유에서 닌텐도 중국 사업 전용 회사였던 iQue 서버 내의 파일에 드디어 대망의 "Wii 시동 디스크"의 파일이 나왔음!!(여담으로 별건 아니지만 이 3번째 공유에선 게임큐브 게임을 네이티브 HD로 굴리는 문서도 발견되었다 함)https://youtu.be/6ijcezn6wWQ실물이 발견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저 화면을 시동 디스크로 넘어가는 것은 처음이었음저 화면을 넘어가자 나온 것은, 바로 속칭 "버전 1.0"이었음. 출시 초기 일부 기기에서만 사용된 버전인데,특징으로는 설정 내 버전 표기가 되어있지 않으며, 온라인 기능들도 탑재되지 않았고 일부 앱은 그냥 글자만 띡 나오고 끝이었음사실 이 버전은 별로 특이할 것이야 없는 버전이었음. 실제로 출시 초기 일부 기기에서 사용 가능했던 만큼 이미 추출도 된 상황이었고.하지만 Wii 시동 디스크의 실체가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으니, 더 이상 Wii 시동 디스크는 로스트 미디어가 아니게 되어 버림..다만 앞에서 말한 3번째 유출에서, 왜 하필 Wii를 발매하지도 않았던 닌텐도 중국 사업 회사인 iQue 서버에서 북미용 시동 디스크가 발견된걸까?여담. 새로운 것이 발굴되다사실 iQue는 중국에 Wii를 발매하려 했지만, 여러 문제로 인해 발매를 하지 못했음.때문에 Wii는 중국어 버전이 존재하지 않았는데, 얼마 후 추가로 이뤄진 유출에서 iQue 서버에 북미용 시동 디스크와 함께 발매되지 않았던 iQue Wii의 시동 디스크가 발견되었던 것!!사실 이것은 애초에 존재하는지 조차도 알려지지 않았었기에 로스트 미디어로 보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Wii의 중국어 버전이 실존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었음iQue Wii 메뉴의 특징은 한국 Wii와 비슷하게 게임큐브 하위호환이 삭제된 채로 발매되었고,놀랍게도 Wii 쇼핑 채널도 제거되지 않은 상태였음. 물론 구동은 안되었지만.그 외에도 Wii Fit 채널이나 마리오카트 채널도 번역된 것을 보면, 거의 다 준비된 상태에서 중국 당국이 막판에 엎으면서 출시도 엎어진 모양이었나봄
작성자 : ㅇㅇ고정닉
경기 중 낙뢰를 맞은 남자, 레이 콜드웰의 이야기
이 글은 과거 다른 커뮤에서 쓴 글을 살짝 손 본 글입니다.기본적으로 야구에 관심 없는 사람들을 위해 쓴 글이기도 합니다.//////야구는 정말 오랜 역사를 가진 프로 스포츠다. 1869년에 관객들에게 돈을 받고 경기를 뛴다는 '프로 야구단'이 처음 탄생했고, 척화비가 세워지던 1871년에 최초의 프로리그가 출범했다. 이렇게 150년의 역사를 자랑하다 보니 경기 중 믿기 힘든 일도 종종 일어났는데, 랜디 존슨이 던진 공에 비둘기가 날아와 맞아 죽은 사건이 그 중 하나다. 그리고 비둘기가 공에 맞기 90년 전 쯤, 여기 경기 중 번개에 맞은 선수가 있다.그의 이름은 레이 콜드웰(Ray Caldwell). 그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투수로, 투구 뿐만 아니라 타격에도 상당한 재능을 가진 양키스의 에이스였다. 그가 26살의 나이에 18승에 1점대 자책점을 기록했을 때, 한 저명한 기자는 그의 재능을 예찬하며 "콜드웰은 넥스트 월터 존슨이 될 것이다" 라고 얘기했다.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월터 존슨이 아니라 도밍고 헤르만이 되었다.지금도 가끔 있지만, 초창기 스포츠에서는 자기 관리가 안되고 알코올 중독에 빠지는 선수가 종종 있었다. 콜드웰도 그런 부류였는데, 술 문제 때문에 항상 구단주와 감독과 마찰을 빚었고 연봉의 상당 부분이 벌금으로 나갔다. 결국 술을 마시고 숙취로 결근하는 일마저 생겼고, 그로 인해 출장 정지를 받기도 했다. 