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뉴스에서..
욕설 음란 상업 도배…인터넷 게시판에 난무하는 통칭 '악플'은 사이트 관리자 커뮤니티 운영자들의 영원한 골치거리. 어떻게 하면 이런 악플을 근절할 수 있을까? 운영자들은 다들 아는 이야기지만 이런 것들을 프로그램으로는 다 막아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이트의 규모가 커질 수록 악플관리는 더더욱 힘들어 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디시인사이드는 이른바 '조선족 알바'를 고용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성공적으로 사이트 관리를 하고 있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도깨비 뉴스는 베이징리포터를 디시 베이징 사무소로 보내 '조선족 알바'가 디시 게시판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 지 그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살펴 봤다.
이슥한 야밤, 혹은 늦은 새벽, 순방문자만 하루 80만명을 넘는 국내 최대의 디지털 카메라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이하 디시)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난무하던 욕설 및 음란, 도배, 상업 광고 게시물 등이 신속히 사라지기 시작한다.
모두들 잠든 시간이라서 안심했던 음란물 매니아, 악플러. 홍보업자들이 다들 당황할 수 밖에 없다. 이 시각이면 당직을 서는 디시의 야간 관리자도 쏟아지는 졸음을 가까스로 참아야 하고 동작이 굼떠져야 정상이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영문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디시 내의 야간 당직자 말고도 디시를 '지키는' 중국 거주 조선족 출신의 게시물 관리자, 이른바 '조선족 알바'들이 잠시도 한눈 팔지 않고, 눈을 부릅 뜨며 디시 게시판들을 샅샅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조선족 알바들은 디시를 24시간 철통 같은 관리 체제로 유지하고 있다.
리포터는 이들 디시의 '조선족 알바' 들을 취재하기 위해 베이징 외곽에 위치한 디시 베이징 사무실을 찾아 나섰다. 주소 한장 만 달랑들고 서툰 중국어로 물어 물어 가까스로 찾은 디시 사무실은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의 5층짜리 한 빌딩에 위치하고 있었다.
중국은 공공관서나 빌딩마다 보안이 잘되있어서 이곳도 작은 빌딩이지만 건장한 경비원들이 많이 상주하고 있었다. 대략 명함을 내밀고 한참 설명 후, 경비원의 다소 미심쩍은 눈초리를 뒤로 하고 출입을 허락받았다.
중국도 기자들의 대우가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다. 3층 구석의 한 사무실. 아, 여기구나. 입구에 눈에 익은 '개죽이' 사진이 능청스레 붙어 있었다. 조심스레 노크하자 "칭진(들어오세요)!" 앳된 여자 목소리의 중국말이 안에서 들려왔다.
문을 연 순간, 조용한 사무실에는 5명의 젊은 남녀 '알바'들이 모니터를 뚫어지라 쳐다 보며 게시물을 관리하고 있는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악플러들의 적' 디시 조선족 알바들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낯선 리포터의 갑작스런 출현에 한동안 당황하던 이들은 리포터가 신분을 밝히고도 장황한 설명을 한 연휴에야 차(茶)도 내오며 취재에 응했다.
단 인물 정면사진은 찍지 않는 다는 조건. 악플러들은 알바들을 상당히 싫어하기 때문에 디시 및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합성사진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얘기였다.
조선족 알바들에게는 일정 시간내에 각 개인이 관리하여야 할 담당 게시판 및 갤러리의 범위가 주어진다. 매주초 본사에서 이메일로 개괄적인 업무 지시를 받고 또 수시로 메신저로 본사 관리팀의 지휘를 받는다고 한다. 예를 들면, "패션갤러리에 싱하형 출현했다. 좀 더 두고본 후 계속 악플 달면 IP차단해라", "현재 레이싱걸 갤러리에서 도배성 음란게시물 난무, 신속한 조치 바란다" 이런 식이다.
때로는 사장이 직접 새벽에 갑자기 "배고픈데 김치 왕만두라도 배달해 먹어가며 일들 하세요"라고 메시지를 보내는 적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인근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김치왕만두를 배달해 준다고 한다.
