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렇게 욕구가 없을까... 솔직히 나는 이렇게보다는 어떻게 다른 사람들은 저렇게 무언가를 원하며 살 수 있을까 하고 묻고 싶다. 나는 바라는 게 별로 없다. 밥을 먹고, 가끔 맛있는 걸 먹고, 원하는 시간에 잠들고, 무료함을 달래고... 내 삶 자체에 바라는 건 겨우 이 정도다. 난 위대한 무언가를 추구하면서 살지 않고 그다지 풍족한 삶을 바라지도 않는다. 옷이나 신발이 아주 낡으면 그때쯤에야 새 것을 사면 만족하고 다른 모든 것들도 그렇다.
나는 삶의 형태에 어떤 만족스러운 정답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저 내 본능이 원하는 걸 적당히 채워주면서 살아가는 게 내게는 삶이다. 언제부턴가 이성 역시 본능의 작용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어떤 결론을 이성과 합리로 내린 것 같아도 결국 왜 그 결론에 도달했는가? 를 계속 묻다보면 종국에는 대답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하고 거기서는 '내가 그걸 원하도록 태어난 인간이라' 라는 대답 정도밖에는 할 수 없어져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요즘에는 절대적인 이성도 합리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고 사고행위란 그저 편할 정도로만 사용하면 좋은 도구처럼 느껴진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가 정말로 자유로운 존재인지에 대해서 난 더는 생각할 필요가 없어졌다. 난 내가 정의하기만 하면 내가 원하는 개념을 자유라고 말할 수 있고, 그 개념에 따라서 나는 자유로울 수도, 인과에 묶인 인형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정의내림은 내겐 일종의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껴진다. 수많은 개념들이 그렇다. 원하는 정의가 있다면 그렇게 결정해버리면 그만이며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얼마나 많은 타인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느냐만 존재할 뿐이다. 왜 그렇게 정의하고 싶어했나? 결국 같은 대답에 도달하게 된다. '내가 그걸 원하도록 태어난 인간이라'
또 다른 이야기도 적고 싶다. 내 욕구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난 온전히 아무도 관계없는 내 일상 속 욕구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는데, 나는 타인에게 바라는 것 역시 너무 적다는 생각을 했다. 난 기본적으로 남들에게 뭔가를 잘 바라지 않는다. 뭔가를 바란다면 그건 삶에 별로 영향이 없는 시시콜콜한 것들이거나 내가 바라주길 바라는 상대의 기대를 예상하고 바라는 연기를 할 뿐이다. 나는 타인에게 내가 무언가를 바라는 게 감히 가져선 안 될 생각 같다. 나 스스로를 무가치하게 느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난 어떤 인간도 다른 인간의 자유를 침해할 권리를 가지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유를 침해한다는 건 생각이나 행동에 개입하는 것이다. 내가 타인에게 뭔가를 바라면, 상대방이 내가 뭔가를 바란다는 걸 인지하고 자신의 본래 욕망에 솔직하지 않게 되는 게 두렵다. 난 그게 싫다.
본래 욕망에 솔직하지 않게 되는 게 나를 소중하게 생각해서 나를 존중하고픈 욕망이 더 강해서 그런 거라면 괜찮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가령 그 사람이 원래 남에게 맞춰줘야 하는 무의식적인 강박 같은 게 있어서 그러는 거라면? 아니라는 걸 어떻게 확신하지? 아니, 아니다. 나는 그냥 이런 이유를 붙이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난 내가 무언가를 바라는 게 잘못된 행동이라 바라지 않는 게 아닐 지도 모른다. 애시당초 아무런 욕구가 들지 않는 것 같다. 내가 타인에게 원하고 바라는 건 몇 가지 없다. 나와 쭉 아무런 적의 없는 관계를 이어나가주는 것, 가능하면 나를 소중하게 생각해줄 것, 내 가치를 믿는 것을 도와줄 것, 아름다운 인간으로 안정돼서 존재하며 행복해질 것... 난 이 외에는 솔직히 별로 어찌되든 상관 없는 것 같다. 타인의 모든 행위는 그 스스로가 원해서 결정한 거라면, 그래서 피해본 사람이 없다면 난 비난하고 싶지 않고 내가 그 사람에게서 찾은 가치만 보존된다면 상관없다. 여기서 가치란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일 것이다. 내가 유일하게 삶에서 추구하는 가치는 아름다움이니까.
이렇게 보면 원하는 건 추구하는 가치에서 나오는 것일까 싶다. 난 그저 아름다움을 관망할 수 있다면 괜찮다. 그게 나에게서 나온 것이든, 타인에게서 나온 것이든. 그러나 내 이런 점은 남들을 무척 외롭게 만드는 것 같다. 자신에게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인간에게 어떻게 안정감을 얻고 의지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은 내 삶에서 무척 드물었던 것 같다. 아마 세상에도 무척 드물 거라고 생각한다. 모든 추론의 근거가 우스울 정도로 빈약하지만 직감인지 강박인지 요즘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산다. 어쩌면 좋은걸까. 일단 아름다움이란 게 정확히 무엇인지부터 명확히 해야겠다. 미학을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추구하는 가치를 더 찾고 싶다. 이렇게 계속 타인에게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면 난 너무 외롭고 슬픈 삶을 살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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