또 당시 메이저리거는 지금처럼 어마장장한 돈을 버는 직업이 아니었는데, 안그래도 술을 매일같이 퍼마시는데 출장 정지로 돈까지 벌지 못하니 생활고에 빠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지를 훔친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고, 7살 난 아들의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아내에게 고소를 당했다. 출장 정지기간동안 파나마에서 야구를 했다는 썰도 있다.반성하고 성실하게 야구를 하는가 싶다가도, 다시 술을 마시고 이탈하는 일이 반복되자 기어코 감독은 사설탐정을 고용해서 콜드웰을 감시하기까지 했다. 그렇다. 사설탐정 고용해서 선수 뒷조사하는 양키스의 전통은 스타인브레너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그러다가 그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입대를 피할 목적으로 조선회사에 입사했는데, 이 일로 구단주의 분노를 사 9년간 몸담았던 양키스에서 쫓겨나 보스턴으로 트레이드 되었고, 보스턴에서도 얼마 안가 방출 당하고 만다.강속구를 뽐내던 차세대 월터 존슨은 어디가고, 이제는 무릎 부상으로 신음하는 31살의 노장만이 남았을 뿐이다. 이대로 은퇴하나 싶었지만,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그에게 손을 내미면서 은퇴는 미뤄지게 된다. 당시 클리블랜드는 시즌 도중에 감독을 교체하면서 우승을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때 계약서가 상당히 골때린다.콜드웰: 저 감독님... 계약서에 오타가 있는데요? 계약 조항이 "경기가 끝나고 술을 마시지 말 것" 인데 not이 빠져서 "술을 마실것" 으로 되어 있어요.트리스 스피커(감독): 아냐, 오타 없어. 술을 마실것이 맞아.콜드웰: 네? 술을 마시라고요?스피커: 술은 죽어야 끊는거야. 어차피 술 못 끊을거면 차라리 경기 끝나고 마시고, 다음날 자고, 그 다음날 훈련해. 그게 차라리 나아.스피커: 홀리이 기괴한 계약 조항과 함께 인디언스에 입단한 콜드웰은, 자신을 인정하고 배려해준 스피커에 대한 감사 때문일까,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압박감 때문이었을까.그는 클리블랜드에서의 첫 경기에서 의문의 회춘과 함께 자신의 인생투를 보여준다.1919년 8월 24일, 필라델피아 원정에 선발투수로 등판한 그는 9회 2사까지 1실점으로 막으면서 팀의 2대 1 리드를 지켜낸다. 자신의 데뷔전을 완투승으로 장식하기 위해 그는 마지막 타자를 상대하기 위해 발판을 닦고 있었다. 그때였다. 우르르 쾅!순간 세상이 새하얘지고, 우레가 경기장을 뒤덮으면서 낙뢰가 콜드웰을 강타했다. 증언에 따르면, 기자석에 있는 기자들까지 충격파를 느꼈고, 유격수 레이 채프먼은 콜드웰의 상태를 확인하려 뛰어가다가 다리에 찌릿함을 느끼고 주저 앉았을 뻔 했다고 한다.당시 콜드웰은 의식을 잃은 채 양팔을 벌리고 누워있었다고 한다. 가슴에는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모두가 콜드웰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경기장에 의사도 없었고 심폐소생술도 없을 때라, 소생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다.그 순간.콜드웰: 윽... 으윽...콜드웰이 신음소리를 내며 힘겹게 일어나기 시작했다.스피커(감독겸 중견수): 이봐 콜드웰, 괜찮나? 날 알아 보겠어?콜드웰: 네... 감독님... 스피커: 그래 죽지 않아서 다행이구만. 일단 병원부터 가세. 콜드웰: 네?? 아뇨. 이 게임은 제가 끝낼겁니다. 이건 제 승리에요. 누구한테도 넘겨줄 수 없어요.