이들은 주로 20대 초 중반의 나이이고 학업을 병행하는 대학생도 있다. 아침식사를 안하는 중국인의 식습관처럼 이들도 돌아가면서 간식을 사와서 아침 대신 먹으며 일을 한다. 점심은 가끔 나가서 사먹지만 대부분 한식도시락을 시켜서 먹는다. 한식도시락은 사과나 배 등 과일도 갖다 주기 때문에 의외로 푸짐하다.
한 달에 1~2번 정도 주-야간 관리자들이 다 모이는 전체 회식이 있다. 급여와 별도로 회식대, 식대, 간식비 등은 디시측에서 제공한다.
중요한 스포츠 경기나 스타크래프트 게임 시합 혹은 인기 드라마가 방영되는 날은 이들은 아침부터 하루종일 바쁘다. 디시 내 관련 갤러리에서 게시물과 사진이 엄청나게 쏟아지기 때문. 수능시험이 있던 11월 중순을을 전후에서는 비상체제에 가동했다고 한다. 고단한 수험생들의 수능 전의 중압감과 수능 후의 해방감이 어김없이 디시에서도 표출되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피곤한 듯 눈을 붙이는 진밍난씨, 누나가 한국인과 결혼해 가족이 한국에 산다>
상대적으로 한가한 낮시간이 지나고 날이 저물면 다시 두툼한 외투차림의 5명의 다른 '정예알바'들이 출근한다. '황사현상'으로 유명한 베이징 답게 이곳은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상당히 춥다.이들은 말그대로 주침야활(낮에는 자고 밤에는 활동함)을 몸소 실천하는 알바들이다.
밤새도록 기승을 부리는 악플러들과 사투를 위해 어떨 땐 인터넷 속도가 느려지면 옆 사무실의 ADSL선까지 끌어다가 쓰면서 관리하는 프로정신의 '고수알바'들이다. 중국에만 총 10명의 관리자가 있는 셈이다.
빈시간의 공백은 서울의 당직자들이 관리를 담당한다. 디시 측은 사용자들에게 좀 더 질높은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주간에만 근무하던 관리자들 외에도 얼마 전 추가로 이런 야간관리팀을 새로 구성했다. 물론 이들은 서울의 직원들과 함께 게시물 관리를 맡는다.
그러나 디시 게시물 관리 폭이 점차 중국 쪽으로 넘어가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사용자 수가 늘어날 수록 알바들도 증원할 계획이라는 것이 디시측의 설명. 이들에게는 처음에 한국 인터넷 언어 문화에 적응하기가 도통 쉽지 않았다.
같은 한국 사람들 조차 익숙치 않은 인터넷 상의 '아햏햏' 같은 신조어가 하물며 이국땅 다른 문화권의 조선족들이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터이다.
그러나 꾸준히 노력한 결과 이제는 거의 한국 직원들 수준으로 언어 문화에 대한 이해력은 물론 인터넷 전반의 문화까지 꿰뚫었다. 초기 교육을 담당했던 본사 파견 직원도 짧은 시간 이들의 성장에 혀를 내두를 정도. 조선족은 중국내 일반 한족 등의 다른 민족과는 달리 교육열과 교육수준이 대단히 높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사회주의 체제하의 노동자답게 정시 출근, 정시 퇴근을 준수하는 '무적의 칼퇴근 부대'이며 한국 물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다른 중국인들에 비하면 급여 또한 적지 않다.
언뜻 보기엔 편할 것 같은 직업을 가진 이들이지만 나름대로 말 못할 고충 또한 적지 않다. 분명히 자신은 관리 규정에 맞게 게시물을 삭제했는데 네티즌들이 "조선족 알바, 이x아 너 죽어" 등의 온라인상에서 갖은 욕설을 퍼부을 때는 마음이 무척 아프다고 한다.
때로는 '참수 동영상' 같은 잔혹한 게시물, 혹은 저질 음란 게시물을 올라 올 때 클릭했다가 상처 받기도 일쑤. 또 야밤에 심령사진. 귀신 사진 같은 괴기물이 많이 올라오는 '미스터리/괴기갤러리' 같은 곳은 관리하기가 두렵다고 한다.
