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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X호랑이순애소설2

ㅇㅇ(1.227) 2025.03.09 20:23:09
조회 111 추천 9 댓글 6

“그냥 핸드폰 보고 있어.” 나는 그의 눈을 피해 상체를 일으켰다.

“재밌는 거 없어? 공부만 하고 있으려니 몸이 근질거려서.” 그는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뭉툭한 꼬리가 그의 등까지 말려 올라갔다.

“무슨 공부하는데?” 나는 예의상 물었다.

“경찰공무원 시험.”

“오호.” 나는 볼을 쪼그리며 말했다. “어울리네.”

빈말이 아니었다. 그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호랑이 수인답게 농구선수처럼 체격이 거대했다. 모두가 동일하게 입는 울 혼용률이 높은 갈색 교복 바지와 흰 와이셔츠, 그리고 그 위에 덧입은 아이보리 색 조끼와 목에 맨 넥타이로는 그의 존재감을 지울 수 없었다. 애초에 지금 교복을 입은 사람이 그와 나 뿐이기도 했고.

이와 더불어 원체 사교적이며 주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그는 항상 교실이라는 세계의 중심에 놓인 인물이었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반장으로 뽑히고, 물을 마시러 나가면 친구가 들러붙고, 말 한마디로 선생님까지 배를 잡게 만드는 건 예삿일이었다. 은행 강도보다는 경찰이 훨씬 어울린다.

그는 아무래도 나와 정반대의 타입이었다. 나는 그런 존재였다. 특별히 모난 구석이 있어 또래와 어울리는데 불편함을 겪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어울려 다니는 타입도 아니었다. 나의 마음 한구석에는 오래전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렴풋한 허무가 자리 잡고 있었고, 그 때문에 누구와도 진심을 공유할 수 없었다. 그저 홀로 있는 것이 편했다.

결국 나는 매끄러운 돌같이 교실의 한 공간을 차지했고 그대로 모두와 반투명한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했던, 나에게 있어 교실 내의 관계는 거짓이라는 모래 위에 지어진 성에 불과했다. 파도가 한 번 휩쓰는 순간 모두 거품이 된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이 더욱 어색했다.

“근데 왜 경찰을 준비하는 거야? 대학은 어쩌고?” 나는 없는 궁금증을 끌어모아 물었다.

“우리 집안이 대대로 경찰 집안이거든. 아빠도, 형도, 사촌 누나도.” 그는 흐트러짐 없이 화제를 바꾸었다. “우리 제대로 얘기해보는 거 처음이지?”

“그렇지?”

“너는 왜 현장체험학습 안썼어? 어디 놀러 안가?” 그의 시선이 나의 눈동자를 비집고 들어왔다.

“으음.” 나는 언짢은 듯 대답했다. “딱히 놀러 갈 데가 없어. 관심도 없고.”

“너무 매정하다. 재밌게 살아야지.”

“시험 준비하는 너는 어떻고.”

“그렇긴 하네.” 그는 사소한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나갔다 올래?”

“밖에?” 나는 놀라서 물었다.

“밖이 아니면 어디로 나가?”

“12월이야. 바람이 살을 엔다고.”

“사모예드 수인은 추위에 강한 거 아니었어?”

“그런 건 다 편견이야.”

“아무렴 어때. 교실 안에만 있으면 답답하잖아. 안 그래?”

그럼 평소에는 교실에 어떻게 있었던 걸까. 나는 명패를 땅에 내동댕이쳐버린 것을 후회했다. 12월은 이제 시작됐고, 최소한 일주일 정도는 교실 안에 그와 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막무가내인 사람에게 약하다.

그와 나는 학교 현관을 빠져나와 운동장의 스탠드로 향했고 가장 아랫부분까지 내려와 나란히 앉았다. 스탠드의 돌 바닥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바지의 겹겹을 뚫고 냉기를 엉덩이에 고스란히 전달했다. 형태가 없는 찬바람은 끝없이 불어와 코끝을 못질했고 온몸의 털은 오들오들 떨렸다.

나는 그런 상황 속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운동장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전날 내린 눈은 여전히 녹지 않은 채 햇빛을 굳세게 견디며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흙은 자신이 흙이라는 사실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듯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그래 봤자 흙은 흙이지만. 그럼에도 모든 게 생기를 머금고 있었다. 모두가 정지한 상태로 있으면 안되는 걸까, 그럼 고민은 필요도 없을 텐데.

“근데 웃기지 않아?”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뭐가?”