스피커: 바보같은 사람아! 자네 번개를 맞았다고 번개를! 무슨 위험한 상태일지도 몰라. 빨리 병원부터 가세.콜드웰: 감독님... 감독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MVP? 타이 콥을 누르고 타격왕을 따낼 때? 우승할 때?전... 지금입니다..!레이 채프먼(유격수): 낙뢰로 유격수인 나까지 쓰러질 뻔 했는데... 콜드웰 자네 단단히 미쳤군....감독은 그를 교체하고 병원에 보내려 했으나, 본인이 워낙 완강하게 교체를 거부하기에 어쩔수 없이 경기를 속행했고, 콜드웰은 마지막 타자를 아웃으로 잡아내고 완투승을 거둔다.번개 때문일까? 그의 집념 때문일까? 그는 그 해 클리블랜드에서 6경기 동안 5승 1패를 기록한다. 그 사이 쌓은 bwar은 무려 1.7이며, 5승 중에는 자신을 버린 양키스를 상대로 거둔 노히트 노런도 있었다. 그가 벼락에 맞고 불과 17일 이후의 일이었다.아마 눈썰미 좋은 클리블랜드 팬이라면, 이 글을 읽으면서 이미 이 글의 결말을 짐작했을 것이다.1919년 클리블랜드는 스피커의 지휘와 콜드웰의 벼락투혼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우승에 도전했지만, 아쉽게도 시카고 화이트삭스에게 밀려 리그 2위에 그치고 만다. 다음해인 1920년, 클리블랜드는 절치부심해서 다시 한번 우승을 노린다. 콜드웰은 팀을 무단 이탈하는 일 없이 3선발로서 팀을 지탱하며, 생에 최초로 20승을 거둔다.이 과정에서 팀의 유격수 레이 채프먼이 공을 머리에 맞고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한다. 클리블랜드 선수들은 1920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거두고 채프먼의 영전에 바치는데, 이는 클리블랜드 최초의 우승이다.콜드웰은 1921년까지 뛰고 더는 메이저리그에서 뛰지 못한다. 대신 그는 끝까지 야구를 포기하지 않고 12년간 마이너리그에서 뛰다가 은퇴한다. 젊은시절에는 팀을 무단이탈하며 물의를 일으켰지만, 마이너리그에서 12년간 뛰었던걸 보면 야구에 대한 열정은 진심이었던 것 같다. 야구기자 월터 트럼블은 콜드웰이 젊은 시절 이러한 평가를 남겼다. "콜드웰은 야구를 정말 좋아하는 소년입니다. 그가 제 컨디션일 때, 그는 리그 최고의 투수로 군림합니다............타이 콥(Ty Cobb)과 존 맥그로(John Mcgrow) 같은 선수들은 절대 패배를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단순히 동전 던지기에도 온 신경을 쏟습니다. 만약 콜드웰이 그들과 같은 불꽃을 가지고 더 큰 야망을 품는다면, 그는 야구사에 길이남을 선수가 될 것입니다."비록 그의 커리어는 월터 트럼블의 기대보다는 덜 훌륭하게 끝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야구에 대한 열정만은 진심이었던것 같다. 현재까지 클리블랜드의 우승은 두번밖에 없다.레이 채프먼이 사망하고, 중견수 트리스 스피커와 함께 우승을 거머쥐었던 1920년의 우승.흑인인 래리 도비와 사첼 페이지를 영입하면서, mvp 유격수 겸 감독인 루 보드로의 지휘 아래에 우승을 거머쥔 1948년.현재 가디언스의 기둥은 3루수 호세 라미레즈다.라미레즈 또한 보드로와 스피커와 같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하지만 라미레즈가 선대의 두 위대한 캡틴처럼, 클리블랜드에 우승컵을 가져오는 것이 가능할까? 나는 가능하리라 믿는다.클리블랜드는 스피커의 전설, 콜드웰의 투혼, 부드로의 지휘, 도비의 투쟁이 깃든 신성한 mlb의 성지이기 때문이다.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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