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 "아달미나의 진주" 토펠리우스 지음, 2021. MKdays.
토펠리우스는 핀란드의 역사학 교수였지만 소설가로 더 유명한 인물입니다.
특히 몇 편의 동화들은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어서 핀란드 아동문학의 선구자로 불리기도 하지요.
"아달미나의 진주"는 토펠리우스 동화 중 네 편을 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산딸기의 왕"은 어릴 적 세계문학 그림책에서 읽었던 이야기를 완역본으로 다시 보게 되어서인지
마치 어릴적 친구를 다시 만난 느낌에 더 반가웠던 기억이 납니다.

소녀들은 계속 숲 안쪽으로 나아가고, 또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소녀들은 도저히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들은 엄청나게 큰 산딸기 숲에 도착한 것이다.
그곳은 한때 산불이 났던 곳인데, 지금은 산딸기가 무성하게 자란 숲이 되어 있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산딸기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가지와 덤불이었다.
가지마다 가장 크고, 진한 붉은 색을 띤 잘 익은 산딸기 열매가 열려 땅까지 드리워 있었다.
이들은 이토록 산딸기가 많이 열린 곳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 "산딸기의 왕" 중에서
불쌍한 벌레가 새의 먹이가 되지 않도록 딸기 덤불에 놓아줄 정도로 착한 마음씨를 가진 두 소녀, 리사와 아이나.
그들이 산딸기를 따러 숲 속으로 들어오면서 겪게 되는 꿈같은 경험이 이 이야기의 줄거리입니다.
옛날에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커다란 그림책 양쪽을 가득 채운, 주먹만한 크기에 루비처럼 반짝이는 딸기를 보며 침을 줄줄 흘렸더랬지요.
주변에 딸기밭은 없으니 시장에서 딸기를 구입합니다. 매년 3월 말에서 4월 초 쯤 잠깐 나오는 노지재배 딸기가 목표입니다.
1kg에 3000원. 매년 물가가 많이 올라서 올해는 더 비싸지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저렴한 딸기를 구할 수 있었네요.
이 정도면 숲 속의 딸기 덤불이 부럽지 않습니다.

다만 우연히 마주친 스치딸기(스티로폼 상자에 넣어서 저렴하게 파는 딸기)가 너무 반가운 나머지 5상자를 충동구매했다는 게 문제입니다.
꼭지를 제거하고 영 상태가 안좋은 딸기를 골라냈는데도 한 상자에서 나온 딸기가 1kg이 넘네요.
딸기 무게만 5kg. 원래대로라면 딸기와 설탕을 1:1 비율로 섞어서 잼을 만드는데, 이번에는 워낙 양이 많다보니 설탕을 4kg으로 줄였습니다.
꼭지를 따고 깨끗하게 씻은 딸기와 백설탕을 번갈아가며 차곡차곡 쌓아서 자연스럽게 과즙이 흘러나오도록 합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 모두 산딸기에 크림을 얹어서 먹었다.
"설탕을 너무 많이 치지는 말려무나!"
맏언니가 말했다.
하지만 오토의 접시는 마치 함박눈을 뒤집어쓴 것 같았다.
설탕 눈 속에 파묻혀 빨간 딸기는 아주 살짝만 보일 뿐이었다.
-산딸기의 왕 중에서
마치 눈 속에 파묻힌 것 같은 딸기와 설탕의 산을 배경으로 세워놓고 또 다른 작업을 시작합니다.
파워퍼프걸을 만들 때는 케미컬X가 들어갔듯, 딸기잼을 만들 때는 항상 스페셜 첨가제를 넣어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딸기즙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레몬즙을 짜고 그랑마르니에를 섞은 후 바닐라를 갈라 씨앗을 풀어 넣습니다.
딸기잼에 깊은 풍미를 더하는 나만의 비법이지요.
문제는 재료 원가를 따졌을 때 이 스페셜 포뮬러가 오히려 딸기보다 더 비싸다는 거.
고생해서 직접 만든 딸기잼이 그냥 시중에서 파는 잼보다 더 비싸지는 주범이기도 한데, 이걸 넣었을 때와 안 넣었을 때의 차이가 꽤 큰지라 포기할 수가 없네요.