“우리 담임쌤. 현장체험학습 쓰고 너무 놀기만 하지 말라고 하셨으면서 지금은 9시가 넘어서야 교실에 얼굴 한 번 비추고는 교무실에서 솔선수범하게 놀고 계시잖아.”

“우리야 편하지. 나는 눈치 보지 않고 누워있을 수 있어서 좋은데. 담임쌤 성격 생각해봐. 앞에서 그러고 있으면 바로 뺨 맞을걸. 그리고 수능도 끝났는데 오히려 놀기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는 항상 교실에서 보이던 웃음을 터뜨렸고 나도 옅은 미소를 띠었다.

우리는 생각보다 죽이 잘 맞았다. 우리의 대화는 서브로만 이어지는 테니스 경기를 구경하듯, 여유와 편안함이 오갔다. 평소 난타(亂打)만이 이어지던 대화와는 궤를 달리했다. 그렇게 10분이란 시간이 바람이 불듯 지나갔고 추위가 뼛속까지 감쌀 무렵이었다.

“있잖아.” 그가 입을 열었다. “왜 평소에는 별로 말 안했어? 솔직히 너한테 처음 말 걸 때도 네가 대답해줄지 몰라서 긴장했는데. 뭐랄까, 여태까지 난 네가 두 문장 이상 말하면 죽는 병이라도 걸린 줄 알았어.”

“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할 말이 없는데 말할 필요는 없잖아.”

그도 피식 웃었다. 

“거짓말이지?” 그가 물었다.

“거짓말이라니?”

“할 말이 없을 리가 없잖아. 사람들은 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야.” 그는 단언했다.

“내가 없다면 없는 거야.” 여전히 빛을 반사시키는 눈 때문에 눈을 똑바로 뜨기 어려웠다.

“아닌 것 같은데.” 그는 난데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너 양치기 소년 이야기 알아?”

“모를 리가.”

“그 이야기의 교훈이 뭐라고 생각해?”

“거짓말하지 않기.”

“보통 그렇게들 말하지.”

“너는 다르게 생각하나 봐?” 

“잘 들어봐.”

그는 팔과 다리를 쭉 뻗고는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일주일 동안 기대를 안고 놀러 간 놀이공원에서 풍선을 선물 받은 어린아이처럼 설렘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여전히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척력이 존재했고 나는 의식하지 않은 척 축구 골대의 기둥을 바라보았다.

“양치기 소년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진짜로 늑대가 나타났다는 거야.”

그가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대충 고개를 주억거리며 잠자코 있었다.

“오, 무슨 소린지 이해했어?”

“전혀 모르겠는데.”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따라 웃었다. 그는 곧 눈을 가늘게 뜨고 말을 이어나갔다.

“양치기 소년이 단순한 장난으로 거짓말을 했건, 어딘가 비틀려 있는 사람이라서 거짓말을 했건 그런 건 상관없어. 마지막에 늑대가 왜 나타났겠어? 늑대가 나타났다는 거짓말이 결국 진짜 늑대를 부른 거야.”

“동화적 허용이지.” 나는 말했다.

“인생에 동화적 허용이 일어나지 않을 이유가 있어? 거짓이란 그런 거야. 자기도 모르는 새에 거짓으로 꾸며낸 결락을 순식간에 진실로 바꿔버려. 그리고 양치기 소년이 양떼를 다시 사모은다고 해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진실로 변해 버린 결락감은 무엇을 들이부어도 채워지지 않아. 그러니 서하 너도 조금은 솔직해질 필요가 있어. 언제 늑대가 나타날지 몰라.”

“나는 고등학교에 인생을 배우러 온 건 아닌데.”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홱 돌렸다.

그때 그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그의 투명한 눈은 가없는 흡인력으로 나의 모든 것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나는 마치 부드러운 공기 덩어리가 된 것 같았다. 나의 몸은 조각조각 입자로 분리되어 그의 눈동자에 안착했다. 눈이 마주쳤던 약 5초의 시간 동안 나의 시간은 멈추고 말았다. 열여덟의 한겨울에 나는 생애 처음으로 투명한 따스함을 느꼈다.

“너 말투 되게 웃긴 거 알아? 중독성 있어.”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모르겠는데…”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내 운동화의 끄트머리 부분을 쳐다보았다.

“춥다, 들어갈까?”

나는 별로 춥지 않았다. 그와 나 사이에는 5초만큼의 시간이 벌어진 게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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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침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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