처음에는 하루종일 뚫어지게 모니터만 바라보고 일을 하다보니 눈이 자주 충열되어 친구들이 토끼라고 놀리기도 했다고 한다.
모든 인터넷 커뮤니티의 '복합 전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디시 내의 게시물들을 일일이 살피고 관리해야하는 이들 역시 인터넷상의 모든 고충을 껴안고 가는 셈이다. 또한 규정에는 어긋나지만 "제발 지우지 말아주세요"라는 식의 애원성 글이 올라오면 차마 삭제할 수 없어서 그냥 모른 척 넘어갔다가 다음 날 본사의 관리팀장한테 '깨진' 적도 많다고 한다.
커뮤니티 내에서는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한을 지닌 관리자지만 이들 역시 어쩔 수 없는 20대 초반의 해맑은 젊은이들인 것이다.
디시 베이징 지사 책임자 리메이란씨(25 여)는 헤이룽장성 출신의 조선족이다. 부모는 현재 한국에서 동생의 대학 학비를 벌기 위해 일하고 있고 자신은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이 곳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회사와 업무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히 강해보였다.
"디시인사이드는 중국에서는 볼 수 없는 매력적인 커뮤니티입니다. 제가 하는 일이 자랑스럽습니다"라며 사투리 섞인 한국어로 담담히 소감을 밝혔다.
중국지사 내 총무일을 겸하고 있는 리시앙화씨 역시 연변출신의 23살의 조선족 여성이다. 연변에서 부모님이 조그마한 사업을 하고 자신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북경으로 왔다고 한다. 자신과 같은 대학동기 한족들은 아직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집에서 놀고 있다고 걱정도 한다.
이들은 대부분 객지생활을 하기 때문에 자취나 하숙을 한다. 주말 등 쉬는 날에는 주로 운동을 하거나 외국어 학원을 다닌다. 베이징이 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된 이후 이 곳 시민들에게도 본격적으로 외국어 학습열풍이 불었다고 한다.
리시앙화씨는 대학 때 영어를 전공한지라 영어가 정확하고 유창하다. 한국말, 중국말에 이어 영어까지 구사하는, 말하자면 3개 국어를 할 줄 아는 고급인력인 셈이다. 이처럼 한국인과 의사소통이 자유로운 중국내 살고 있는 조선족 약 2백만명은 한국기업들의 중국진출을 위한 소중한 자산이 아닐까. 리포터가 이들에게서 받은 느낌은 뭐랄까. '참 건강하고 명랑하게 젊은이들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게시판 관리중인 리시앙화씨. 잠시도 한눈을 팔 수가 없다고 한다
직원들의 용모가 대부분 준수해 보여 리포터가 "디시는 직원들 얼굴보고 채용하나 보죠?" 라고 짖궃게 질문을 던졌더니 잠시 후 그 말뜻을 알아차리고 얼굴이 붉어지더니 "네, 이렇게 못생긴 사람들만 뽑네요"라며 응수했다. 역시 '폐인' 들의 본산 디시의 알바다웠다.
리시앙화씨는 "한국에서는 어떨 때 저희 '알바'들 보라고 허심탄회하게 게시물을 올려 실연이나 실업 등의 고충을 말씀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격려라도 해드리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라며 "기회가 된다면 꼭 한국에 가고 싶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제 제조업에 이어 인터넷 벤처 기업도 값싼 노동력의 중국으로 향하는 등 국제적인 분업화가 가속화 되고있는 추세다. 민족의 개념이 단순히 혈연 뿐만 아니라 문화적 공감대까지 포함하는 것이겠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다. 우리에게는 친근한 '조선족 알바'들이 건전한 커뮤니티 활동을 추구하는 많은 네티즌들의 사랑을 받기를 기대해 본다.
취재를 마치고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책임자 리메이선씨가 리포터를 향해 한마디 더 당부를 한다. "사용자들이 실망하지 않게 우리 알바들 얘기 이쁘게 잘써주세요!"
중국 베이징= 도깨비뉴스 리포터 날다람쥐 squirrel@dk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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