산딸기 왕은 맏언니에게 줄 선물도 잊지 않았다.
언니가 저녁 식사를 차리려 했을 때, 이제까지 아무도 본 적 없는 최고로 아름다운 산딸기가 가득 담긴 바구니 열 한개가 놓여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하여 여태껏 본 적 없는 규모의 즐거운 잼 만들기가 이어졌다.
- "산딸기의 왕" 중에서
딸기잼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담아놓을 병이 없으면 말짱 헛수고입니다.
기존에 쓰고 남은 유리병 외에도 잼 보존용 유리병을 여덟 개 더 샀는데 암만 봐도 부족할 거 같아 찬장 구석에 잠들어 있던 피클용 유리병까지 죄다 끄집어 냅니다.
이걸 보면 난데없이 딸기 열 한 바구니 폭탄 드랍을 맞고 온 집안을 뒤져가며 냄비와 유리병을 긁어모아야 했을 맏언니가 마냥 행복하기만 했을까 싶기도 하네요.
산더미처럼 유리병을 쌓아놓고 열탕 소독을 하고 있으려니 평소에는 식기세척기의 필요성을 별로 못 느끼는데, 이럴 때는 식기세척기 소독 모드로 한 번 돌리면 편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거의 10리터에 육박하는 무시무시한 양의 딸기와 설탕 혼합물을 보면 기가 질립니다.
지금껏 만들었던 것 중에서 가장 많이 만들었던 것이 딸기 2.5kg였으니 두 배 정도 기록을 갱신했네요.
기도하는 심정으로 모비엘 구리 냄비에 딸기를 옮겨담았더니 아슬아슬하게 다 들어갑니다.
냄비가 워낙 커서 일반적인 조리도구로는 가열할 수가 없고, 캠핑용 버너에나 겨우 올라갑니다.
이소가스 연결선을 따로 길게 뽑을 수 있는 버너를 산 이유도 이 냄비 끓이기 위해서였지요.

워낙 양이 많아서인지 끓이는데도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립니다.
넘치지 않도록 거품을 걷어내며 계속 끓이다 보면 어느 순간(아마도 100도가 넘을 때)부터 거품의 모양이 달라집니다.
이때부터 온도 측정을 시작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약간 묽은듯 천천히 흐르는 점성의 잼을 좋아하는지라 105도에 맞춰서 끓여줍니다.
끓을 때는 워낙 물처럼 부글부글 끓어서 구분이 안되는데, 105도를 넘어 더 높은 온도가 될수록 잼이 단단해집니다.
잼을 만들 때는 수시로 온도계를 확인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너무 묽어서 딸기주스 원액이 되거나 너무 단단해서 숟가락으로 떠지지도 않는 잼이 되는 불상사를 막아야 하니까요.

잼 병에 입구가 넓은 유리병 작업용 깔대기를 대고 갓 만들어진 뜨거운 잼을 부어줍니다.
루비처럼 아름다운 색깔에, 딸기 씨앗이 별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펄펄 끓는 물보다 더 뜨거운 잼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조심조심 유리병을 가득 채우고, 뚜껑을 잠그고 거꾸로 세워서 식는 동안 공기가 유입되는 것을 막습니다.
잼이 식으면서 안쪽의 기압이 내려가고 잼 뚜껑이 저절로 소리를 내며 안쪽으로 밀착됩니다.
잼을 사면 "뚜껑을 열때 뻥 소리가 나는지 확인하라"는 안내가 붙어있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잼 뚜껑을 열때까지 안쪽의 공기가 수축된 상태가 계속되기 때문에 외부의 세균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거든요.

이렇게 다 만들어진 잼은 차곡차곡 쌓아서 창고에 넣어둡니다.
딸기 5kg을 손질할 때는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이렇게 딸기잼이 가득 쌓이니 고생을 다 보상받는 느낌입니다.
이 정도면 여기저기 선물 하고도 내년 딸기철이 돌아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네요.
하지만 워낙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들었던지라 속으로 다짐을 합니다.
"내년에는 꼭 3kg만 하자!"
그리고 이렇게 딸기잼 만들면서 느꼈던 봄이 지나면 어느 덧 여름. 매실청 담글 계절이 돌아오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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